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12일 토요일

자코 부트렉


 애플뮤직에 웬 Jaco Pastorius 앨범이 새로 나왔다며 추천음반으로 보여졌다. 또 이곡 저곡 붙여둔 엉터리인건가 보다 하고 듣지 않고 있었다. 사실, 며칠이 지나도록 음악을 집중하고 들을만한 기분이 아니었다.

수상한 앨범의 곡명을 보다가 내가 모르는 타이틀이 있어서 들어보기 시작했다. 이 앨범에 대한 아무 정보도 없어서 알 수는 없지만 특이한 녹음이었다. 음질도 나쁘지 않고 악기 소리 외에 잡음도 없는데 그렇다고 제대로 믹싱을 거치지 않은 듯 밸런스가 좋지 않은 곡도 있었다. 이건 부트렉 같은 것일까.

자코의 연주도 특이했다. 솔로의 구성이 엉성하고 간혹 갈피를 못 잡고 있는 부분도 들리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함께 연주하는 연주자, 편곡, 자코의 솔로 등은 클래스가 높았다. (당연하잖아) 두 곡을 이어붙인 트랙은 라이브 연주이거나 공연을 위해 리허설을 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정식으로 발매했던 앨범에서 들었던 자코의 완성도 높은 연주가 아니라고는 해도 무시무시한 테크닉은 분명했다. 이런 녹음은 누가 어떻게 보관하고 있었던 걸까. 플렛리스 베이스의 슬러를 사용한 인토네이션은 자코의 지문처럼 그 사람만 낼 수 있는 아름다운 사운드 그대로였다. 말끔한 구성은 아니고 반복되는 프레이즈를 계속 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본녹음이나 공연을 앞두고 꼭 연습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솔로인데도 어느 부분도 화성적으로 틀리거나 이상한 음이 없다. 망설이는 것처럼 들릴 때에도 음악적인 손버릇으로 빈 곳을 메우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 음색이 대단하다. 



2022년 3월 5일 토요일

선거

 



읍사무소 (명칭은 주민자치센터로 바뀌었지만, 읍사무소가 낫다)에 가서 아내와 함께 사전투표를 했다.

투표소에는 사람들이 길게 줄 서있었다. 내 앞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끼어든 육십대 쯤 되어보이는 여자가 너무 뻔뻔했지만, 소란스러워지는 것이 싫어서 잠자코 있었다. 내 뒤에 서있던 아내가 그 모습을 보지 못한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투표를 하러 나왔는데, 이것이 어떤 결과로 나올지 아직 모른다. 불안감과 함께 희망도 버리지 않는 수 밖에 없다.

투표를 마치고 걷던 중에 빨간 옷을 입은 나이 어린 남자애들이 빨간색 기호를 들고 선거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 가까운 옆에 두 명의 중년 여성들이 파란 옷을 걸치고 홍보하며 서있었다.

아내와 첫 끼 식사를 위해 동네를 걷다가 새로 생긴 가게에서 햄버거를 사먹었다. 저녁에 뉴스에서는 이번 사전투표율이 역대 가장 높았다고 했다.

동해 해안을 따라 산불이 아주 크게 났고 여전히 불을 끄지 못하고 있다. 삼척, 동해, 울진, 묵호항까지. 바람이 세게 불어 남동쪽으로 확산하고 있단다. 강를 옥계에서 일어난 불은 방화였다고도 하고.

빨간 옷을 입은 갓 스무살 정도 되어 보이던 사내아이들의 모습이 기억 나면서, TV 화면 속에서 시뻘겋게 타고 있는 불길을 보고 있었다.



2022년 3월 2일 수요일

살아가는 일


 

어느 노인이 별세를 했다. 나는 그의 이름을 십대시절부터 계속 들어왔다. 글과 책도 읽어봤었다. 한 마디로 그는 본래의 가치보다 너무 과하게 포장되었다. 내 견해로 그는 '먹물 엔터테이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만나본 적도 없지만 황현산 선생을 떠올리면 이번에 별세한 그 사람과 비교할 것이 많았다. 황현산 선생도 돌아가셨지만 그분의 트위터 계정을 나는 여전히 팔로우하고 있다. 그가 남겼던 트윗들을 모아놓은 책도 나와있다고 하는데 나는 생각이 나면 트위터 계정을 찾아가 다시 읽는다.

황현산 선생은 돌아가시기 불과 한 해 전에 갑자기 무언가에 그리움이 올라와 나무로 된 장기알을 수소문 끝에 구입하면서,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건가' 라고 썼다. 그 분이 그 장기알을 몇 번이나 장기판 위에 올릴 수 있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잘 하셨던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보다 두 해 전에는 원고와 오래된 책을 스캔하여 새로 제본을 하겠다고 마음먹고 스캐너와 제본기계를 구입하셨던 내용도 있었다. 그 트윗 글들을 나를 비롯한 몇 백명이 실시간으로 읽고 있었다.

그는 조동진 씨가 돌아가셨을 때 조동진의 노랫말을 '단 하나도 허투루 쓰지 않았다'고 하며 고인을 애도했었다. 그 이듬해에 선생이 세상을 떠나게 될 것을 본인도 독자들도 그때는 몰랐었다. '내 신변에 변화가 생겼다'며 잠깐 트위터에 글을 쓰지 않고 있다가 드디어 올린 짧은 글에는, 열심히 치료를 받고 병을 이겨내겠다고 했던 내용도 있었다. 삶과 죽음이 허무하다.

새벽에 뉴스가 업데이트 되면서 감염병 확진자 수가 이십만 명이 넘었다고 알려주고 있었다. 죽거나 살아남는 일이 매일 가까이에 있다.



2022년 2월 28일 월요일

만년필

 



나는 손끝이 약하다. 악기를 연주할 때 걸핏하면 검지손가락의 손톱이 들려버리거나 손가락 끝을 다친다. 그런데 겨우 펜을 쥐고 글씨를 쓰다가 손끝이 다칠 줄은 몰랐다. 굳은살이 있어도 이 모양이다.

만년필에 관련된 영상들이 재미있어서 매일 찾아보고 있었다. 어떤 도구, 어떤 취미이거나 할 것 없이 사람들은 자기가 재미있어하는 것에 객관적이지 못하다. 그냥 그것이 좋고 그 일에 몰두하여 재미있으면 그것으로 이미 충분할 것 같은데, 자신의 선택과 취향에 자꾸 비싼 값을 매기려고 한다. 다른 기준, 보편적인 동의, 억지로 쥐어 짜낸 급조된 철학 같은 것으로 장식해주지 않으면 자기의 취미가 보잘 것 없는 것이 되어버릴까봐 겁을 내는걸까. 나는 그런 모습들을 악기에서도 보았고 자전거를 탈 때에도 체험했다. 당연히 만년필의 세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모든 인간의 문화는 그렇게 과몰입하는 사람들의 쓸데 없는 짓들 덕분에 풍부해진다. 뭘 저렇게까지 하는가 싶은 사람들의 경험과 실패가 쌓여 그 분야의 세계를 만들고 있었다.

한편 나는 갑자기 펜을 사느라 너무 돈을 썼다. 이쯤에서 멈춰야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