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28일 월요일

잉크, 고양이들

 


지난 주엔 울산에 다녀와서 파커 블루블랙 잉크를 다 썼다. 이번 주엔 울산에서 돌아와 다이어민 제트 블랙 잉크를 남김 없이 썼다. 글입다 잉크와 펠리칸 블랙 잉크 잔여분을 모아 놓았던 용기에 조금 남은 다이어민 잉크까지 같이 담았다.

울산에서 길고 지루한 대기 시간을 보내던 중에 아내가 집에서 사진을 보내줬다. 요즘 고양이 깜이에게 밥을 주려고 하면 언니 고양이들 두 마리가 금세 나타나서 깜이의 밥을 빼앗아 먹으려고 든다. 당뇨식과 신장을 보호하는 사료를 먹이고 있다보니 아무래도 맛이 없는지 두 마리 언니 고양이들은 깜이가 먹는 사료를 자주 탐내고 있는 것이다. 아내가 헌신적으로 고양이들을 돌보아 병을 치료한 덕분이다.


2025년 7월 27일 일요일

다시 울산에

 

일주일만에 같은 호텔에 다시 왔다. 오전부터 운전하고 한 시간 리허설, 두 시간 공연, 그리고 이어진 다섯 시간 장거리 운전 끝에 숙소에 도착하여 침대 위에 벌러덩 누워 잠시 가만히 있었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 샤워를 하고 책상 앞에 앉았다. 너무 일찍 누워 잠들어버리면 이른 시간에 깨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지난 달 대통령 당선일부터 쓰기 시작했던 클레르퐁텐 공책을 다 쓰고 새 공책을 쓰기 시작했다. 사탕수수로 만든 종이의 품질이 아주 좋아서, 혹시 인터넷으로 살 수 있으면 주문해보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긴 시간 운전하며 음악을 들었다. 앨범 한 장이 끝나면 잠시 조용히 달리다가 다른 음반을 틀어 끝까지 들으며 왔다.

낮에 태화루 건너편에 차려진 야외무대에 가서 리허설을 하고 호텔로 돌아와 주차장에서 차에 앉아 에어컨을 켜두고 쉬었다. 오후에 다시 공연장소에 가서 네 시간 동안 대기하고, 셋리스트에 없었던 곡까지 추가로 한 곡 더 연주했다. 정말 더웠지만 그곳에서 온종일 햇빛을 견디며 땀을 흘리고 있는 스탭들을 보면 더위를 불평할 수 없었다. 연주를 마치고 차 안에서 반바지로 갈아 입었다. 찬 커피를 한 컵 사서 집으로 출발했다. 리디북스에서 제공하는 책 읽어주기 기능이 업그레이드 되었는데, AI 음성이 꽤 훌륭했다. 박완서의 '오만과 몽상'을 들으며 네 시간 운전하여 집에 왔다. 책 읽어주는 기능은 소설을 들을 때 좋다.
세 시에 도착했는데 운 좋게도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한 자리가 비어 있었다. 완벽하게 주말 일정을 해내어서 기분이 좋았다.


2025년 7월 26일 토요일

고양 어울림극장

 

26일 토요일, 고양 어울림극장에서 공연을 했다. 이 장소에서 여러 번 공연 했었다. 이번으로 일곱 번째가 되었다. 여름은 언제나 더웠지만 올 여름은 특별하게 더운 것 같다. 이틀 동안 이어진 일정을 잘 해내기 위해 한 주 동안 준비가 필요했다. 이 공연을 마친 후 바로 울산에 가야했기 때문에 충분히 자고 몸상태를 나쁘게 만들지 않아야 했다. 나이 들면서 자주 다짐하는 것은 나의 일은 가능하면 혼자서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피곤하다거나 불편하다고 해서 남에게 미루고 도움을 바라는 마음이 생기면 안 된다.

두 시간 공연을 하고서 곧장 다섯 시간 운전을 하여 울산으로 갔다. 피로감이 드는 것은 당연했지만 작년 내내 통증으로 힘들어했을 때와 비교하면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다음 주엔 왕복 서른 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공연 후 귀국 하자마자 다음날 다시 두 시간 짜리 공연을 하는 일정이 기다리고 있다. 여름 내내 적당한 긴장을 유지하며 지내고 있는 중이다.
관객이 가득 채워진 어울림극장 공연은 좋았다. 그곳이 특별히 연주하기에 편안한 장소인 것인지, 매번 공연할 때마다 좋았던 기억이 있다.


2025년 7월 20일 일요일

춘천에

 

이틀 장거리 운전이 피로했는지 긴 시간 자고 일어났다. 사촌동생이 먼 나라로 곧 떠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오늘이 아니면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다시 만날 수 있기 때문에 일어나자마자 연락을 했다. 두 아이를 데리고 부모를 뵈러 간다고 했었다. 삼촌 부부가 살고 있는 곳에 처음 가보았다. 큰 결심을 하고 새로운 삶을 개척하려는 동생과 아이들도 만날 수 있었다. 자주 만나지 못하다가 얼굴을 마주하여 서로의 모습을 기억 속에서 업데이트 할 수 있는 시간도 되었다.

