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 29일 목요일

듣보시대.

듣보들의 시대를 맞아서 쥐들과 그에 준한 설치류, 종족의 명예를 더럽히는 개들, 그외 각 분야의 다양한 듣보들이 설치거나 모습을 드러낸다.

철학자, 사상가를 자임하며 온갖 훈계를 늘어놓던 학자 한 분은 지금의 정권이 인수위원회를 꾸려서 오렌지 어쩌구를 선보일 때 부터 보이지 않더니 뭐 아무 말이 없다. 말하지 않을 자유가 있으니까 뭐라고 할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고래 고래 소리를 지르던 몇 년 동안을 기억해보면, 항상 세상이 만만할 때만 모습을 드러내는 학자듣보인 것 같다. 이런 말을 들으면 억울해하겠다... 하긴, 그런 학자들이 어디 그 분 하나 뿐일까.

환경에 대한 의식이 없다면서 정권을 꾸짖고 욕을 해대던 어떤 분들은 원래부터 정치나 경제의 환경에는 관심이 없었는지 일언반구 말이 없다. 도룡뇽을 구하느라 바빠서 지렁이를 죽이고 말았던 원죄의 탓인가. 산에 터널을 뚫는 것을 막기 위해 죽음을 각오했던 분들은 온 나라의 강바닥을 ‘개발’해주겠다는 말에 고마와하기라도 하는 것일까. 자신의 목숨 앞에서 반 년 동안 타협하고 설득했던 정부를 지나보낸 후, 물대포와 콘테이너로 간단하게 몇 명쯤 죽여버리고 마는 정권을 목격하는 기분이란 더럽다.

구불 구불 흘러가도 강물은 한 곳으로 모인다고 했다.
그렇지만 이렇게 돼먹지 않은 나라가 되어버린 후 흐르는 모습을 바라보면, 이 사회는 아무래도 엉뚱한 곳으로 구불거리기만 하다가 바짝 말라 바닥이 드러나게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