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12일 수요일

고된 것.


소박한 일상의 연속이 행복이라고 했다. 전보다 더 마음에 와닿는 말이다.
부모 두 분이 동시에 아픈 일은 남들의 집에도 흔한 일이다. 생색내어 힘들다고 할 일은 아니다. 엄마는 퇴원했지만 앞으로도 절대안정이 필요한 상태이고, 아버지는 또 다른 것이 발견되어 두 번의 수술을 연달아 받아야하게 되었다.
월요일에 이어 오늘도 아버지와 병원에 다녀왔다. 끝없이 막히는 도로를 지나 아버지를 다시 집에 모셔다드릴 때까지 긴 침묵이 이어졌다. 그리고 다시 레슨을 위해 정체가 심한 도로 위에서 시간을 보냈다.

컴퓨터로 해야 할 일들을 작업실에서 마무리하고 싶었다. 집에 돌아와 다시 컴퓨터를 켜지 않고 잠들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집에 돌아왔더니 이미 자정이 다 되었다.
그런데 지하주차장 입구에 주차한 자동차들이 가득 있었다. 겨우 주차장 안으로 들어갔더니 온 동네 자동차들이 모두 모인 것처럼 빈틈이 없었다. 이중 삼중으로 주차해놓은 자동차들 때문에 다시 빠져나올 때엔 후진을 해야했다. 거리가 먼 다른 동 앞의 야외주차장에 가봤더니 빈 자리가 많았다. 그곳에 주차를 할 때까지 나는 그 이유를 몰랐다.
내일의 날씨를 확인하면서 그 이유를 알게 됐다. 경기 중부지역에 눈이 많이 내릴 것이고, 오후부터 더 추워질 것이라는 소식이었다. 그러니까 지하주차장에 멋대로 세워져있는 그 자동차들은 모두, 눈을 피하고 추위를 피하여 모여든 것들이었다.
이기적이고 염치없는 일이지만,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모두 다 하는 일이니까 죄의식도 없다. '다 그런 것 아니냐'라는 인식, 나는 아직도 여전히 역겹다. 타인의 불편에 신경쓰지 않는 태도는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못배우겠다. 그냥 내가 좀 더 걷고, 내가 약간 손해를 보고 마는 것이 낫다.

겨울이니까 춥겠거니 하면 그만일 수준의 날씨라고 하여도, 해마다 추워지면 거리에 살고 있는 고양이들을 걱정한다. 지금 나와 함께 살고있는 고양이들 모두 길에서 만나 식구가 되었다. 독한 겨울이 지나가면 언제나 길고양이 몇은 더 이상 보이지 않고, 다른 몇은 병에 걸려있다. 다시 봄이 되면 살아남은 길고양이들은 소박한 일상의 연속을 잠시 누린다. 모든 생(生)이 아름다운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모든 삶이 고되다는 것은 이제 잘 알 것 같다.

긴 하루를 보내고 삶은 고구마 한 조각으로 허기를 채웠다. 식탁에 앉아 식은 커피를 마저 마신 후 올려다 보았더니 고양이 꼼이 냉장고 위에 올라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곁에 모여 앉아 서로를 쳐다보는 고양이들을 한 마리씩 쓰다듬어주고 나는 등받이가 있는 의자에 걸터 앉았다.

내일은 눈이 쌓인 길을 운전하는 것으로 시작할 것이다. 아주 느린 음악들을 미리 골라놓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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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7일 금요일

연주.


지난 화요일에는 작년 연말에 공연했던 곳에서 다시 연주를 했다. 평소보다 작은 무대, 객석이 가득찬 아담한 공간의 소리가 좋게 들렸다. 무대는 낮았고 관객의 얼굴 높이에 앰프와 캐비넷이 있었다. PA로 나가는 소리와 별개로, 무대 앞쪽의 사람들이 따뜻한 소리를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공연의 절반 이상은 엄지손가락으로 연주했다.

넓고 큰 공간에서 연주할 때의 즐거움도 있지만, 작은 무대에서의 공연은 언제나 좋다. 나는 좁고 작은 클럽에서 음악을 시작했다. 팔을 뻗으면 닿을만한 거리에 있는 관객들은 손가락이 줄에 닿는 감촉까지 느끼며 음악을 즐길 수 있다.
하고싶은 일을 직업으로 삼아 살고있는 일이 쉽지는 않다. 어깨는 늘 무겁다. 다만 악기를 챙겨 무대에서 내려올 때까지는 잠시 일상의 시름을 잊는다. 더 나이를 먹어도 내가 처음 그랬던 것처럼 작은 공간에서든 어디에서든 자주 연주를 하며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공연을 마치고 잠시 건물 밖으로 나왔을 때에 찬 바람이 모질게 불고있었다. 바람때문에 더 빨리 타버리고 있던 담배 한 개비가 아쉽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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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3일 월요일

더블 앨범.


밴드의 십주년 기념음반이 나왔다.
비닐 레코드로, 두 장짜리 더블앨범이 되었다.
오랜만에 만져보는 LP였다. 다시 턴테이블을 사용할 계획이 없었었는데...


표지도 좋았지만 음반을 열었을 때에 시원하게 보이는 이 그림이 무척 좋았다. 모두 밴드의 리더님이 크레용으로 그리신 것.

부모 두 분의 병원일들로 시간을 내지 못하다가 드디어 자리를 잡고 들어봤다. 한 곡씩 지나갈 때마다 그것을 녹음하던 날의 풍경이 떠올랐다. 연습실에서의 소음도 기억나고 녹음을 마치고 밤중에 도로를 달려 돌아오던 일들도 생각이 났다.

음반을 다시 자켓에 끼워넣다가 문득, 여전히 그 동작이 손에 배어있다는게 신기했다. 아득히 어린 시절에 매일 했던 동작이었다. 자전거 타는 법을 잊지 않듯 손이 기억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레코드에 그 사이 달라붙은 고양이의 털을 후후 불어 떼어내고 음반을 비닐 포장에 고이 담아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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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22일 목요일

식구.


검은고양이 까미가 우리집에 '제 발로' 들어와 눌러앉아 살은지 두 해가 되었다.
집안을 휘젓고 다니며 종일 까불고, 나이 많은 고양이들에게 달려들어 놀아달라고 조르는 것을 매일 본다. 볕이 좋으면 베란다에 자리를 잡고 졸다가 햇빛이 사라지면 이불을 찾아 드러눕는다. 이 고양이가 처음 내집에 들어왔을 때에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사흘 동안 잠만 잤던 것이 기억난다. 추웠던 그 해 십일월에, 바깥에서 고생을 했었으리라.

고양이 순이가 떠난지 두 해 넉달이 지났다. 검은 고양이 까미는 순이가 하던 짓을 신기하게 재연할 때가 많다. 나는 까미를 보다가 순이 생각을 했다. 까미를 쓰다듬다가 순이가 떠오르기도 했다. 한밤중에 내가 자리에 누우면 검은 고양이가 조용히 다가와 내 팔을 베고 나란히 눕는다. 나는 깜박하고 검은 고양이의 이마를 만지며 '순이야', 하고 불러버린 적도 있었다.

다시 겨울이 시작되었다. 겨울동안 내 식구들이 사료를 잘 먹고, 군것질도 적당히 하고, 내가 없는 동안에도 집안에서 편안하고 즐겁게 지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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