삼촌의 서고는 아직도 정리가 필요한 상태라고 했다. 맨 아래 층에 어릴 적 삼촌 집에서 보았던 책들이 그대로 책꽂이에 꽂혀 있는 것을 보았다. 내가 피곤한 상태가 아니었다면 몇 권 골라 빼어 들고 의자를 끌어다 놓고 앉았을 것이다.

삼촌 집은 숲이 우거지고 큰 개울이 흐르는 한 가운데에 있었다. 큰 비가 연일 내려 불어난 물이 우악스럽게 아래로 달음질치고 있었다. 가까이에서 소란한 물소리를 들으며 나무 내음을 맡는 것이 오래된 기억들을 불러 일으켰다. 그런 기억들은 멋대로 편집되고 새로 씌어 시기도 사실관계도 뒤죽박죽이다. 산길을 내려 올 때에 그 기억 중 일부가 군 복무 시절 그곳 춘천에서 겪었던 경험이었나보다, 하고 생각했다.

울산에 다녀왔다

 

18일 금요일에 울산에 도착하여 가는 비를 맞으며 리허설을 했다. 비가 많이 내리는 가운데 야외무대를 만들고 준비했던 분들이 큰 고생을 했을 것을 생각하니 천막 아래에서 사운드체크를 하는 정도는 아무 일도 아닌 것 같았다.

밤이 되어 숙소에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았다. 2년 전에 왔던 그 호텔 객실에 넓은 책상과 조명이 있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처음엔 책상 위에 깔린 가죽보드가 더러워 보여서 무슨 일인가 하였다. 자세히 보니 말끔하게 닦고 청소를 한 상태이긴 했는데 누군가들이 훼손하고 더럽혀 놓았던 흔적이 남아 있던 것이었다. 외박할 때 숙소에 좋은 책상이 있는 것이 나에겐 소중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겐 아닐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다음날 19일 토요일. 새벽에 요란한 소리가 들려 한 번 깨었다. 세차장 물줄기같은 빗줄기가 통유리를 때리며 내는 소리였다. 다시 잠들었는데 아침 일곱시부터 카카오톡 알림이 울려 다시 깨었다. 폭우가 쏟아지는 바람에 태화강이 범람하여 야외무대 일대가 물에 잠겨버렸다는 소식이었다.
결국 정오가 되기 전에 일정 전체가 취소되었다. 하루 전엔 약속한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한번도 쉬지 않고 고속도로를 달렸었다. 이번엔 어차피 비를 계속 맞으며 갈테니 여유롭게 휴게소에도 들르며 가보자고 생각하고 집으로 출발했다. 구미를 지날 즈음부터 빗줄기가 약해졌다. 상주에서 잠깐 소나기를 만난 후 집에 도착할 때까지 더 이상 비는 맞지 않았다.
울산에 갈 때 챙겨 갔던 디플로마트 펜의 잉크가 그만 글을 쓰는 중에 닳아 버렸다. 두 자루를 가져간 덕분에 호텔방 책상 앞에서 글을 이어 쓸 수 있었다. 집에 돌아와 조금 쉬다가 그 펜에 새로 잉크를 넣었다. 파커 블루블랙 잉크병의 바닥이 드러났다. 일년 넘게 알뜰하게 쓴 잉크였다. 새 블루블랙 잉크는 아직 뚜껑도 열지 않은 채 책상 위에 있다. 다음 번엔 이미 뚜껑을 열어 쓰고 있는 펠리칸 블루블랙 잉크를 쓰기로 하고, 새 파커 잉크는 좀 더 두기로.


2025년 7월 12일 토요일

당진에서

어제 7월 11일. 당진 문예의 전당에 도착하여 주차를 하고 공연장을 찾아 계단을 오를 때까지 2019년에 거기에서 공연했었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12월 어느 날이었고 아직 COVID-19가 유행하기 전이었다. 그해를 마무리 하면서 "어디까지 더 나빠질 수 있을까"라고 혼잣말을 하며 버텼던 때였다. 그러나 그 이듬해엔 꼼이가 죽었고 아내의 아버지와 내 아버지가 각각 입원을 반복했다. 결국 그 다음 해에는 내가 수업 중에 쓰러져 버렸었다.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 더 나쁜 일은 언제나 생길 수 있고 그것은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극장 안에 빈자리가 없이 관객이 들어왔다. 이층까지 가득 차있는 객석을 보면서 인이어 모니터 때문에 무대 밖의 소리가 완전히 차음되어 있는 것이 답답하게 여겨졌다. 좋은 사운드를 듣기 위해서 인이어를 쓰지 않긴 곤란하니까 혹시 객석을 향해 마이크를 한 개쯤 두면 어떨까 생각해 봤다. 괜히 스탭들에게 일을 만들게 하는 것일테니 말을 꺼내진 못했다.

공연하는 날 아침 일곱시에 리더님이 새로 셋리스트를 공유했다. 앞쪽 열 두 곡을 어쿠스틱 기타로 하기로 결정하여 리허설을 할 때에 집에서 준비했던 내 악기 세팅을 조금 바꾸어야 했다. 그동안 여름날 습도가 높아서 베이스의 브릿지를 조정하여 줄을 많이 높여 놓았었는데 그것이 큰 방해가 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