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14일 금요일

낮에 했던 일

 

낮에 세 가지 일을 하려고 외출했다. 정비소에 가서 우선 자동차 전조등을 교환했다. 정비공장 사장님은 무척 빠르게 전구를 갈아줬다. 13년이 된 자동차는 그동안 고장 한 번 없이 나를 잘 태우고 다녀준다. 몇 개의 부품을 교환하고 정기적으로 정비해준 것 밖에 없는데 아무 것도 속썩이는 일이 없는 차여서 아주 정이 들었다.

그 다음엔 머리를 깎으려고 했는데 미용실에 사람이 많았다. 잠시 주차해두고 기다릴만한 곳도 없었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오며 전화를 걸어 아내를 불러냈다. 가을, 초겨울에 입고 다니던 옷이 십일년이 되었는데 많이 낡지 않아서 한참 더 입을 수 있지만 너무 무거웠다. 가벼우며 보온이 되는 옷이 필요했다. 내일과 다음 주 토요일엔 밤 시간에 야외에서 연주해야 하니까 악기를 메어도 불편하지 않은 외투를 한 벌 사기로 했다.

아내와 국수집에 들러 늦은 점심을 먹고 (아내는 나 때문에 물감이 묻은 붓들을 세척하고 나와야 했다) 아웃렛 매장을 돌아다니며 펠트 재질로 된 운동화와 외투 한 벌을 샀다. 신발도 옷도 가볍고 따뜻할 것 같았다. 함께 가준 아내가 내 마음에 들만한 것을 나보다 먼저 발견해줬다.

내일은 많이 추운 기온은 아니라고 했다. 공연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늦어도 자정 무렵일 것이고, 집에 와서 저녁을 먹은 후 축구중계를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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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4일 화요일

가을

 



비가 그치더니 갑자기 추워졌다. 나는 언제나 가을을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하는데, 내 부모가 나이 많은 노인이 되니 가을공기를 마시는 기분이 이전과 같지 않다. 모친은 작년에도 빛바랜 나뭇잎을 보며 탄식같은 한숨을 쉬었었다. 외할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난 뒤에 내 모친의 등과 어깨는 전보다 더 쇠약해진 것 같기도 하고 어딘가 무거웠던 것을 내려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지난 주에 노인은 혼자 하는 말처럼, "벌써 단풍이 들면 어떻게 해"라고 했다.

이 홈페이지, 혹은 블로그는 이제 이십년이 되었다. 나는 이십년 전 가을을 기억했었는데, 신기하게도 그 즈음의 기억들이 어디론가 휘발된 것처럼 부분부분 지워져 버린 것을 알게 됐다. 잊혀지지 않을 것 같았던 다양한 부정적 감정이 가득한 그 가을에 대한 기억이 어찌된 일인지 더듬어보아도 서로 연결되지 않고 순서대로 떠오르지도 않는다. 괴로움, 외로움, 상실감, 배신감, 분노, 슬픔, 불안 같은 것이 내 속에 단단하게 뭉쳐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여름이 지나고 찬바람 냄새를 맡을 즈음이면 한동안은 그 시절 그 감정의 흔적이 흉터처럼 만져지곤 했다. 이제는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혼자 멍하니 앉아 노란 단풍잎의 빛을 쬐던 가을날 오후의 세상만 기억 속 어딘가에 남았다. 감정이 무뎌지니까 계절을 다시 만나도 전과 같지 않고 서로 서먹하다.

여전히 가을이면 외롭고 멀리 떠난 고양이들을 그리워하고 뵐 수 없는 분들을 생각하며 슬퍼하긴 하지만, 우울했던 세상 가운데에서만 느낄 수 있었던 알 수 없는 감정, 이유없이 안심하던 낙천적인 기분은 없어졌다. 내 부모는 많이 늙었고 나도 스스로 나이들었다고 여기기 시작했다. 추운 겨울은 오지도 않았는데 창문을 드나드는 바람소리에 지레 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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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3일 월요일

늙고 낡은

 리디북스에서 소설 한 권을 구입했다. 리디북스는 앱스토어를 통해 결제하고 그것을 자기들 포맷의 캐시라는 이름의 통화로 바꾼다. 그러면 내가 결제한 돈의 일부를 차감한 금액이 그 '캐시'로 충전되는 방식이다. 구입한 책값은 만 이천원이었지만 실제로 결제한 금액은 만 사천오백원이었다. 알라딘 앱에서 한번 더 검색해 볼걸 그랬다고 생각했다. 기기와 프로그램이 오래 유지되어야만 구입한 책을 가지고 있을 수 있는 시대. 가능한 종이책은 그만 사겠다고 결심한 대신 감당해야 하는 일이다.

집안의 가구를 정리정돈하기 위해 아내는 오래된 오층장을 현관 가까이에 밀어 놓았다. 그것은 내가 여서일곱살 무렵에 모친이 금호동 가구공장에 주문하여 샀던 것이다. 오래되고 낡아져서 이젠 겨우 틀만 남았다. 문짝도 여기 저기 파손되었다. 장 뒷면 얇은 합판은 힘주어 밀면 뻥 뚫어질 지경이 되었다. 오십여년 가까이 이사를 할 때마다 옮겨지길 반복했던 낡은 가구가 이제 없어질 준비를 하고 있다.

늙고 낡은 가구를 버리고 새로 가구를 사는 것만으로는 정리정돈이 다 되진 않는다. 집안에는 지난 사십여년, 삼십여년 동안 한번도 펼쳐보지 않은 책들이 잔뜩 있다. 그동안 많이 버렸는데도 아직 많다. 책을 버리는 것이 왜 그렇게 아깝고 어려운지 모르겠다. 책 뿐이 아니라 플라스틱 더미도 쌓여있다. 더 이상 사용하지 않을 것이 분명한 음악 CD들과 DVD들을 모두 버려야 마땅할텐데 여전히 어떻게 하지 못하고 쳐다보고 있다. 기술은 발전했고 시간과 비용을 들여 모았던 미디어들은 쉽게 버리지 못하는 짐이 되어버렸다.

애플뮤직, 유튜브와 넷플릭스, 전자책을 사용하는 시대이니까 불필요한 것은 버리기로 하고 정돈된 실내에서 일상을 보내는 것이 옳다. 쓰레기가 되어버린 물건들과 함께 기억과 이야기까지 버려져 잊어버린다고 해도 뭐 어떤가, 하는 마음이 들도록 자기를 설득해야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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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1일 토요일

시월

 


시월이 되었고 밤엔 춥다. 가을이 문앞에 와있다.

수요일에 시골집에 가는 길엔 벼를 모두 베어버린 텅빈 논을 보았다. 노란 빛을 띠는 들판도 보았다. 시골집 뒤뜰엔 밤이 잔뜩 떨어져 있었다. 밤나무에서 떨어진 밤송이들이 수염을 깎지 않은 남자의 입처럼 헤벌레 벌어진 채로 별 뜻 없는 말을 하듯 밤알들을 뱉어 놓고 있었다.

무덥고 습했던 여름날에 나는 머지않아 더위가 끝나고 찬 바람이 불 것을 알고는 있었다. 쉰 번을 넘도록 겪어온 가을이 막 시작하려는 지금, 어쩐지 처음 당해보는 슬픔 같은 감정을 느낀다. 계절을 마주하는 일은 어쩔 수 없는 것인데 여전히 서글픈 이유는 결국 해내지 못한 일들만 지나온 길에 줄지어 떨어져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뒤돌아보면 이루지 못한 일들이 여기 저기 버려져 있다.

해가 지는 것을 보며 아내와 국도를 달릴 때 하늘빛이 처연하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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