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Recording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Recording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2년 4월 8일 일요일

음반 작업 중.

새 음반이 준비되고 있다. 녹음은 지난 달의 어느날, 하루에 열 세 곡을 녹음하는 것으로 끝났고 어제 믹싱을 마쳤다. 내일 마스터링을 하고 나면 머지않아 음반이 나올 것이다.
믹싱 스튜디오에 앉아 녹음된 음원들을 듣고 있으려니 아쉬운 부분들이야 언제나 뭘 해도 아쉬운 것이 있는 것이고, 우리의 소리와 연주들이 듣기 좋았다. 아무쪼록 그방에 있는 좋은 오디오로 들어보았던 그 느낌이 그대로 음반에 실려 전달될 수 있으면 좋겠다.

각자의 일 때문에 나와 상훈씨는 하루씩 나눠 후반작업에 참여했다. 리더님은 모든 과정을 한 가운데에 앉아 프로듀스했고, 멤버들과 함께 앉아 세부적인 것을 의논하며 진행했다. 밴드 멤버들의 의견은 금세 한데 모아졌다. 우리가 주문하는 내용들이 기존의 상식과 다르다며 엔지니어들은 자주 의아해했다.

윤기형님의 드럼 사운드는 마치 샘플러를 듣는 것 같았다. 단 한 번으로 이루어진 녹음이었는데 세세한 비트가 실수없이 잘 맞게 수음된 것을 들으며 다른 분들은 좋아했다. 그런데 나의 실수와 잘못은 내 귀에 잘 들렸다. 이제와서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것이 앞으로도 계속 신경쓰일 것이다. 고치거나 더빙할 수 없는 라이브 녹음이었으니 다른 방법이 없었다.

어쨌든 끝이 났다. 이제 또 새로운 것을 위해 준비할 시간이다.



.

2012년 3월 28일 수요일

녹음 장면


넓고 천장이 높은 곳에서 녹음을 했더니 멀리서 찍어준 사진이 생겼다.



.

녹음...

이번에도 상훈씨의 오래된 구형 전자오르간 소리가 좋았다.
거의 즉흥연주였던 우리들의 기록이 과연 어떻게 결과물로 나올지 이번엔 진짜 모르겠다.
아무쪼록 듣기 좋은 음악으로 되어지길.

베이스 녹음에는 D.I.도 함께 사용했지만, 아마도 대부분 AKG 콘덴서 마이크와 SHURE 다이나믹 마이크로 수음된 소리 위주로 될 듯.


.

녹음.

하루 동안의 녹음이었다.
이번엔 녹음한 곡 마다 사용한 악기와 이펙터의 조합 등을 기록해뒀다.
사실... 기록해둔다고 어디에 긴요하게 쓰일 것도 아닐텐데.

 
모든 것이 끝난 직후 내 정신상태와 가장 흡사해보였던 장면.


.

2012년 3월 24일 토요일

녹음 장면.

만 하루 (온전히 스물 네 시간) 동안의 일을 마치고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찍어둔 사진.



하루 동안의 일들을 모두 사진으로 기록해두고 싶었는데 도저히 그럴 여유가 없었다.


.

2011년 12월 15일 목요일

새 버젼 녹음.

이 날의 녹음은 아주 쾌적했었고, 스트레스 받는 일도 없었고, 정말 그날 오후의 커피 맛이 기억날 정도로 상쾌했다. 두 세 번 합주로 끝나버린 녹음이어서 심지어 녹음을 마치고 시간이 남았다. 나는 멤버들과 헤어져 밀려있는 다른 일을 하러 가기도 했다.

촬영에 비협조적인 멤버들을 카메라맨들이 잘 찍어주시고 편집도 잘해주셨다.




.

