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2월 30일 화요일

섣달 그믐.


나는 어쩌자고 외출을 하면서 창문을 열어뒀던 것일까.
정신을 어디에 두고 다니는 것인지, 집에 돌아와보니 창틀에 눈이 쌓였고 방바닥에는 물이 흥건했다.
올 겨울은 덜 추운건가, 생각했는데 눈이 내려서 쌓였다.

함박눈이 내려서 하얗게 쌓였다.
나는 칠칠맞게 창문이나 열어놓고 다니는 삼십대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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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2월 16일 화요일

연주하고 싶다.


음악하는 친구들 중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다.
이 친구는 오래될수록 그윽한 면이 있어서 오히려 늘 새롭다.

멀리서 악기를 들고 찾아와 단 둘이 연습을 했다.
비좁은 방구석이지만 연습은 즐거웠고 한참을 집중하며 소리를 내었다.

이제 보름 후면 새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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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1월 15일 토요일

2003년 11월 9일 일요일

가을.


오후에 노란색이 가득한 것을 보고 잠시 걸었다.
늘 밤에 다니다보니 오후 세 시에 이렇게 많은 색들이 있었구나, 하며 좋아하였다.
바람은 서늘했고 텅 빈 작은 학교 운동장에는 낙엽이 구르며 쌓이며 놀고 있었다.
어리고 버릇없는 손자녀석이 바퀴가 덕지덕지 붙은 자전거를 타고 달리고 있었고, 그 뒤를 할머니가 어렵게 따라다니고 있었다.
한쪽 의자에 앉아서 노란색을 잔뜩 묻히고 있었다.

십여년 전에 한 번 가보았던 치악산 구룡사, 지리산 연곡사, 천 살이 되었다는 은행나무가 있다는 용문사, 오대산 월정사 초입의 전나무숲길. 해마다 가을이면 단풍으로 물드는 그곳들에 올 가을에는 정말 마음먹고 가보고 싶었다.

그대신 오후에 가을냄새를 맡으며 앉아서 담배를 피울 수 있었다.
올 가을은 이것으로 됐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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