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20일 금요일

짤이가 떠났다.

 

지난 화요일 아침에, 갑자기, 고양이 짤이가 죽었다. 꼭 끌어안은 아내의 품 안에서 세상을 떠났다. 열흘 전 동물병원에 갔을 때에 다시 심장이 나빠져 있다고 듣긴 했었다. 그러나 이렇게 별안간 가버리고 말 줄은 몰랐다.

아내는 아직 짤이를 안은 채 쓰다듬으며 속삭이고 있다가, 외마디 소리를 지르듯 가늘고 짧게 울음을 터뜨렸다. 우리는 고양이를 편하게 뉘이고 집안을 대충 정리했다. 집에서 가까운 곳에 생긴 동물 장례장에 짤이를 태우고 가는 동안 우리는 아무 말도 서로 하지 않았다. 내가 아무리 슬퍼한다고 한들 수 년 동안 자기의 일상 전부를 고양이를 돌보는 데에 바치고 있었던 아내의 마음만 할 리가 없었다.

어제 낮에 동네 꽃집에 가서 장미 열 송이를 샀다. 짤이의 재가 담긴 단지 곁에 꽃을 놓아두었더니 깜이가 몹시 궁금해했다. 깜이를 번쩍 들어올려 꽃 향기를 맡게 해줬다. 십 년 전에 순이가 떠났던 날, 고양이 꼼이는 집안을 돌아다니며 순이를 찾다가 나를 올려다보며 뭐라고 말하듯 울기도 했다. 깜이는 꼭 그날 꼼이처럼 이쪽 저쪽 방을 옮겨 다니며 짤이를 찾다가 불안한 눈으로 나를 보며 낮고 길게 야옹 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지는 베란다 문을 열어달라고 하더니 뭔가를 찾는 듯 다니고 있었다.

십오 년 세월을 거슬러 짤이가 담긴 사진들을 찾아 보았다. 사진 속에서 어리고 천진한 고양이가 즐겁게 놀고, 이제는 먼저 떠나고 없는 고양이들과 몸을 대고 낮잠도 자고 있었다. 짤이는 또래인 고양이 이지에게는 장난도 먼저 걸며 친하게 지내면서도 언제나 양보하고 져주곤 했다. 지난 십년 동안엔 자기처럼 아파트 길에서 우리집으로 들어와 식구가 되었던 깜이를 보듬어주고 마음씨 좋은 형의 역할을 맡아 해줬다.

아내는 유리 꽃병에 장미를 담아 짤이가 들어있는 단지 곁에 놓아두고 그 옆에 조명을 켜놓았다. 진하지 않은 꽃내음이 밤새 그 주변에 떠다니고 있었다. 짤이, 안녕, 이라고 그 앞을 지날 때마다 인사를 해줬다.

2026년 3월 15일 일요일

강릉에서

아침 일찍 출발하여 공연장 근처 주차장에서 쪽잠을 잤다. 리허설을 마치고 다시 차에서 삼십 분 잤다. 덕분에 개운한 몸으로 공연을 했다.

유난히 모니터 사운드가 좋았다. 악기의 상태도 좋았고 소리도 좋았다. 연주하는 기분도 좋았다. 오전에 배가 고파서 들렀던 식당에서 칼국수를 한 그릇 먹었다. 작은 식당엔 서너 명 노인이 모여 앉아 낮부터 소주를 두고 두런두런 대화를 하고 있었는데, 참 오랜만에 듣는 강릉 사투리와 억양이었다.
돌아올 때엔 왜 그렇게 잠이 쏟아졌는지, 자동차 창문을 열어보기도 하고 혼자 고함을 질러보기도 하면서 겨우 집에 왔다.


 

2026년 3월 11일 수요일

강변에서

 

저녁에 강변을 걸으면서 음악을 듣다가 잠시 멈추어 섰다. 십여년 전에는 자전거를 타고 밤낮 없이 달리고 있던 길 옆에서 곡선을 그리며 흘러가는 강을 보다가 다시 걸었다.

나는 우연히 전쟁이 끝나고 십오년 후에 태어나 부모 덕분에 궁핍과 가난을 겪지 않고 자랐다. 나를 둘러싼 사회에 온갖 부조리와 폭력이 시꺼먼 기름때처럼 묻어있던 십대, 이십대를 지나서, 그래도 반 걸음 나아졌다가 다시 몇 걸음 후퇴하곤 했던 땅에서 용케 살았다. 나는 성공하지 못하였지만 그렇다고 망하지도 않았다. 운이 좋았고, 찾아오는 기회를 쥐기 위해 무척 애쓰기도 했다. 모든 것은 우연히 이 시기에 여기에서 생겨나 살고 있던 덕분이다.