2011년 11월 9일 수요일

녹음실에서.

indie2go from Instagram
11월 7일, 벨벳 녹음실에서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를 녹음했다.
산울림 헌정 음반에 이 곡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김창완밴드의 트랙으로 수록될 예정이다.
리더님의 새로운 구상에 따라 편곡을 바꾸어 연습해 본 것이 두어 번. 그것을 공연할 때에 무대 위에서 해 본 것이 서너 번... 이 날 실제 녹음 시간 두 시간, 연주는 합주로 세 번이었다. 마지막 것으로 테이크했다.
베이스는 앰프 없이 Moollon의 D.I.와 컴프레서, EQ, 시그널 부스터만 사용했다.

새 편곡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있을 수 있겠지만, 나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뭔가 더 덧입히려고 애쓰는 것 보다는 더 이상 빼거나 생략할 것이 없을 때에 진솔해진다. 음악도 인간관계도 비슷하다.


녹음은 쾌적하고 즐거웠다.


.

2011년 8월 31일 수요일

라디오

새 음반 홍보를 위해 연달아 라디오 방송들이 잡혀 있다.
라디오의 부스는 어느 곳이라고 해도 반가운 느낌이 있다.
이제는 말장난으로 FM 주파수를 소비하는 프로그램들이 더 많다. 그렇지만 여전히 음악으로 위로를 나누고 마음을 토닥여주는 분들도 있다. 라디오 스튜디오의 모습이 영상으로 보여지는 것이 좋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러나 아마 머지않아 거의 모든 방송이 그렇게 변해지겠지.



.

2011년 8월 20일 토요일

새 음반

하루만 더 쉬고 싶다는 욕심과 내일도 할일이 있다는 위안이 섞이는 밤이었다. 김창완밴드의 이번 음반은 정확히 2011년 6월 12일 하루에 모두 녹음했다. 손에 쥔 음반이 마치 그날 찍어둔 사진 한 장 같다.

내 앞에는 지금 두꺼운 책도 있고, 어지러운 악보도 있고, 심난한 뉴스와 가증스러운 인터뷰 기사도 있고, 아내의 결혼전 사진과 밤새 말썽 피우는 어린 고양이도 있고, 물기를 먹은 악기들과 반쯤 비워진 담배갑도 있다.

그리고 그런 것과 상관없이 잠은 오지 않고 하고 싶은 것과 해야할 것들은 맨날 머리 속에서만 서로 다툰다.



.

2011년 1월 10일 월요일

마이크로폰

녹음실의 마이크.



,

2009년 9월 12일 토요일

새 음반이 나왔다.


새 음반이 나왔다.
집에 오는 길에 자동차의 시디 트레이에 음반을 넣어 처음부터 한 번 더 들어봤다.


지난 달에 녹화했던 프로그램이 방송되었다.
아내가 그려준 자코 셔츠를 입었다. 그 즈음 새로 구입했던 Moollon J-Classic을 사용했다.
음악 프로그램이라면서 앰프를 사용할 수 없게 하는 신기한 방송이었기 때문에, 이것을 기회삼아 D.I. 를 위한 사운드를 준비해봤다. 사용했던 것은 Moollon에서 나온 콤프레서 뿐이었다.
새 베이스는 엘더 바디에 메이플 넥, 마카사 에보니 핑거보드이고, 꽤 가볍다. 연주하기도 편하다. 소리도 좋다. 그리고 비싸지 않다.
광고같지만 새 악기를 구입하려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이런 악기를 많이 구입해주면 좋은 국산악기들이 더 많이 나오게 될 것이다.


,

2009년 9월 5일 토요일

올 여름의 페달 세팅


이펙터들이 많이 늘어났는데, 페달보드는 더 이상 만들지 않기로 하고 있다.
전부 늘어놓고 조합의 순서를 자주 바꾸며 쓰는 것이 더 좋다. 페달보드가 늘어나면 결국은 별도의 스위치 박스 / 이펙터 콘트롤러까지 준비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렇게까지 음향장치를 사용할 음악을 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사실 멀티이펙터 한 개 정도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기도 하기 때문에 이 정도의 간소한 짐이 지금은 좋다.

