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29일 월요일

시월의 마지막 공연.

공연을 다 마쳤다.
또 지나갔고 떠나 보냈다.
오래된 공연장의 습한 기운에 가을비의 축축함이 잘 어울렸다. 서늘하고 눅눅하여 음삭소리에도 습기가 맺혔다.

좋아하는 앰프가 선물처럼 기다리고 있었다. 등 뒤에서 울리고 있는 앰프의 소리가 등을 토닥여주는 것 같이 좋았다.

Aguilar DB 751
집에서 나갈 때에 아길라 톤해머를 챙겨가려고 손에 들었다가 다시 놓아두었다. 공연장에 도착해보니 이미 톤해머가 함께 설치되어 있었다. 다이렉트 박스는 얼마든지 좋은 것이 많지만, 연주하는 사람의 기분을 알아주는 스탭분들의 마음 씀씀이에 정말 고마와했다. 공연을 마친 후에도 조금 더 쳐보고 싶었을 정도로 그날의 소리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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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28일 일요일

가을 밤 가을 낮


음악에 관련되지 않은 일로 밴드 멤버들이 모였다. 다음날 공연이 있어서 그냥 집에 올줄 알았더니 아니나 다를까 주점으로 이동했다.
술을 먹지 않는 두 사람은 옆 식당에 들러 심야 모밀국수를 한 그릇 씩 먹었다.
요기를 하고 다시 술집으로 돌아갔더니 벌써 비워져 한쪽에 줄 서있는 술병들.
그리고 끊이지 않는 이야기들.

마침 오래 전 연주하던 클럽이 근처에 있어서 잠시 술자리에서 나와 그곳에 인사를 드리러 갔었다. 세월은 흘렀고 사람들은 나이들었다. 금요일 밤인데도 가게 안이 비어있었다.
불꺼진 무대 위에도 나이 먹은 악기들이 덩그러니 앉아있었다.

다른 분들의 소식을 전해 듣기도 하고 푸념 섞인 사장형님의 농담에 웃어도 보였다.
습기 머금은 바람이 여의도의 골목을 쏘다니고... 어쩐지 나도 잠깐 생각을 놓아두고 독주라도 한 잔 걸치면 괜찮을 기분이었다.


낮에 잠깐 타고 나갔던 자전거 덕분에 조금 마음이 안정되었던 것인지, 머리 속은 덜 복잡해진 느낌이었다. 혼자 아스팔트 잘 닦인 도로를 미끄러져 달리다가 오늘 같은 날씨라면 그 친구, 그 형도 어디에선가 자전거를 타고 있을지도 몰라, 했는데 과연 그랬었더군.

마른잎이 길 위에 뒹굴고 땀이 식으면 으슬으슬해지는 계절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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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23일 화요일

일요일 산책.


지난 밤 장거리 고속도로 운전으로 (다른 곳은 다 멀쩡한데) 무릎에 탈이 났었다.
구부리면 아픈 증상인데 네 시간 씩 이틀 연속 운전을 하는 바람에 낫고 있던 것이 다시 약간 아프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 천천히 스트레칭을 하고 의자에 앉았다. 오늘은 일이 없으니 게으름을 피우며 잠을 많이 자두고 싶었다.
아내가 만들어준 최소한 동북아시아에서는 제일 맛있을지도 모르는 스파게티를 먹었다.
이제부터 축 늘어져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무렵 재근형으로 부터 문자메세지가 왔다.

'원식아, 날씨가 좋다. 나는 강 건너에 와있다.'
'지금 나갈게요.' 라고, 답장을 보내드렸다.

그래서 약 15km 떨어진 강건너의 강변카페에 도착했다.
카페의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물기를 닦으며 나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왕복 30km의 거리였지만 돌아올 때엔 어쩐지 무릎의 통증이 많이 없어진 느낌이어서 괜히 집을 지나쳐 삼십분 정도 더 달렸다. 조심하겠다는 생각을 잠시 잊고 속력을 내다가 정신차리고 다시 천천히.

집에 돌아와 잠깐 멍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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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21일 일요일

진주에 다녀왔다.

토요일에 진주에서 공연을 하고 한 시간 전에 집에 왔다.
지금은 새벽 두 시 오십 분.

금요일 저녁, 진주로 떠나기 몇 시간 전에도 재활을 위해 자전거를 탔다. 조금 따뜻한 날씨였어서 오랜만에 땀을 흠뻑 흘렸다. 개운해진 기분으로 집에 돌아와 두 시간을 잤다.

지방도로를 달리다보니 가보지 않았던 곳에도 들러보게 되었다.

일몰을 보며 집에 왔다. 떠날 준비를 마친 것은 밤 아홉 시.
자동차에는 아직도 여덟 개의 기타들과 페달보드들이 잔뜩 실려있었다. 밤길을 달려서 진주에 도착했다. 예약해둔 숙소에서 푹 자고 싶었는데 어쩐지 잠을 이루지 못하여 고생을 했다.

토요일 아침 아홉시에 호텔에서 나왔다. 진주의 중앙시장 안에 있는 제일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했다. 맛있는 국밥을 한 그릇 먹으니 그제서야 잠이 쏟아졌다.
밥을 먹고 호텔로 돌아와 한 시간을 잤다.
리허설을 위해 이동하던 오후에는 하면옥에 들러 진주냉면을 맛보았다.

나는 어릴적에 이것을 먹어본 적이 있었다. 잊고 있다가 음식을 먹기 시작했을 때에 기억이 났다.

공연장은 옛 진주성 안에 있는 진주국립박물관이었다.
리허설 시간에 맞춰 도착하느라 인근 커피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조금 미리 와서 박물관 구경을 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도착해서야 했다. 냉면집은 검색하여 찾아다닐줄 알면서 이런 것에는 무심했다니.
남강이 굽어 흐르는 주변 풍경이나 겨우 마음에 담아왔다.
정작 필요할 때에는 사진을 찍어둘 생각도 못한다.
오랜만에 진주에서 살고 있는 손정일을 만났다. 반갑게 인사하며 사진 한 장 찍어둘 것을.

해외의 리뷰에서 좋은 평을 받고 있길래 평소에 궁금해 했던 SVT-7 PRO를 만났다. 과연 좋았다.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앰프였다.

서늘해지는 밤공기를 맡으며 공연을 마쳤다. 커피 한 잔 더 마실 시간도 없이 짐을 챙겨 싣고 다시 집으로 출발해야했다. 고속도로를 쉬지 않고 달려 집에 도착했다.

이제 시월도 열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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