2022년 6월 19일 일요일

22, Seoul Pen Show


'펜 쇼'에 처음 다녀왔다. 나는 잠을 안 자고 커피 석 잔을 마신 후에 아내와 함께 지하철을 타고 갔다. 행사가 열리는 충무아트센터에서 오래 전에 공연을 했었기 때문에 그곳에 주차할 곳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일요일 낮 지하철은 쾌적했다.

행사 장소는 넓지도 좁지도 앉은 홀이었는데 오전부터 이미 사람으로 가득했다. 문 밖에서 보이는 것은 온통 사람들, 펜 보다 사람의 숫자가 더 많아 보였다. 성황이었다. 펠리칸 펜들을 잔뜩 진열하고 계셨던 분이 최고였다. 나는 그 앞에 세 번이나 가서 제일 오래 머물렀다. 사람들이 가득하여 비좁았기 때문에 마냥 그 자리에 눌러 앉아 있을 수 없었다. 몇 개 집어들고 잉크를 찍어 써보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잘 참았다. 종이에 몇 줄 선이라도 긋기 시작했다면 분명히 한 개 정도는 사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처음 가보는 행사였어서 더 그랬겠지만 나는 아주 재미있게 구경했다. 아내는 연필깎이를 샀다. 나는 아무 것도 사지 않은 나를 속으로 칭찬했다. 그대신 그동안 사진으로 보았던 펜들을 직접 보며 조금 더 공부해 볼 수 있었다. 가을에 다시 행사가 열릴 때엔 얼마 정도 돈을 챙겨서 갈지도 모르겠다.

행사장 길 건너에 있는 샌드위치 가게에서 점심을 먹고 집에 돌아왔다. 허리에는 통증이 심하고 졸음이 쏟아져서 힘들었는데도, 오랜만에 걸어다니며 사람 많은 곳을 경험했더니 기분이 좋아졌다. 다녀오길 잘 했다. 혼자였다면 또 귀찮아하며 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기꺼이 함께 동행해준 아내에게 고마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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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13일 월요일

식구들과 세상에서.

 


천둥소리가 서너 번 들리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식구들은 모두 자고 있다. 조용히 걸어가서 열어뒀던 베란다의 창문을 닫고 왔다. 비오는 소리, 스틸 펜촉이 종이 위를 지나가는 소리 사이로 고양이 깜이의 잠꼬대가 들렸다.

올해 초부터 컴퓨터로 글쓰기를 멈추고 만년필을 손에 쥐고 공책에 쓰기를 시작했다가, 그만 펜의 세계라는 수렁에 빠졌다. 어지러운 세상이 되어버려서 한가로이 취미나 즐길 때가 아니라는 자책과 이런 것에라도 몰두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만족이 매번 교차한다.

선거들이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우리의 사회가 욕망의 세력과 염치의 세력이 반씩 나눠진 정도는 되는 줄 알았던 것이 그냥 판타지였던 것 같기도 하다. 거창한 행복까지는 아니더라도 평화롭고 안전하게 식구들과 세상을 사는 일이 이제 대단한 일이 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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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5월 20일 금요일

오후에 친구와.

 


서정원을 만났고, 커피를 주문하여 자리에 마주 앉자 그는 자기가 직접 만든 쿠키를 주머니에서 꺼내어 내밀었다. 맛있었다. 그가 혼자 집에서 빵과 과자를 만들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직접 맛보기는 처음이었다. 나는 하지 못하는 일이어서 여러번 감탄해주고 있었다.

친구로부터 그가 최근에 보았던 과학 다큐멘터리의 내용을 들었다. 뇌과학에 관한 이야기였다. 사람이 도덕, 규율, 인간성을 배반하는 선택을 반복하다보면 그런 결정이 유발할 수 있는 죄의식이나 미안한 감정에 스스로 무뎌지도록 뇌가 작용하기 시작한다는 이야기였다. 죄의식이라는 감정은 결국 뇌의 주인을 괴롭게 만드는 부정적인 것이기 때문에 뇌에서는 그 반응을 무디게 만들어 자신을 보호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과학의 성과라고 하니 과연 그랬었군, 하며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조금 더 생각해보면 과학이 밝혀내어 알려주기 이전에도 인간이 그런 형질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류는 아마 고대로부터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 외에도 흥미로운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철학, 규범, 종교의 모습으로 자연이 지닌 본래의 이기심에서 진보하고자 하는 노력은 더디지만 멈춘 적이 없었다. 그렇게 애쓴 결과 겨우 요만큼일 뿐이지만 여기까지라도 온 것 아닐까. 가장 쉽고 무책임한 행위는 그저 남을 탓하는 것이라고 생각해보게 되었다.

올해가 되어 처음 만났던 오랜 친구로부터 얻게 되었던 교훈이었다. 그리고 쿠키는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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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5월 12일 목요일

노원문화예술회관 공연.

 


3년 전에는 대구에서 공연을 했었다. 그 즈음 나는 계속 불면에 시달렸다. 그날 알람을 듣지 못하고 늦게 일어났고, 집에서 서울역으로 가는 것보다 고속도로를 달려 대구로 가는 것이 더 빠를 것 같았다. 대구에 잘 도착하여 공연을 마치고 밤에 돌아올 때에는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러 잠을 잤던 기억이 떠올랐다. 2019, 11/May
요즘은 일부러 잘 자두고 있다. 수면 시간이 모자라면 쪽잠을 자는 것으로 가능한 그 시간을 채우는 중이다. 판데믹 기간 동안 하지 못하고 있던 두어 시간의 단독공연을 준비하러 일찍 공연장으로 갔다.
공연을 만든 분들이 무대에 공을 많이 들였다. 멤버들에게 적당한 넓이의 자리를 따로 마련해준 것이 인상적이었다. 음향도 운영도 모두 좋았어서 편하게 연주할 수 있었다.
공연 하루 전까지 페달보드를 열어두고 여러가지 조합을 고민했었다. 가장 단순하고 음의 손실이 없는 정도면 좋겠다고 생각하여 MXR의 베이스 D.I. 한 개만 사용하기로 했다. 그 페달이 기대했던 역할을 잘 해줬다.

내 몸이 완전히 멀쩡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공연 도중에 알았다. 한 시간 쯤 지날 무렵 갑자기 통증이 시작되었다. 센 곡들을 연주할 순서였는데 나는 곡의 인트로를 치면서 돌발상황이 생길 경우 모니터 스피커 옆으로 발을 두고 드러누우면 대충 괜찮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가능한 태연하게 드러누우면 사람들이 누군가 갑자기 쓰러졌다며 놀라지는 않을 것 같았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어떻게 눕더라도 큰 민폐가 될 뻔했다. 게다가 연주자의 자리에 높은 단까지 설치되어 있었으니, 보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가관이었을 것이다. 다행히 잘 버텼다.
일부러 공연을 준비할 때에도 일어선 채로 셋리스트 전부를 합주해보았었다. 그 때는 견딜만 했었다. 공연을 마칠 때까지 통증이 없어지지 않아서 진땀이 났다. 무대에서 내려오자 마자 눈에 보이는 의자에 기대어 긴 호흡을 했다. 통증이 약해지고 시력도 조금 회복되었다. 아직 완전히 나은 것이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많이 좋아진 것이다. 집에 돌아올 때에 자동차의 창문을 열어두고 바람을 쐬며 운전했다. 공연장이 집에서 멀지 않았던 것도 다행이었다. 다음 달에 약속된 공연들도 잘 할 수 있도록 운동도 하고 체력도 잘 유지해야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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