올 여름 내내 함께 전국을 누볐던 페달보드의 조합은 단촐했다. Moollon의 콤프레서와 Xotic의 시그널 부스터의 도움을 많이 받다. 소닉 맥시마이저의 사용을 가능한 줄이려했는데 Moollon의 콤프레서 덕분에 그것이 가능했다. 굳이 잘 골라진 악기의 소리를 또 한 번 매만지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고, 가능하면 앰프의 사운드를 순수하게 내보고 싶었다.

Boss의 리미터/인헤인서를 잠시 쉬게 하고 그 자리에 일렉트로 하모닉스의 Steel Leather를 넣었다. 가용 범위가 넓어서 약간의 게인으로만 준비하고 특별한 경우에만 선택하여 사용했다. 일렉트로 하모닉스의 베이스용 빅머프는 퍼즈톤이 필요한 경우에 사용했다. 지나치게 잡음이 없어서 처음엔 무척 생소했다. 베이스의 저음을 지나치게 왜곡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 이 제품을 고안한 분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퍼즈의 좋은점은 전력소모가 적다는 것이다. 여름이 시작될 때에 교환해놓았던 건전지를 그대로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중이다.

컴프레서 옆의 푸른색 페달은 Dunlop MXR M288 베이스 옥타브 디럭스이다. 페달 내부의 미들 레인지 영역을 너무 과장하여 조작해버린 덕분에 공연 도중 큰일을 낼뻔했었다. 공장출시 세팅이 제일 아름다운 소리를 내주는 것 같다. 이 페달 때문에 그 자리에 있던 베이스볼은 방안의 상자에 담겨져버렸다.
한 가운데의 코러스와 리버브는 이제 모든 공연에서 항상 사용하고 있다. 당분간 가을의 공연까지는 지금의 조합으로 계속 사용하게 될 것 같고, 여기에 가끔씩 특별한 것들이 연결되거나 할 것이다.

이런 저런 이펙터를 사용하기, 혹은 사용하지 않기를 배운 과정에는 저보다 먼저 오래도록 연구하고 실험해왔던 친구들의 힘이 컸다. 먼저 해보았던 친구들 덕분에 내가 혼자 겪었어야했을 시행착오를 많이 줄인 셈이다. 그들에게 늘 고마와한다.

이번 주에 새 음반이 발매된다. 새 음반의 녹음은 이펙터 없이 베이스와 앰프의 사운드로만 녹음했다.


,

2009년 2월 20일 금요일

라디오 방송.


라디오 스튜디오는 어느 곳이나 편안하다.
좋아하는 것들만 들어있는 방이어서 그런 것일까.




,

2009년 2월 3일 화요일

라디오 스튜디오에서.


방송을 마친 직후에 악기를 정리하며 한 장 찍어두었다.
오래전에는 라디오 스튜디오에도 방송사 소유의 베이스 앰프가 있었다. 그것만 기억을 하고 갔던 것인데 앰프는 없었다. 대신 좋은 D.I. 박스가 있었다.
고민하다가 페달보드를 가져갔던 것이 다행이었다.




,

2009년 1월 10일 토요일

녹음실에서.


열두살은 열두살을 살고... 라는 곡을 녹음하고 있는 장면이었다.
나란히 자리를 잡고 앉아서 말없이 녹음만 했었다.



,

2008년 12월 25일 목요일

노래.


지난 한 주 동안은 녹음과 공연들 덕분에 어지럽게 밀려있던 레슨들을 보충하느라 바빴다.
몇 시간 전에 잠을 자다가 내 잠꼬대 소리에 내가 깨어버리고 말았다. 일주일 내내 약장수처럼 레슨을 하다가 보니, 꿈속에서도 누군가를 가르치고 있었다. '옥타브를 동시에 눌러봐'라고 내가 소리내어 말하고는, 깜짝 놀라서 잠을 깨어버리고 말았다. 어휴.

