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25일 일요일

제주에 다녀왔다.


편안하고 순조로왔던 제주도 공연을 마치고 돌아왔다.
예정, 약속, 준비들이 잘 이루어졌고 초대해준 분들이 마련해준 숙소도 편안했다.
토요일 아침 기타를 하드케이스에 담다가 그만 허리에 큰 충격을 느끼고 그 자리에 쓰러져버렸던 일만 제외하면 모든게 좋을뻔 했다.

그동안 작은 통증들이 모여있다가 터져버린 것 같았다.
공항까지 운전하는 동안 통증이 계속 느껴지다가 비행기를 타면서 극심해졌다. 제주도에 도착할 무렵에는 아무데나 드러누워 쉬고싶을 지경이었다.


리허설을 마친 후에 가까운 곳에 정해준 숙소에서 쉴 수 있었던 덕분에 공연 직전에 어느 정도 회복을 할 수 있었다. 통증이 아니었다면 더 집중하고 즐기면서 연주할 수 있었을텐데 아쉬웠다.
모두 열두 곡을 연주했다.  습기가 가득한 바닷바람 덕분에 새로 감아둔 기타줄의 표면이 거칠어졌다. 가까운 곳에 모여앉은 청중들의 소리, 한 곡을 연주할때마다 한번씩 하늘 위를 지나가던 비행기 소리들이 기억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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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 22일 목요일

기타


주말에 제주도에서 통기타를 연주해야하는 공연이 예정되어있다.
한달 남짓 어쿠스틱 기타를 열심히 쳤다. 처음에는 낯설더니 조금씩 감각이 되돌아왔고, 이제 다시 익숙해졌다.
어릴적에 기타를 치고싶어서 몰래 연습했던 기억도 나고, 그 시절 하루종일 이어폰으로 듣고 다니던 음악들도 생각났다. 다만 악기의 큰 음량을 틀어막을 수 없어서 밤이 되면 연습을 할 수 없었다. 심야에 통기타를 치면 이웃들의 수면을 방해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릴 때엔 이불을 뒤집어 쓰고서도 연습을 했었는데 이제는 남의 집에 피해를 줄 것을 지레 걱정하여 심야의 악기연습을 삼간다.

열흘 전 제천에 다녀온 이후 통기타에 새줄을 감고 자주 연습했다. 그동안은 베이스를 손에 쥐어보지 않았다. 덕분에 오른손의 손톱이 기타를 연주하기 알맞은 정도로 자랐다.
내일 약식으로 합주를 한 번 하고 그 다음날은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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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 20일 화요일

슬픔.


운전을 하다가 전화를 받고, 십여년간 함께 일하고있는 분이 갑자기 부친상을 당했다는 것을 알았다.
하려던 일들을 대충 마무리하고 집에 돌아와 밤중에 고속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자정이 넘어서 도착한 인적드문 길 옆의 장례식장에서 아버지를 잃은 사람을 만났다.

두 시간 동안 텅빈 방 안에 마주 앉아서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예상하지 못한 이별이 사람을 얼마나 무기력하게 하는지 나는 잘 알고있다. 그것은 서운함, 슬픔 따위의 단어로는 그 뜻을 전달하기에 부족하다.

돌아오는 길엔 한번도 쉬지 않고 운전했다. 검은 하늘빛이 바래지더니 요금소를 지날 무렵 갑자기 아침이 되었다. 나는 돌아가신 분의 인생은 알지 못하지만 조금전 만나고 온 분이 느끼고 있을 황망한 심정은 잘 알 것 같았다. 졸음을 이기기 위해 음악을 틀었다가 상을 입은 분이 생각나서, 그만 꺼두고 달려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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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 16일 금요일

동네에서 만난 고양이.


아내와 함께 동네에 나갔다가 상점 앞에서 이 고양이를 만났다.
졸고있던 고양이에게 말을 걸었더니 반가와하며 인사를 해줬다.
그 곁에 사료와 물, 정성껏 만들어준 집도 있었다. 십여년 전과 비교하면 길고양이들을 챙겨주는 분들이 아주 많아진 것은 사실이구나, 했다.

머리가 많이 아파서 진통제를 먹었다.
밤중에는 부모님 집에 들렀다. 가는 길에 빵집에서 식빵 두 개와 팥이 들어있는 빵을 샀다. 빵봉지를 받아든 엄마는 마침 먹을 것이 없었다며 반가와했다. 돌아올 때엔 식빵 한 개를 굳이 도로 가져가라고 하여 다시 들고 나왔다.

지난 주에 아내가 다급하게 구조했던 새끼 고양이는 그만 죽고 말았다. 새벽에 그 전화를 받고 동물병원에 다녀왔다. 일주일 동안 입원하며 살도 불었고 건강해져서 살아날 수 있을줄 알았었다. 결국 폐렴증상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마음이 아팠다. 아내가 엊그제 풀숲에서 데려와 임시보호자에게 맡긴 고양이들은 매우 건강하다고 했다. 잘 뛰어놀고 둘이 함께 꼭 붙어서 잘 잔다고 들었다.

깊은 밤, 일부러 내집의 고양이들을 일일이 찾아 쓰다듬어줬다.
말복이 지났다고도 하고 곧 입추라고도 한다.
추석이 다가오는 것이 신경쓰이지만 세상의 일들이 신경을 쓴다고하여 달라지거나 반드시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힘내어 각자 잘 살아가면 그것으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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