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20일 수요일
피로가 풀리지 않는다.
일년 가까이 아내도 나도 잠을 푹 자본 일이 거의 없다.
오늘도 좋은 잠을 잔 것이 아니라 몸이 지쳐서 혼절했다가 깨어난 기분이었다.
동네의 미용실에 들러 머리를 깎았다. 그곳은 갈 때 마다 내 이름을 묻고 뭔가 적립을 해주는 것 처럼 하는데, 그것을 언제 어디에 어떻게 쓸 수 있는 것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벌써 열 번은 더 갔던 것 같은데 항상 이름만 물어볼 뿐 다른 말이 없다. 아마 매달 한 번씩 출석을 부르는걸까.
고양이 까미를 데리고 동물병원에 가는 날이었다. 동물병원 진료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데에 세 시간 정도 소요된다면 그 다음 일정에 무리가 없을 것이었다. 그런데 고양이가 꾀가 늘었다. 몇 번이나 이동가방의 지퍼를 열거나 틈새에 머리를 밀어 넣어 탈출을 하고 말았다. 현관 앞에서 진땀을 흘리며 고양이를 가방에 넣으려다가 결국 실패했다. 고양이 까미는 장난감 진열대 앞에서 드러누운 어린이처럼 벌러덩 누워서 시위를 했다.
결국 다시 집에 들어가 플라스틱 이동장으로 바꾸어 들고 나와 까미를 가두듯 집어 넣고 동물병원으로 갔다.
고양이를 집에 데려와 풀어놓고 나는 악기를 챙겨 다시 집을 나섰다. 자동차 뒷쪽의 문 덮개를 분리하여 그동안 나사가 풀려 덜렁거리던 번호판을 죄어놓았다.
문정동에 가서 볼일을 보고 돌아왔다. 도로가 당연히 막혔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세 시간이 걸렸다.
다시 동네로 돌아왔더니 이미 어두워져있었다. 아내가 집에 돌아왔고, 우리는 서로 아무 것도 먹지 않은채 하루를 보냈다는 이야기를 했다. 고양이 이지에게 아내가 사료를 먹이고 난 후, 우리는 기운없는 걸음으로 동네의 식당에 가서 고기를 사먹었다. 평소에 고기를 자주 먹지 않는 나로서는 드문 일이었는데, 어쩐지 오늘은 고기를 먹고 싶었다.
배부르게 음식을 먹고 아내와 함께 집에 돌아오는 길, 골목 어귀에서 고양이 두 마리를 만났다. 한 놈은 앞의 친구를 따라오다가 멈칫 서있는 것 같았다. 그만 우리가 방해를 한 셈이 되어서 두 고양이는 각각 어두운 구석으로 숨어버렸다.
나는 순이 생각이 나서 하늘을 올려다 보았는데, 달이 어디에 있는지 찾지 못했다. 날씨가 맑았는데 왜 금세 보이지 않았던 것인지 지금은 잘 생각나지 않는다.
2017년 9월 15일 금요일
경주에서 공연했다.
바람이 불고 구름이 많았다. 좋은 날씨였다. 나는 이것이 어제 발생한 멕시코의 강진과 관련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멕시코에서 벌어진 지진은 아마도 같은 판에 위치한 일본과 미국 서부에도 영향을 줄 것이었다.
그리고 열차에서 내려 도착한 곳은 경주였다.
공연으로만 말하자면, 보기 드문 최악의 상황이었다.
고분 앞에 무대를 꾸미고 용이라든가 꾸불거리는 것을 금색으로 칠한 조형물을 세웠다. 그것이 미적으로 아름답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기야 하겠지만, 어쩐지 '신라'에 대한 강박이 이상한 형태로 표현되는 느낌이었다.
악기가 좋지 않았다거나 음향이 너무 나빴다는 것은 사실 부차적인 이야기이다.