언제나 불면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 대부분이었다. 요즘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어서 비교적 잘 자는 편이 되었다. 여전히 밀린 잠을 몰아서 자버리는 날도 있기는 하지만 예전의 것과 비교하면 행복한 수면생활을 하고 있다. 다만, 자꾸 잠결에 노래가 들려서 깊이 잠들지 못한다. 악기소리와 겨우 싸워 이겨서 잠에 빠지고 나면 꿈결인지 뭔지 모르겠으나 자주 노래가 들린다. 무슨 노래들인지도 모르겠고... 노래를 부르다가 놀라서 깨어나거나, 음악 이야기의 통화내용을 큰 소리로 말해버리다가 벌떡 일어나 잠꼬대를 멈추는 일이 점점 잦다. 
함께 살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고역일까.



,

2008년 12월 15일 월요일

장난감 악기.


김창완 밴드의 '우두두다다'라는 곡의 간주 부분은 음정이 맞지 않는 멜로디가 기타의 솔로와 섞여서 들리게 되어있다. 이것은 Matrix Synth, 혹은 그냥 Mini Analog Synth라고 불러줄 수 있는 장난감 키트 제품의 소리를 더빙한 것이다.
정식 이름은 가켄 SX 150으로, 장난감이라고는 했지만 연주자의 아이디어와 쓰임새에 따라서 범위가 넓은 연주도 가능할 수 있는 악기이다.

음반에 담긴 소리는 밴드 리더님의 연주였다.

이것을 연주하는 장면이 TV의 화면에 나오게 된 후 그것을 궁금해하는 분들이 있었다. 음반의 속지에 이 악기의 명칭이 적혀있다. 웹을 검색해보면 간단한 회로도와 미디로의 연결 요령, 쓰임새 등등이 자세히 설명되어있고, 유튜브에는 동영상들도 있었다.

위의 사진은 https://www.flickr.com 에서 가져왔다. 



,

2008년 11월 26일 수요일

새 음반이 나왔다.


지난 달 말에 녹음했던 음반이 나왔다.
후반작업을 이번 달의 중반까지 계속 해왔다.
녹음했을 때에 메모해둔 것을 읽으며 11월이 되어버린 이제야 옮겨 적는다.
실제 녹음은 10월의 마지막 사흘 동안이었다.
-----

너무 중언부언하고 싶지는 않지만 나는 여전히 아쉽다. 두 가지의 믹스, 마스터링 중의 한쪽을 선택해야했기 때문이다. 동의했고 결정되어버렸는데도 자주 아쉽다. 그래서 밴드의 일로 말하자면 베타버젼의 작은 음반으로 여겨지게 될 것 같다. 적어도 나로서는.

여섯 개의 곡들을 순서대로 멤버 전원이 동시에 합주를 하는 것으로 녹음했다. 녹음은 당연히 매우 빨리 진행되었다. 여러차례 테이크를 반복할 필요가 없기도 했다. 짧은 시간에 집중해야할 것들이 많았는데 너무 여유가 없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동료들 사이의 신뢰 덕분에 일이 일답게 진행될 수 있었다. 삼고초려로 초빙했던 외국의 엔지니어분은 함께 저녁식사를 할 때에, '이렇게 멤버들끼리 친한 밴드는 오랜만입니다'라고 해줬다.

한 곡에서 플렛리스 베이스를 사용했다. 연습하고 준비하는 기간에는 합주실에 가지고 나가지도 않았었다. 합주연습을 할 때 마다 집에 돌아와서 플렛리스로 녹음할 생각으로 연습해뒀었다. 녹음 하루 전에 상훈씨에게 언뜻 의사를 비췄더니 '해보라'고 하길래, 녹음 직전에 다른 사람들의 동의를 구하지도 않고 플렛리스를 꺼내어 그냥 해버렸다. 모두들 '저 녀석이 뭐 잘 알아서 하겠지' 정도로 생각해줬던 것 같아서 그게 고맙다. 이 곡은 그래서, 플렛을 제거한 프레시젼 베이스에 콤프레서, 암펙의 SVT2가 전부였다.

