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2월 22일 금요일

감기.


아니나 다를까, 감기에 걸렸다.
어쩐지 올 겨울은 무사히 지나보내는가 했더니 역시 걸려들었다.
이유를 알 수 없다. 나는 무척 조심했다. 바보처럼 보여지더라도 찬 바람을 피해보겠다고 몇 겹씩 껴입고 다녀보기도 했다. 다 소용없었다. 바이러스를 막아내는 유일한 방법은 숨을 쉬지 않고 외출을 한다거나 무엇과도 접촉하지 않고 하루를 보내는 것 뿐이리라. (그래도 걸릴 놈은 걸린다.)

몸이 아프다. 아프긴 아픈데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이 정도는 뭐 예상했던 것이라는 느낌 정도이다.
잘 지내다가 단 한 주일 정도 극심하게 문란한 생활을 했던 결과였다. 밤을 새우고 낮에 잠깐 자고, 외출했다가 돌아와서 다시 밤새 깨어있다가 날이 밝으면 한꺼번에 몰아서 자버리는 짓을 며칠 했다. 소문을 들었는지 곧 감기가 찾아와 잘 있었느냐고 인사를 건네었다.
증상과 징후를 잘 기억했다가 대비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이를 먹으면서 좋아지는 것이 있다면 비위가 강해진다거나 하는 일인가보다.
토악질이 나거나 혈압이 치솟아 쓰러지거나 할 정도의 일이 매일 매일 일어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의외로 담담하다. 그리고 더 많이 차분하다. 불과 몇 년 전에도 할 수 없었던, 무슨 꼴을 보아도 일단 껄껄 웃기 - 마저도 가능하다. 마음이 아프다고 하더라도 그저 아픈 것 아닐까 하는 생각뿐 별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많이 자제하고 좀 더 넉넉해져보려고 애를 쓸 때엔 잘 되어지지 않더니, 더 없이 꼴 사나운 장면들을 매일 목도할 수 밖에 없는 시절이 오고나서야 오히려 냉정을 찾는 느낌이다.
앓고있는 사람들의 감기 정도야 곧 낫겠지만 지저분한 세상의 냄새들은 쉽게 사그러지지 않을 모양이다. 그러나 쉽게 화가 나지도 않고 별로 절박하지도 않다. 우선은 조용하게, 더 길게 바라보며 더 배울 수 있을까를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옳지 않은 일을 지켜보면서도 입을 닫고 뒷짐을 지는 것은 나쁘고 부끄럽다. 힘들게 살더라도 쪽팔리게 늙고 싶지 않다. 쪽팔리게 늙고 계신 분들을 많이 구경하면 이 정도는 배워질 수 있는 것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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