연주자는 그냥 맡은 무대에서 연주나 하고 오면 그만일 것이다. 이러쿵 저러쿵 푸념을 해보았자 소용이 없는 것을 이제는 잘 안다.
그런데 누구나 그렇게만 생각하고 넘어간 결과, 여전히 음악공연의 수준은 이십 년, 삼십 년 전과 거의 달라진 것이 없게 되었다.
모니터 스피커를 공연 도중에 완전히 꺼달라고 부탁한 후, 진동과 느낌만으로 연주해야 했다. 그것은 뭐 그런대로 괜찮았다.
이것은 기록해두기로 한다.
공연 중에 마이크를 들고 무대에 난입하여 일장 연설을 늘어놓는 선출직 공무원은 이제 그만 뽑아주는 것이 좋다. 그 지역사회의 발전을 위하여도 좋은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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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13일 수요일
고양이 친구를 만났다.
새벽에 시골에 다녀와야했다. 잠이 모자라 거의 정신을 잃을 뻔 했다.
볕이 뜨거웠다.
그늘에 있으면 추위가 느껴질 정도의 바람이 불었다.
아무래도 며칠 안에 감기가 찾아올 것 같았다.
일찍 마칠 줄 알았던 일정이 길어지고, 나는 시간을 확인하며 조바심을 내고 있었다.
어서 돌아가 해야할 일과 약속이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데나 누워 잠들고 싶었던 즈음, 고양이 소리가 났다. 작년에 그곳에서 아내와 함께 만났었던 그 고양이였다. 고양이는 나에게 다가와 머리를 부비고 몸을 비비며 좋아했다. 나는 피곤한 것을 잊어버렸다. 고양이를 따라갔다. 고양이가 나를 데리고 간 곳은 그 집에서 가장 그늘이 시원한 마당이었다.
작년 3월, 그 고양이를 만나 쓰다듬어주고 인사를 했을 무렵에는 내 고양이 순이도 살아있었다. 순이는 떠나고 없는데, 너는 잘 살아있었구나, 하며 여러번 어루만져줬다.
오늘 오후에 있었던 유일한 즐거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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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9일 토요일
진천에서 공연했다.
고려 초엽에 만들어졌다고 하는 돌다리를 건너 숲속에 있는 무대에 도착했다.
큰 강이 보였다. 나중에 알고보니 저수지였다. 돌다리 아래에 흐르던 것은 금강으로 달려가는 세금천이었다. 큰 강인줄 알았던 것에는 초평호라는 이름이 붙어져 있었다. 사실은 저수지였지만 호수라고 해도 좋을 풍경이었다.
아길라 앰프의 소리가 좋았다.
조금 더 늦은 저녁에 공연을 했었다면 숲속에서 울리는 소리가 더 듣기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조명이라든가 다른 문제 때문에 아마도 해가 떠있는 시간에 공연을 진행하여야 했을 것이다.
연주를 마치고 악기를 차에 실어 주차장으로 보낸 후 사람들의 행렬을 따라 산에서 내려와 다시 농다리를 건넜다. 어떤 남자가 다가와 뭔가를 물어보았다. 나에게, 군복무를 어디에서 했느냐고 했다. 그런 질문을 할 사람이 누구일까, 싶어 남자의 얼굴을 보았더니 나의 군대 동기였다. 훈련소를 함께 나와 같은 부대에 배정받은 후에 그는 고민 끝에 하사관에 지원했었다. 무척 반가왔다. 어깨를 두드리며 인사를 주고 받았다. 다만, 이름이 얼른 떠오르지 않아서 많이 미안했다. 함께 사진을 찍고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새벽에 친구를 공항버스 타는 곳에 데려다주기로 약속을 했었다.
밤중이 되니 몸은 지치고 졸음이 쏟아졌다. 집에 들렀다가 다시 새벽에 운전하며 나가기가 더 어려울 것 같았다. 나는 친구의 집으로 곧장 갔다가, 새벽에 그를 데려다 주고 버스에 올라타는 것을 보며 인사를 했다.
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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