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 4일 월요일

Souverän M605 Tortoiseshell Black.

 


무려 5월 말에 해외 필기구점에서 주문했던 만년필이 도착했다. 값을 치른지 한 달 하고도 엿새 만이다.

올해의 'Special Edition' 으로, 오래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잉크를 넣고 써보니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만족스럽다.

이 펜을 손에 쥐고있게 되기까지 사연이 많았다. 이쪽으로는 물정을 모르던 나로서는 생소한 경험들을 하기도 했다. 그 이야기들은 길지만 남들에게는 하찮은 일이어서 한번 죽 써보았다가 지웠다. 가지고 싶어했던 펜을 잇달아 두 자루나 샀고, 그것으로 앞에 있던 과정들의 피로는 사라졌다.

이 펜이 나오면서 펠리칸 만년필 매니아들이 입을 모아 배럴이 불투명하게 바뀐 것을 꾸짖기도 했다. 직접 만져보니 그들의 불평을 이해할 수 있었다. 백여년 동안 지속되었던 반투명한 잉크 뷰 챔버는 사라졌다. 피스톤 필러 방식의 펜이기 때문에 잉크를 넣을 때 제대로 충분히 잉크를 담았는지, 사용 중에는 잉크가 얼마나 남아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어졌다.

그런데 사람은 적응하기 마련이니까 나에게는 그게 대수로운 일은 아닌 느낌이다. 펜을 오래 쓰다보면 미세한 중량의 차이를 느낄 수 있게 되어 아마 잉크가 바닥나기 전에 새로 채우거나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쓸모 없는 상상도 해보았다. 

성능도 좋고 보기도 참 좋다. 택배를 받은 직후 나는 아내에게 미리 준비해둔 긴 변명을 말하기 시작했는데, 아내는 끝까지 들어주는 대신 '이제 새 잉크도 사기 시작하겠군.'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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