그러는 동안 먼 나라에서 들려오는 침략과 전쟁 소식을 듣지 않았던 적이 한번도 없었다. 지금 바다 건너 저쪽에서 죄없이 사람들이 죽고 도시가 폐허가 되어가는 뉴스를 보는 것이 힘들고 괴롭다. 특별히 기쁜 일이 없었어도 저렇게 고요하게 흐르는 강처럼 평안한 일상을 보낸 것이 큰 혜택처럼 느껴져서, 한번 더 힘들었다.

2026년 2월 27일 금요일

프리버드에서

금요일 오후, 강변북로는 정체가 심했다. 일찍 집에서 나왔기 때문에 시간 여유가 있었다. 갓 나온 Pat Metheny의 새 앨범과 Jeremy Pelt의 앨범을 들으며 운전했다. 몇 년만에 상수동 그 거리를 베이스를 짊어지고 걷는 기분이 어색했다. 오늘은 64 Audio 인이어를 썼는데, 아주 편했다. 사운드체크를 하고 나서 공연 시간이 될 때까지 차에서 음악을 들으며 잠깐 잤다. 조금이라도 틈이 나면 쉬는 수밖에 없다.

시간이 되어 무대 위에 자리를 잡고 섰는데 갑자기 오른쪽 팔에서 경련이 나기 시작했다. 일주일 동안 왼쪽 어깨가 아파서 반대쪽에 힘을 주어 의지하고 있었던 탓이었다. 이런 상태가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음이 났다. 허리가 심하게 아팠던 때에도 장거리 운전을 하고 공연을 하러 다녔으니까 이 정도는 뭐 견딜 수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가능한 힘을 빼고 여유롭게 연주하려고 했다. 공연 중간 쯤 되니 몸이 풀렸는지 더 이상 아프지도 않았다.
아무튼 이 달 중 제일 중요했던 한 주를 어깨 통증 때문에 고생하며 보내야 했다. 집에 돌아와 짐을 내려놓고 악기와 케이블을 닦았다. 침대에 누웠지만 잠은 쉽게 오지 않고 피곤하기만 했다. 이제 좀 더 치료를 받고 나면 곧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2026년 2월 26일 목요일

태안에서

 

지난 주말에 갑자기 어깨에 심한 통증이 생겼다. 치료를 받고 겨우 팔을 쓸 수 있게 되었지만 다 낫지는 않은 상태였다. 하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일정이 있었던 때에 아프게 되어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예상하지 못한 통증, 갑자기 어딘가가 아픈 것에 언제나 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리허설을 한 다음 차에서 계속 드러누워 쉬어야 했다. 오늘 공연은 평소보다 짧은 것이니까 버틸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 시간 동안 거의 자세를 바꾸지 않고 연주해야 했다. 인이어는 그동안 쓰고 있던 Galdiolus 커스텀을 가져갔다. 몇 달만에 들어보니 어딘가 소리가 부산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마 내 상태가 불안정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쪽 팔을 쓰지 못하여 운전할 때에도 힘이 들었다. 집에 돌아와서야 긴장했던 것이 좀 풀렸다. 주사와 침을 맞고 부항시술을 받아 흉측하게 되어 있는 어깨에 다시 큼직한 패치를 붙이고 쉬었다. 하도 어깨와 팔에 신경을 쓰며 연주했더니 공연 내용이 거의 기억이 나지 않았다.


2026년 2월 17일 화요일

말띠 해

 

오늘은 설이다. 고양이 이지는 열 일곱 살이 됐다. 당뇨를 다 이겨내고 건강하게 잘 지낸다. 그 뒤에는 두꺼운 공책에 가득 시간과 횟수를 기록해가면서 고양이에게 약과 밥을 손가락으로 떠먹이고 있는 아내의 고단함이 있다. 벌써 몇 년째 나이 많은 고양이들을 돌보느라 아내는 긴 시간 외출도 해본 적이 없다. 이지와 아픈 짤이가 편안하게 잘 지내주고 있는 것이 아내의 고생에 대한 유일한 보상이다.

