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3월 29일 수요일

프라하에서 공연.


이 여행의 목적은 그곳에서 열리는 미주관광협회의 무슨 총회인지의 폐막식인지에서 피날레 공연을 하고 돌아오는 것이었다.
우리의 공연은 훌륭했다.
주최한 쪽의 준비는 형편 없었다.
리허설 시간은 모자랐다.
그런데 우리의 연주는 그날 그 순간 제일 잘했다. 마지막 음을 쳐주고 소리가 사라지는 몇 초 동안, 연주한 사람들은 스스로 안다. 무대앞에 앉은 사람들이 즐거웠는지 아니었는지를.

공연 직전까지 우리는 마음에 들지 않는 무대의상을 급조하여 수선하거나, 열악하기 짝이 없는 무대위의 상황에 온 경험을 살려 빨리 적응하는 것에 집중해야했다.
책임자라는 사람들은 무엇을 물어봐도 아는게 없었고, 대여해놓겠다고 했던 기타와 베이스의 앰프들은 공연 시작 40분전에 도착했는데, 정작 어쿠스틱 악기를 위해 무대 위에 멀쩡히 굴러다니는 캐넌 잭을 D.I. 에 연결해달라는 요구는 한 시간이 지나서야 해결되었다.
전혀 전문적이지 않은 사람들이 매우 전문적이어야 하는 일에 관여하고 있었으며, 아주 섬세하게 해도 모자랄 부분들을 그저 배짱과 꼼수로 밀고 나가려는 수준의 사람들에게 맡기고 있었다. 그들 중 일부는 나중에 '체코인들이 너무 게을러서 일하는데에 애먹었다'라고 말했다. 그것이 그들의 악행 중 제일 나빴다. 체코사람들은 열심히 일하고 싶어했다. 일을 지시하는 사람이 없었을 뿐이었다.
지켜보다가 공연에 임박했을때에, 아무래도 안되겠어서 체코 현지의 스탭들에게 일일이 상황을 체크해주도록 하고 이것 저것 직접 주문했다. 영어를 못하는 쪽도 한국의 스탭들이었다. 체코사람들은 "우리는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지금까지 아무 말도 듣지 못했다. 곧 주문한대로 준비하겠다."라고 했다. 그리고 곧 해결해줬다.

프라하에서 함께 공연했던 분들에게 나는 마음속으로 박수를 많이 쳤다. 우리들은 완벽하게 마음이 맞았고, 각자 몹시 까칠한 성격인만큼 자존심도 세었어서, 더 열악한 상황이었더라도 공연이 망쳐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공연 후 만찬장에 가서 식사를 하고 식당을 빠져나오는 동안 자리를 이동하는데에 애를 먹었다. 쉴 새 없이 박수를 받았고 사진촬영에 응하고 싸인을 해줬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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