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0월 1일 월요일

고양이 쿠로의 발.


고양이 쿠로의 복실한 두 손.


.

순이는 편안하게 잔다.


여름을 잘 보내고 선선해지니까, 순이는 더 편안하게 누워 잔다.
잠을 깨우고 싶지 않지만 결국은 손을 내밀어 쓰다듬고 안아주게 되어버린다.


.

여유가 없다.


공연이 끝난 후 악기들을 챙기고 있을 때에 서두르지 않아도 되면 좋겠다.
공연을 하기 위해서 악기들을 꺼내고 있을 때에 그렇게 하는 것 처럼 차근 차근, 느릿 느릿, 여유를 부릴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나 공연이 끝난 뒤 무대 위에서 내 악기를 바삐 챙기지 않고 게으름을 부린다거나, 사정이 있어서 뒤늦게 무대로 뛰어가본다거나 하면 이미 다른 장비들이 모두 빠져나간 뒤 불이 꺼지고 텅 비어있는 무대 위에 내 물건들이 여기 저기 황량하게 버려져있게 된다. 뭔가를 잃어버리는 일도 생긴다.

그래서 나는 마지막 곡을 마친 후 악기를 스탠드에 세워두고 무대에서 내려오는체 하며 앰프 뒤에 잠시 서있다가, 무대의 조명이 꺼지고 관객들이 떠나기 시작할 때에 슬그머니 무대로 다시 나간다. 그리고 재빨리 내 짐을 꾸린다.

요즘 자주 뭔가를 잊어버리기도 하고 잃어버리기도 해서 물건을 간수하는데에 신경을 쓰고 있는데, 아무래도 악기관리용 소형 공구들을 이제 다 잃어버린 것 같다. 나는 왜 늘 뭔가를 잃어버리며 다니는걸까.


.

새벽에도 곁에서.


고양이 순이는 깊은 새벽에도 매일 내 곁에 와서 자리를 지키느라 고생을 한다.
나는 그것이 고생스러워 보인다. 순이를 살며시 안아서 편안한 자리에 눕혀놓으면, 순이는 다시 일어나 그루밍을 하고 물 몇 모금 마신 후에 다시 내 곁에 찾아와 굳이 불편한 모습을 하고 졸기 시작한다. 미안하고, 안스럽고, 고맙다.

곁에 다가와 함께 있으려고 하는 것은 순이와 내가 둘이만 살 때에도 똑같았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순이가 앉은 자세에서 졸고 있는 기술이 늘었다는 정도이다.
나는 순이가 귀여워 머리를 쓰다듬어준 다음, 다시 조용히 안아서 푹신하고 넓은 의자 위에 눕혀주고 돌아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