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10일 토요일

부산에서.


이 도시에서 열리는 국제영화제에 한 번도 가보지 못했었다.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인지 지난번 제천의 영화제에서도 좋은 영화들이 가득했는데 한 편도 보지 못하고 돌아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이긴 했다. 전날 공연을 마치고 새벽부터 일어나 기차에 몸을 실었다. 부산에 도착하여 리허설을 마치고 몇 시간 후에 공연을 했다. 연주를 마치자마자 다시 기차를 타고 정신없이 집으로 돌아왔더니 새벽 두 시였다.

바람이 불고 기온이 떨어져서 낮부터 추웠었다. 가슴 파인 옷을 입고 공들여 화장을 하고 입장하는 여배우들을 기다리던 사진 기자들은 그들의 가슴을 촬영하느라 큰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바닷가에 정박한 요트의 돛대들이 맥주 한 병씩 들고 몸을 흔드는 사람들처럼 서로 엇갈리며 허공에 출렁이고 있었다. 무너지거나 주저앉거나, 어쩌면 공중으로 튕겨져 올라갈지도 모르는 부실한 이동식 무대 위에 세 개의 앰프와 캐비넷과 드럼셋트와 건반악기가 올려져있었다. 그 위에 우리들 네 명이 악기를 들고 올라갔더니 무대가 기울어져버렸다. 우리들은 바닷가의 요트들 처럼 출렁거렸다. 항구도시 부산을 잘 표현한 라이브 무대 시설이었다.
준비했던 곡들이 너무 잔잔하여 아름답고 규모가 큰 영화제에 잘 맞지 않는 것 같았다. 공연 전에 좀 더 흥겹고 센 곡으로 바꾸면 어떨까 의논했었다. 그랬었다면 정말 사고가 날 뻔 했다. 비틀거리던 무대가 무너지고 우리는 추락했을 것이었다.
뒤이어 뛰어나오는 여자아이들의 무대는 앞쪽이어서 안전하기도 했고, 아마도 그들의 체중이 많이 나가지 않았기 때문에 안심하고 뛰며 춤을 출 수 있었을 것이었다. 체중감량은 생존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레모니를 지루해하는 시청자들을 위해 누가 말을 하고 있거나 누가 노래를 하고 있거나간에 화면에는 배우들의 얼굴을 띄워놓고 있었다. 이런 저런 인사들이 얼굴도장을 찍고 할 일을 하러 떠날 수 있도록 불꽃놀이를 핑계로 조명도 꺼주는 배려심. 하루 종일 고생했을 자원봉사자들은 청소를 하느라 애먹었을 것 같았다. 내년에는 휴지통이라도 좀 사다 놓아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시간을 내어 영화제 구경 좀 하러 다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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