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4월 21일 수요일

밥벌이.


원래부터 나는 혼자 돌아다니기 좋아한다.
이것을 혈액형이 AB형이라서 그렇다고, 한 친구가 말했었다.
나는 혈액형의 타입으로 사람의 성향을 구분하는 것은 엉터리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은 하지만 왜 엉터리인지는 설명을 할 수 없으므로, 친구의 말이 그르다고만 하기도 어렵다.

내가 멋대로 정해둔 혼자만의 일정이 끝나고 나면 당분간은 무엇도 하기 싫어질 때가 있다.
제일 귀찮고 싫은 것은 혼자 밥을 차려먹는 일이다.
사먹기도 싫고 해서 먹기도 성가셔서 굶고 만다.
이것은 게으르다기 보다는 책임감이 결여된 생활일 것이다. 어른이 덜 되어서 그렇다.
밥벌이라는 것은 돈을 버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끼니를 스스로 챙겨먹을줄 아는 것까지 완성해야 밥벌이일테고, 밥벌이를 제대로 해야 독립된 인간이 될 것이다.
나는 아직 멀었다.

풀처럼, 물 한 모금 햇빛 한 줌으로 살 수 있다면 좋겠다고 했다가, 쟤들도 나름 밥벌이를 하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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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다.


밝은 빛, 따스한 공기가 즐거움을 준다.
재미있는 삶이라는 생각도 했다.

오전에만 햇빛이 들어오는 방이기 때문에 일출을 넘기면 절대로 잠들기 어렵다. 나는 어두워지면 활동하고 밝아지면 잠들기 때문이다.
어제 아침에는 집을 나서면서 화분을 창가에 놓아두고 물을 한 컵 부어줬었다.
오늘 아침에 보니 꽃이 피었고, 잎은 더 밝은 녹색이 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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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4월 17일 토요일

노브라.


나는 노브라를 옹호한다는 정도로는 조금 부족하고, 적극 지지한다.
한번도 남자학교를 다니지 않았던 나는 십대 시절, 등교길에서 또래의 여자아이들의 등짝을 볼 때마다 숨이 턱턱 막혔었다. 뭐라고 그렇게 두터운 천과 철사로 가슴을 칭칭 감고 다녀야 하는 걸까, 했다. 그것이 규칙이고 지켜야할 관습이라면 이게 무슨 문명사회인가, 했었다.
맨살이 옷에 스치거나 하면 민감하고 아플 수도 있어서 그렇다면 할 수 없어도, 다른 이유로 그렇게 얽매여야 한다면 코르셋이나 다를 바 없지 않은가.
브래지어를 착용했을 때에 더 편하다거나 또 다른 실용적인 필요에 의해서가 아닌 경우에, 도대체 왜 여자들에게 가슴을 동여메도록 강요하는 것인가. 이것은 우습고 야만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네 여자라면 그렇게 말하겠느냐'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우선 여자는 네 것 내 것이 아니고 그냥 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실제로 그랬었다.
사내들의 세상은 여전히 우둔하고 무식하며 질이 낮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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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3월 28일 일요일

길바닥에서.


아스팔트 위에 앉아서 양초를 쳐다보고 있었다.
과거의 일에 집착하는 것과 과거의 일들을 기억하는 것의 차이를 알 수 있을까.
지나온 행적에 대한 기억도 판단도 정의도 내리지 못하면서 오늘을 바르게 살 수 있을까.
뭐 어떻게든 숨이 붙어있으면 살아지기야 하겠지만, 그것으로 좋다고 하면 한심하지 않은가 했다.

행동하지 않아도 좋다. 보이지 않는 선의 어느쪽에 가서 꼭 서있어야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런 선이란 각자 긋기 나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소한 생각은 스스로 할줄 알면 좋겠다.
서툴더라도 판단하려고 애써봐야한다. 미숙하더라도 고민을 하여 답을 얻어내려고 해봐야한다. 그런 것도 없이 그냥 되는대로 쓸려다니며 살다보면 남이 정해준대로 생각하게 된다.
생각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은 언제나 세상을 쥐락펴락하려는 무리들의 도구로 쓰여진다.
옳지 않은 것, 비열한 것, 모순이나 기만 앞에서 반드시 맞서 싸우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생각하는 법은 스스로 배워야한다.
그게 사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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