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6월 13일 일요일

나라

공연 리허설을 마치고 담배 한 개비 입에 문 채 건물 밖에 나왔더니 태극기가 비를 맞으며 펄럭이고 있었다.
원래의 일정에서 조정되어 우연히 오늘이 되어버린 공연이었다. 새벽에 빗소리를 듣고 자다가 일어나서 상쾌해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기분좋게 집을 나서는데 엘리베이터에서 이웃을 만났다. 그분들이 인사차 나에게 건네는 말씀이,
"어디 응원하러 안가시고 일하러 가시나요?"

축구 경기를 응원하는 일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 이상할 것도 없는 지금의 상황이지만 뭔가 소외감마저 생겼다.

나는 내 나라가 존재만으로 사랑할만한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올림픽과 월드컵도 좋지만 그냥 내 나라의 풀 한 포기, 사람들과 공기의 냄새가 너무 좋아서 국가란 것이 무엇인지도 그만 잊을만큼이 되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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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8일 화요일

고양이의 인사

밖에서 공연 리허설을 하는 도중에 아내가 집에서 사진을 보내줬다. 자랑하려고 보내온 사진이었다. 앉아 있던 아내에게 순이가 뛰어올라와 한참 동안 그르릉거리며 좋아해주고 있었다고 했다.

고양이와 살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겪는 일일텐데, 하루에도 몇 번씩 서로 인사를 주고 받는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면 처음 눈이 마주친 고양이 순서로 다가와 한 마리씩 몸을 부비고 인사를 해준다. 눈을 지긋이 감고 다가와 코를 비비기도 한다. 눈을 마주쳐 얼굴을 올려다보며 갸르릉 소리를 낸다. 이럴 때 세심하게 대답해주지 않으면 다음부터는 그만 무시를 당하기도 한다. 대충 넘어가면 한동안 개 혹은 돌 취급을 당한다. 마주쳐도 비켜 가버릴때도 있다.

소파에서 잠들었다가 고양이들 중 누군가가 깨워서 일어날 때도 있다. 복잡하고 다양한 이유로 깨운다. 고의성 없이 깨울 때도 있다. 그곳에 누워보고 싶으니까 좀 비켜달라, 라고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런 경우엔 그날 아침에 내가 인사를 성의없이 했던 것은 아닌지 기억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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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

연습실에서 합주를 하던 장면이다.
나는 나 보다 나이가 많은 분들과 주로 작업하고 연습해왔다. 언제나 귀한 경험이었고 행복했다고 과장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나이 많은 분들과의 인연이 많았다. 익숙하고 자연스럽게 여겨지지만 그렇다고 당연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자주 배웠고 고마운 가르침을 얻어왔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어떤 음악을 함께 연주하고 있으면, 그 공간 안에는 사람 숫자 만큼의 시간들이 돌아다닌다고 생각했다. 그윽해질 때까지 담궈져있던 각자의 과거들이 소리로 변해서 나오는 것 같다.

윤기형님은 이제 아이폰 '주물럭거리기'에 완전히 익숙해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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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6일 일요일

그게 뭐냔 말이다.

이해해주기 어려운 일이 있다.
많은 연주자들을 불러 모아 큰 규모의 공연을 만드는데에 얼마나 많은 수고와 돈이 드는지 짐작이 간다. 그 안에는 많은 사람들의 수고와 땀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해하기가 어렵다.

두 개의 서로 다른 무대를 굳이 가깝게 붙여놓고 각각의 공연을 동시에 진행하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 옆 무대의 소리가 다 들리고 있어서 이쪽에서 한 곡이 끝나면 잠시 이웃무대의 음악을 감상할 수 있었다. 멀티태스킹 콘서트인가.

공연 아홉 시간 전에 리허설을 했다. 좋은 공연을 만들기 위해 긴 시간을 배려하며 노력한 결과로 언제나 본공연 때에는 모니터가 엉망인 까닭은 무엇인지. 뮤지션들이 열악한 상황에 익숙해지도록 돕고 싶어서인가.

방송에 쓰일 화면이 필요한 것은 잘 알겠다. 카메라맨은 언제나 드럼세트 곁에 다가가 카메라를 빙빙 돌리다가 연주를 방해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스네어드럼을 접사촬영해야 한다는 방송사의 사내규정 같은 것이 있는 것일까.
드럼세트가 놓여진 단을 밟고 서는 바람에 무대가 기울어졌고 흔들렸다. 연주하는 사람이 어떤 스트레스를 받는지 고려해주지 않는 배짱은 무엇인지. 그 정도의 적극성이 있다면 지금 소리를 내고 있는 연주자가 누구인지 리허설 때에 왜 미리 알아두지 않는다는 말인가.

이런 일들은 작년에도 있었고 그 전에도 그래왔다.
이해하기 어렵기도 하고 귀찮기도 하다. 이제는 정말 그냥 원래 그런 것인가보다, 하고 순응하면 안되는 것 아닐까. 우리들의 선배들이 그런 것에 신경을 쓸 수 없는 시절을 보내느라 좋은 시스템을 물려주지 못했다면 지금의 우리들이라도 달라져야 옳지 않은가.
그런 상황에서 안간힘으로 연주되는 음악이 입장료를 지불한 관객에게 어떻게 전달되고 있을 것인지는 뻔한 것 아닌가. 그 값 비싼 장비들을 들여놓고서 고작 그것이 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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