짤이는 열 다섯 살이 됐다. 이 고양이는 작년에만 동물병원에 스무 번 다녀왔다. 이제 한쪽 뒷다리를 완전히 쓰지 못하고 있어서 아내는 밥과 약을 먹이고 피하수액을 주사해주는 것 뿐 아니라 시간에 맞춰 화장실에 데려가 오줌과 똥을 누고 있는 동안 고양이가 서있을 수 있도록 두 팔로 감싸 안은 채 돕는 일을 매일 여러 번 하고 있다. 짤이는 도움이 필요하면 고개를 들어 사람을 찾지만 그렇다고 소리 내어 부르거나 하지 않는다. 아내나 내가 근처에 보이지 않으면 영차, 하고 일어나서 쓰지 못하는 다리를 끌고 어떻게 해서든 화장실로 간다. 그러다가 넘어지기도 하고 용변을 보면서 힘을 주고는 그만 철푸덕 쓰러져버리기도 하지만, 우리가 달려가 뒤늦게 부축이라도 해주면 다시 기운을 내어 제 자리로 걸어가려 애를 쓴다. 자기연민이나 칭얼거림은 하나도 없다. 나는 고양이 짤이가 그런 모습을 보일 때 늠름하다고 생각한다.
거기에다 이제 아내는 제 오빠의 개 율리까지 낮 시간에 돌보고 있은지 일 년이 넘었다. 지난 해 여름부터는 평일이면 매일 열 시간 씩 율리는 이 집에 와서 지낸다. 아내는 정해진 시간에 맞춰 나이 많은 고양이 두 마리를 돌보다가 그 사이 비는 시간에 개를 데리고 나가서 몇 번씩 산책을 시키고 돌아와 개에게 밥과 물, 간식을 주고 있다. 개 율리는 고양이들이 있는 곳을 어린이집처럼 다니면서 표정이 더 밝아졌다. 살이 오르고 건강해지기도 했다. 열 살 짜리 동갑내기인 고양이 깜이는 여전히 개가 함께 있는 것을 마뜩해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미워하는 법도 없다. 개는 개대로 고양이들 사이를 조심조심 다니고 나이 많은 고양이들은 의도적으로 개를 무시하는 듯 관심을 두지 않는다. 심심한 깜이만 율리에게 다가가기도 하고 놀자고 해보기도 하는데, 정작 율리는 까만 고양이와 그다지 친해지고 싶어하지는 않아서 깜이가 다가오면 가만히 벽을 보고 돌아 앉는다.
아내가 잠깐 쉴 수 있는 시간이 되면 고양이들과 개가 동시에 낮잠을 자는데, 그럴 때엔 집안이 더없이 고요하다. 나는 스피커를 끄고 헤드폰이나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거나 방문을 닫고 악기 연습을 한다.
올해는 말띠 해라고 했다.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나는 잘 모른다. 다만 언제나 그렇게 기원하고 있었듯이 올해에도 매일 아무 일 없이 평범한 일상이 계속되길 바란다.


2026년 2월 11일 수요일

포항에서

여섯 시 오십 분에 집에서 출발했다. 아홉 시 사십 분 쯤, 휴게소에 들러서 라면을 먹으며 좀 쉬었다. 미세먼지가 극심했었는데 자동차의 앞뒤 카메라에 시커멓게 먼지가 묻었다가 말라붙어버렸던 탓에 운전자보조 기능 일부가 작동하지 않았다. 열 한시에 포항에 도착하여 주유소에서 연료를 채우며 자동차의 카메라들과 센서들을 닦았다.
그 휴게소 라면은 참 맛이 없었는데, 아주 맛있게 먹었다.

나흘 전 공연에서 악기의 출력이 약하게 들리고 있었다. 한 달 동안 집에서 연습할 때에 페달에 헤드폰을 연결하여 쓰고 있었다. 그 때문에 이펙트 페달의 볼륨이 많이 줄여져 있었는데 리허설을 할 때에 괜찮은 것 같았어서 그대로 했더니 공연할 때에 좀 부족하게 들렸다. 이번엔 원래 했던대로 출력을 조정했다. 줄의 액션도 미세하게 조정하여 연주하기에 편했다. 새로 산 인이어들도 모두 좋은 소리를 내줬다. 오늘은 Ziigaat 이어폰을 썼다. 새해 두번째 공연은 앞의 것보다 좀 더 좋았던 것 같았다.

공연을 잘 마치고 집을 향해 출발했다. 고속도로에 진입하자 갑자기 졸음이 쏟아졌다. 틀어둔 음악의 음량을 크게 해보기도 하고 잠시 꺼두어보기도 했다. 창문을 열면 금세 공기청정기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지난 번 대구에 다녀올 때처럼 졸음 운전을 하게 될 것 같아서, 졸음 쉼터에 멈추었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아주 작은 볼륨으로 음악을 들으며 잠들었는데, 그만 한 시간 넘게 자고 일어났다. 그 덕분에 개운한 상태로 집에 올 수 있었다.


2026년 2월 7일 토요일

연세대 대강당 공연

 

올해 첫 공연. 기온이 뚝 떨어졌다고 들었지만 추위를 만만하게 보고 나갔다가 덜덜 떨면서 리허설을 했다. 아무리 지어진 지 육십 년이 넘었다고 하지만 대강당 무대 위에 마치 바람이라도 부는 듯 추웠다. 사운드체크를 하는 중에 대기실에 달려가 외투를 다시 걸쳐입고 돌아와 리허설을 마쳤다.

