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12일 토요일

부산역

10일, 목요일.
새벽에 출발하여 오전 열 시에 부산역에 도착했다.
지난 밤에 일찍 잠들면 푹 자고 나올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일찍 잠드는 바람에 너무 일찍 깨어버렸다. 결국 밤을 새우고 운전. 어둠이 걷히면서 드러나는 하늘 빛이 예뻤지.

부산역 광장에는 바람이 불어서 낙엽이 나이먹은 순서대로 떨어져 날리고 있었다.
비둘기 몇 마리가 노숙인들의 근처를 희롱하듯 놀며 다니고 있었다.
이곳에서 기차를 타고 도착할 동료들을 기다리고 있는데 잠이 쏟아졌다.
하루 전에 미리 도착해있던 상훈씨가 나타나 손을 흔들며 다가오는 것을 보기 전 까지 몽롱하고 어질어질한 상태로 상체 하체를 잘 가누지 못했다.

낮의 리허설을 마치고 부산의 밀면을 한 그릇 먹고 있을 때에 김진숙 씨가 무사히 크레인에서 내려오셨다는 소식을 읽었다.

2011년 11월 10일 목요일

편안한 새벽

일찍 잠들었다가 새벽에 일어났더니 책상 앞의 자리를 차지하고 고양이들이 잠들어 있었다. 손을 뻗어 쓰다듬으면 그르릉 거리며 좋아한다. 나는 좀 비켜달라고 했던 것이었는데 그르릉만 하고는 두 놈 모두 다시 잠들어버렸다.

동이 트기 전에 공연을 위해 부산으로 출발할텐데, 아이팟에 담긴 음악들을 정리하고 몇 장의 음반들을 새로 집어 넣었다. 먼 길을 혼자 운전하며 왕복하는 하루를 보내고 난 후엔 뭔가 마음 속이 정리정돈할 수 있으면 좋겠다.

밤중에는 돌아와서, 나도 고양이들 처럼 몸을 말고 자버려야지.


.

2011년 11월 9일 수요일

녹음실에서.

indie2go from Instagram
11월 7일, 벨벳 녹음실에서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를 녹음했다.
산울림 헌정 음반에 이 곡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김창완밴드의 트랙으로 수록될 예정이다.
리더님의 새로운 구상에 따라 편곡을 바꾸어 연습해 본 것이 두어 번. 그것을 공연할 때에 무대 위에서 해 본 것이 서너 번... 이 날 실제 녹음 시간 두 시간, 연주는 합주로 세 번이었다. 마지막 것으로 테이크했다.
베이스는 앰프 없이 Moollon의 D.I.와 컴프레서, EQ, 시그널 부스터만 사용했다.

새 편곡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있을 수 있겠지만, 나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뭔가 더 덧입히려고 애쓰는 것 보다는 더 이상 빼거나 생략할 것이 없을 때에 진솔해진다. 음악도 인간관계도 비슷하다.


녹음은 쾌적하고 즐거웠다.


.

2011년 10월 28일 금요일

위기

우울한 기분이 심해졌다.
사실, 이 우울은 가을이 되었다고 하여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벌써 몇 개월간, 아니면 몇 해 동안 쌓이며 지속되었던 우울증 - 이거나 그것과 비슷한 것이었다.
여유 없이 달려가기만 해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시도와 도전은 크던 작던 결국은 실패의 연속이었다는 자학이 시작됐다. 사실은 그냥 몸과 마음이 쇠약해져서 나약한 자기 연민에 빠진 것일 뿐일지도 모르겠다.

풀죽은 인상을 하고 있었다. 어느날 심야에 졸리워 하는 아내를 붙잡고 내 상태가 이러이러하다고 푸념을 했다. 뭔가 징징거리고 싶은 마음에 주절 주절 이야기를 했더니, 다정하고 나지막한 일갈이 돌아왔다.
"정신과를 가보던가."

그 말을 듣고 뭐가 이건 아닌데, 라는 생각에 실망했다가, 다음 날 낮에 고속도로를 운전하던 중 생각이 나서 웃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그다지 귀찮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별로 귀기울이고 싶지도 않다는 투로 말하던 아내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차창을 열어둔 채로 큭큭 웃어대고 말았다. 백 몇 십 킬로미터로 달리며, 음악도 라디오도 꺼둔채로 우는듯 웃었다. 그러다가 웃음을 멈추고 보니, 나는 역시 정신과에 가보던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난 밤에는 무엇도 좋은 것이 없고 물을 마셔도 입맛이 쓰더니, 아내의 냉소적인 태도에 오히려 위안을 얻었다.
행크 모블리의 음반을 여섯 장 내리 들었다. 아침 까지 음악을 듣고 싶은 새벽 세 시 반...
위기일 수도 아닐 수도 있는 일로 지레 기운 빠질 필요는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