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4월 10일 목요일

죽음을 생각했다.


학생 시절에 친하게 지냈던 미국인 선생님이 계셨다. 전공과목 교수님이었고, 당시에도 이미 나이가 지긋했던 여자분이었다.
중미 대륙의 한 가운데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평생 동안 바다를 구경해본 적 없이 살아오다가, 영어를 가르치기 위해 다시 대학을 졸업한 뒤 난생 처음 비행기에 몸을 싣고 바다를 굽어보며 도착한 곳이 한국이었다고 했다.

전공과목의 선생과 학생 관계라고는 했지만 그분과 가까와져서 자주 만나게 되었던 것은 음악 때문이었다. 그 무렵 부터 나는 재즈를 깊이 좋아하게 되었는데, 그분은 재즈에 관련된 많은 이야기와 정보를 알고 있었다. 어릴적 부터 재즈를 즐겨 들었고 미국 시골의 옛 음악들을 많이 알고 있었다. 꽤나 음악광이었어서 공연장에 찾아다니는 것을 무척 즐겼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는 내가 그를 집에 초대하여 가족들과도 잘 알게 되었고, 내가 입대했을 때엔 내 가족들과 함께 부대에 면회도 와줬었다. 그 사이 한글을 많이 공부하여 한글을 적어서 보이며 자랑하기도 했었다.

항상 카메라를 들고 다니던 그 선생님이 자신의 사진들로 전시회를 열었던 기억도 난다. 그의 사진들을 구경하며 수다를 떨었었다. 충분한 의사소통이 되었을리가 없었을텐데도 나는 아주 많은 대화의 내용을 지금까지도 기억을 하고 있다. 신기한 일이다.
그가 우리나라를 떠나게 되었을 즈음, 나는 음악 연주를 하기 위해 악기를 들고 다니며 별 소득이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몇 번의 기회들은 모두 이상하게 꼬인채로 엉망이 되어버렸고, 그만 사기도 당했었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배신도 겪었었다. 친구들은 저마다 취업을 하고 있었는데, 나는 어느날 정신을 차려보니 백수건달에 패배자의 모습으로 보였다.
마지막 그와 만났을 때에 그는 나에게 그런 말을 해줬었다. 자신은 꽤 많은 나이에 이혼을 한 뒤, 비로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나머지 인생을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다시 대학에 입학을 하고, 마음을 먹고 카메라를 구입했었던 일들을 들려줬다.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고 싶다면, 앞으로도 계속 힘들고 불만족스러울 것이라고 하더라도 끊임없이 해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죽음을 생각한다면, 하고 싶은 것을 위해 겪는 고달픈 일들도 기쁘다, 라고 말했었다.

언제나 그의 말을 떠올리며 열심히 살아왔다....라는 것은 약간 거짓말이고, 그후로도 나는 늘 실수하고 실패하고 시련을 겪거나 만들어내며 지냈다. 별로 순탄하게 해낸 일도 없이 나이를 먹어왔다. 목숨을 걸고 열심히 했던 것 같지도 않고, 생계를 위해 피땀을 흘려본 적도 없지만 어쨌든 한 가지, 계속 연주하는 일을 하기 위해 애를 쓰긴 했었다. 죽음을 생각해본 적은 별로 없었다.

오랫동안 연락이 없었던 그 선생님이 이메일을 보내왔다. 두 개의 메일이었다. 먼저 한 개를 보낸 후, 잠시 후에 또 하나의 메일을 보냈던 모양이었다. 나는 한참동안 메일을 보내거나 전화를 걸었던 적도 없었어서 메일을 열어보는 순간 미안함에 가슴이 뜨끔했다. 놀랍게도 아직까지도 그분은 내 생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짧은, 생일 축하 메세지와 일상적인 안부의 글.
그리고 다른 메일을 열었더니, 이런 내용이 적혀있었다.


p.s. I am sending this message to all my friends:
when I die, you will receive an email from a friend in USA. Please remember me and in your own way, send me on my way into the fullness of light..... .


내 부모님들 보다 훨씬 연상이었으니, 한번도 물어본 적이 없어서 모르고 있지만 아마도 연세가 많을 것이다. 그렇구나... 다른 시간대를 살고 있다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인의 편지에 등장할 수 있는 문장이라고는 해도, 그 몇 줄의 글자들이 마음에 박혀 몹시 아파졌다.
나는 내 멋대로, 짧은 몇 줄의 메일 때문에, 그가 곧 죽음을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건강이 좋지 않은 것인지,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것인지를 물었지만 그저 '뭔가'를 보내주고 싶으니 주소를 알려달라고 하는 회신 뿐이었다.

그럴 수 있다면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서 만나 뵙고 싶다고 생각했다. 살다가 언젠가는 한 번 더 만날 수 있겠지, 라는 생각이, 아아... 십수년 전의 그날의 인사가 영영 마지막이었구나, 라는 기억으로 바뀔지도 모르게 되었다. 또 한 통의 이메일이 왔다. 역시 짧은 두 줄의 문장. 우편물을 보냈으니 받아보고 나의 사진을 몇 장 보내달라고 했다. 전화를 할 수도 있을텐데, 그분도 나도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망설이고 또 망설인다. 목소리를 들으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그것 보다도 전화를 받지 못하는 상태라면 전화를 걸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단어를 고르고 골라 긴 시간을 들여 또 메일을 적어 보낸 후 잠을 이루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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