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28일 금요일

위기

우울한 기분이 심해졌다.
사실, 이 우울은 가을이 되었다고 하여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벌써 몇 개월간, 아니면 몇 해 동안 쌓이며 지속되었던 우울증 - 이거나 그것과 비슷한 것이었다.
여유 없이 달려가기만 해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시도와 도전은 크던 작던 결국은 실패의 연속이었다는 자학이 시작됐다. 사실은 그냥 몸과 마음이 쇠약해져서 나약한 자기 연민에 빠진 것일 뿐일지도 모르겠다.

풀죽은 인상을 하고 있었다. 어느날 심야에 졸리워 하는 아내를 붙잡고 내 상태가 이러이러하다고 푸념을 했다. 뭔가 징징거리고 싶은 마음에 주절 주절 이야기를 했더니, 다정하고 나지막한 일갈이 돌아왔다.
"정신과를 가보던가."

그 말을 듣고 뭐가 이건 아닌데, 라는 생각에 실망했다가, 다음 날 낮에 고속도로를 운전하던 중 생각이 나서 웃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그다지 귀찮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별로 귀기울이고 싶지도 않다는 투로 말하던 아내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차창을 열어둔 채로 큭큭 웃어대고 말았다. 백 몇 십 킬로미터로 달리며, 음악도 라디오도 꺼둔채로 우는듯 웃었다. 그러다가 웃음을 멈추고 보니, 나는 역시 정신과에 가보던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난 밤에는 무엇도 좋은 것이 없고 물을 마셔도 입맛이 쓰더니, 아내의 냉소적인 태도에 오히려 위안을 얻었다.
행크 모블리의 음반을 여섯 장 내리 들었다. 아침 까지 음악을 듣고 싶은 새벽 세 시 반...
위기일 수도 아닐 수도 있는 일로 지레 기운 빠질 필요는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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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10일 월요일

매일 일만 하고 있다.

오래 블로그를 업데이트 하지 않았다. 대신 트위터에 낙서를 많이 했다.
컴퓨터를 열어볼 시간은 없고 늘 아이폰을 쥐고 살았다. 티스토리는 아직도 iOS를 제대로 지원해주지 않고 있다.

일상은 굳이 업데이트를 할 것도 없이 똑같은 매일이 반복되고 있다. 일하고 또 일하고, 레슨, 강의, 공연을 하고 연습을 반복했다. 가끔 하루 반나절 동안 잠을 잤다. 주차장에서 잠깐씩 졸거나 길가에 차를 세우고 뒷자리에 누워서 잤다. 노을을 보거나 막히는 도로에서 앞 차량의 빨간 등을 보며 살짝 꿈을 꾸거나 하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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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월 6일 화요일

완전 어린이.

이 고양이는 거의 강아지 수준이다.
어찌나 사람을 좋아하는지 옆에 와서 등을 붙이고 눕는다. 졸졸 따라 다니거나 장난감을 물고 와서 사람 얼굴을 올려다 본다.
내가 번쩍 들어 안으면 자포자기한 표정으로 침착하려고 애쓴다. 반면, 여자가 안으면 사람 몸에 착 감겨서 그대로 떨어질 줄 모른다. 그렇다... 얘는 수컷 어린이 고양이이다.

왜 버려졌었는지, 누가 버렸던 것인지는 모른다. 다행히 우리집에서 살게 된 이후 말썽 피우는 것 없이 천진하게 놀며 잘 먹고 잘 논다. 이렇게 내 집에 맡겨진지도 한 달이 다 되어간다. 입양자 심의를 까다롭게 하고 있는 아내는 선뜻 이 고양이를 데려갈 분을 선택하지 못하고 있다.

귀여움을 잔뜩 떠는 이 고양이 덕분에 원래 우리집 식구 고양이들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폐쇄적이고 비타협적인 가족이다. 공간을 공유하도록 허락한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막내 고양이는 이 고양이에게 자신의 '엄마'를 빼앗겼다는 기분이 드는 것인지 노상 시무룩했다.

나는 잠을 자는 시간이 부족하고 그 시기도 넉넉하지 않다. 그런데 이 놈은 늘 내가 잠들기 시작하면 다가와 손을 물고 얼굴을 밟는다. 장난을 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나는 전 보다 더 수면부족에 시달리는 중이다. 철창 안에 가둬놓는다면 사람은 조금 편히 잘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불쌍한 눈빛을 보느니... 마음에 걸려 가둬두고는 또 내가 못자겠다.

이 고양이와 평생 함께 할 가족을 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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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8월 31일 수요일

흐리고 더웠다.

습하고 더운 날씨였다. 라디오를 마치고 돌아와서 조금 빈둥대다가 그만 시간을 훌쩍 넘기고 말았다. 그동안 적어둔 미뤄둔 일들을 들여다 보며 핑계와 궁리를 만들어 또 미뤄둘 마음을 먹다가, 낮에 독촉 전화를 받은 강의계획서만큼은 작성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몽골로 떠나기 직전 연락을 받았고, 정말 겨를이 없었다.
학교 홈페이지는 그러나 여전히 윈도우즈에 최적화되어있다며, 익스플로러(만) 권장하고 있다. 아이패드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오랜만에 컴퓨터를 열어 노력을 해봤지만 역시 아직도 맥 오에스에서는 눌려지지 않는 스크립트 버튼 투성이였다.
하루 더 미루어 보았자 내일도 모레도 없던 시간이 보너스로 생겨지지는 않는다. 게다가 오늘은 개강 첫 날 학생들을 만나는 약속이 예정되어 있다.
수작업으로 일일이 모든 것을 작성하고 났더니 다섯 시 반이 되었다.
열 시에 일어나면 된다.
컴퓨터를 열은 김에 기기들을 동기화하고 사진을 옮기는데에 삼십여분을 더 썼다.
지금 여섯 시가 되었다.

새삼 말하기도 뭐하지만 하루가 짧다.
대부분의 하루를 잠만 잤다고 하는 고양이에게도 늦여름의 하루는 짧다.
흐리고 더운 여름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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