8비트의 연주곡과 컨트리 형식의 노래, 다른 두 곡에서는 늘 가지고 다니던 재즈베이스를 사용했다. 코러스와 콤프레서, 시그널 부스터를 썼다. 가능한 앰프의 소리만 내고 싶었기 때문에 자주 모두 바이패스해둔 부분이 있다. 록음악을 연주하기에는 내 악기의 현고가 모두 낮기 때문에, 녹음 당일에는 브릿지를 조절해서 조금씩 올려두었다. 집에 돌아와 다시 브릿지와 픽업의 높이를 맞추느라 시간을 들여야했다. 피크를 사용한 것은 두 곡. 엔지니어분의 제안으로 한 곡에서는 오래된 베이스맨 앰프를 빌어와 게인을 잔뜩 걸어 드라이브 소리를 더빙했다. 암펙에서의 드라이브도 해보고 싶었지만 워낙 '빨리 빨리' 했어야 했던 분위기여서, 펜더의 베이스맨만 사용하고 말았다.

나머지 한 곡에서는 구입한지 얼마 되지 않은 5현을 사용했다. 악기 자체의 게인이 센 편이어서 앰프의 음량을 낮춰야했다. 이펙터는 아무 것도 연결하지 않은 상태로 녹음했다. 기타앰프를 연결한 상훈씨의 클라비넷 사운드와 기타의 소리가 중음역대를 메우고 있었기 때문에 그 부분을 더 어지럽히고 싶지 않아서, 결국 낮은 D의 음은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두 번의 테이크로 녹음을 마치게 되었다.

보컬 녹음이 정말로 빨리 끝나버렸기 때문에 멤버들은 몇 가지의 더빙을 더 시도해볼 시간을 얻었다. 우리 밴드 리더분의 보컬 녹음 장면은 감탄할만 했다. 목소리와 힘을 제어하는 방법도 방법이거니와 마이크를 사용하는 방법, 잘 계획되어진 순서... 역시 연륜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후반작업의 맨 마지막에, 두 개의 결과물을 두고 선택을 했어야만 했다. 녹음작업부터 함께 관여하고, 실질적인 프로듀싱을 해줬던 엔지니어 N씨의 후반작업이 나는 좋았다. 그러나 다른 쪽으로 결정했어야 했고, 음악이라는 결과물 앞에서 어느쪽이 최선인지에 대하여 판단의 책임을 질 수가 없었다. 여전히 아쉬움이 많고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결정을 내려야하는 분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연주자가 되었든 창작자가 되었든, 어느 정도의 레벨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논리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살면서 배웠지 않았느냐고 자신에게 타이를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을 존중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 아니라, 아직도 나에게는 그만한 논리라는 것이 갖춰져있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저 '더 좋다는 말입니다'라는 것으로는 너무 부족했다.


.

새 음반.

어쨌든 버젼 0.5의 베타 음반이 나왔다. 이것이 좋은 일들의 좋은 시작이 되면 좋겠다.
굳이 정관사를 붙여 최상급의 단어를 만들어 붙인 'The Happiest'라는 이름 속에는, 오래된 한 뮤지션의 반어법적인 역설이 있다고 나는 짐작해본다. '가장 행복한' 사람의 내면에는 지긋지긋할 정도의 고독과 외로움이 녹아있다. 누구라고 해도 그런 것은 그저 겨우 짐작해보기나 할 뿐, 본인의 것으로 여길 수는 없는 것이 있는 법이다.


,

2007년 12월 18일 화요일

녹음실.


오랜 친구와 나란히 앉아 악보를 앞에 두고 음악을 조물락거리고 있었다. 햇빛은 밝았고 방안은 따뜻했다. 건물의 높은 층에 녹음실이 있는 것이 더없이 좋았다. 지하가 아닌 것만으로도 상쾌했다. 문제는 흡연이었다. 담배 피우면 혼을 내겠다는 협박 문구들 때문에 녹음하는 내내 현관 밖으로 나가 덜덜 떨며 담배를 피웠다.
미국 흉내내기의 일환으로서의 금연정책 때문에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렇다) 문화 예술의 질이 떨어지고 있다라던가 하는 통계자료는 나올 수 없을까, 생각했다. 무엇인가 좋은 느낌이 들만하면 담배를 피우기 위해 나갔다 들어오느라고 양질의 음악을 녹음할 수 없었어요... 따위의 핑계를 댈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