리허설을 할 때에 새로 구입한 64 Audio 인이어를 써보았다. 한 시간 남짓 써본 후 지난 일년 넘게 사용해왔던 커스텀 인이어는 꺼내어보지도 않고 다시 가방에 담았다. 64 Audio를 착용하고 두 시간 넘는 공연을 잘 했다. 가볍고 착용감이 거의 없어서 편했다. 볼륨을 많이 올려도 귀를 자극하는 소리가 없었다. 귀가 편하였어서 공연을 마친 후에 몸도 피곤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공연에서 처음 연주해보는 새 노래도 무대 위에서 잘 표현되었던 것 같다. 첫 공연을 잘 해서 기분이 좋았고, 얇은 옷을 입고 갔던 바람에 너무 추웠다. 손이 시려울 지경이 되어서 공연 뒷 부분은 피크로 연주했다. 내가 겨울 날씨를 우습게 본 것이었다. 다음 주에는 포항에 가는데, 기온이 오른다고 해도 두꺼운 옷을 가지고 가기로 했다.


2026년 1월 20일 화요일

랄프 타우너

 



랄프 타우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짧은 두어 줄 기사로 읽었다.

먼 여행에서 돌아온 후에, 고된 공연을 마치고 운전할 때에, 어떤 겨울날 모든 일이 무상하게 느껴져 마음이 얼어있었을 때에 그의 음악에서 위로를 받았었다.

그는 리더로서 녹음했던 대부분의 앨범을 ECM에서 냈다. 그 레이블을 떠올리면 그가 동시에 떠오른다. 그의 음악을 듣다가 알게 됐던 연주자들이 많았다. 자주 반복하여 듣지 않았어도 그의 연주를 듣고 나면 그 공기가 향기처럼 오래 남았다. 냄새를 기억하듯 문득 생각이 나서 그의 음악을 꺼내어 들어보곤 했었다.

새벽에 일어나 그의 마지막 앨범을 듣고 있었다. 이 앨범의 맨 끝 곡 이름은 Empty Stage 였다. 사방이 조용한 이 시간이 좀 더 지속되었으면 했다.


2026년 1월 7일 수요일

바람불어 좋은 날

 

유튜브에 누군가가 1980년 영화 <바람불어 좋은 날>을 통째로 업로드 해놓은 것을 발견했다. 혹시나 하고 검색해보았다가 찾았다. 군데군데 빨리 돌리기를 하면서 영화를 다시 보았다. 거의 삼십여 년만에 다시 본 것 같다. 마지막에 봤던 것은 텔레비젼에서였던 것 같다. 내 기억이 맞는지 자신은 없다. 감독은 이장호이고 조감독 중에 배창호 감독이 있었다. 나중에 텔레비젼 프로그램을 촬영하러 라오스에 갔다가 말라리아에 걸려 죽고 말았던 김성찬이 나오고, 이장호 감독의 동생인 연극배우 이영호가 함께 주연으로 나온다. 그리고 한 영화에 모두 출연하기 어려울 것 같은 배우들이 잔뜩 나온다. 김희라, 임예진, 유지인, 김보연, 최불암, 김영애, 김인문, 박원숙, 추석양 등이 한꺼번에. <별들의 고향>이 입봉작이었던 이장호 감독의 명성이 작용했던 것이었을까.

나는 이 영화를 중학교 여름방학 때에 화양동 골목에 있던 동시상영 극장에서 보았다. 한낮에 어두운 상영관 안에 들어가면 자욱한 담배연기가 영사기 빛에 반사되어 떠다녔다. 사람이 없어도 마냥 편안하게 영화를 볼 수는 없었다. 학교 선생들이 검문하며 지나다니기도 했고 몇 푼 돈을 뺏으려고 하는 양아치들을 만날 때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볼 때엔 다른 생각은 잊고 집중하여 스크린만 보고 있었다. '방화'도 유치하지 않을 수 있다고 처음 생각하게 된 영화였다.

거기에 나오는 동네는 그 몇 년 전에 내가 살았던 길동과 닮았었다. 이발소, 중화요리집, 오른쪽에 운전석이 있는 낡은 수입차는 화양동, 신당동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이었다. 주인공 덕배는 동시상영 영화관에서 마주칠 수도 있는 인물처럼 보였다. 음악만 아니었다면 더 좋은 영화가 될 뻔 했다고, 이제 막 카세트 테이프를 사모으며 음악에 빠져들고 있었던 열 네 살짜리 사내아이는 생각했었다.

잭 드죠넷, 안소니 잭슨이 죽었을 때에는 그들의 음악을 들으며 고마웠다고, 블로그에 추모하는 글을 쉽게 쓸 수 있었다. 그러나 배우 안성기 씨가 일흔 넷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는 외국인 연주자들을 향해 추모한다느니 했던 것처럼 선뜻 마음을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그대신 계속 <바람불어 좋은 날>이 생각났다. 이 영화를 다시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분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