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23일 목요일

기타 트리오


 

지난 해에 세 장의 앨범을 냈기 때문에 금세 또 새로운 녹음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었다. 부지런한 파스콸리 그라쏘의 새 앨범은 듀크 엘링턴의 곡들을 연주한 것이었다.

이번 앨범도 물론 정말 좋다. 그는 이제 내 마음 속에서 믿고 듣는 기타리스트로 되어 있다. 기타 트리오를 기본편성으로 구성한 것도 좋았다. 트랙 사이에 기타 솔로로 연주한 곡도 있고 기타와 베이스 듀엣으로 연주한 곡도 있다. 이 앨범을 들으며 나는 1957년에 바니 케슬이 레이 브라운, 셜리 만과 함께 녹음했던 Poll Winners 앨범을 떠올렸다. 짐 홀, 조 패스, 탈 팔로우도 생각이 났고 오래 전 평일 저녁에 야누스에서 지혁이 형이나 방병조 형님이 연주하는 것을 혼자 구경했던 것도 기억 났다. 왼쪽에 베이스, 오른쪽에 드럼이 나오도록 스테레오 패닝을 해둔 것도 좋았다. 이제는 흘러간 옛날의 유산처럼 여겨졌던 담백하고 활력이 넘치는 스탠다드 기타 트리오 사운드를 새것으로 들을 수 있다니, 듣는 내내 고마왔다.

파스콸리 그라쏘의 연주에는 결점이 없는 것 같다. 음색과 테크닉은 말할 것도 없다. 그가 곡을 해석하는 것과 연주로 풀어내는 이야기에는 어두운 면이 없거나 암울한 장면도 밝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 앨범을 듣고 있으면 계속 기분이 좋아져서 56분의 시간이 금세 지나가버리는 것 같았다.

올해 초에 Samara Joy 라는 스물 한 살의 가수가 앨범을 냈었는데, 그 음반의 세션을 파스콸리 그라쏘가 맡았었다. 베이스는 파스콸리 트리오의 Ari Roland 였고, 드러머는 무려 케니 워싱턴이었다. 젊은 보컬리스트의 노래도 좋았지만 뒤에 흐르는 파스콸리의 기타가 좋아서 즐겨 들었었다.

사마라 조이는 "Pasquale Plays Duke" 앨범의 네번째 트랙에서 'Solitude' 를 불렀다.

그런데 이 앨범의 일곱번째 곡을 노래한 가수는 Sheila Jordan 이다. 이분은 1928년생이니까, 아흔 세 살이시다. 재즈의 역사와 함께 늙으신 분이나 다를 바 없다. 베이스와 보컬 스캣 듀엣을 처음 시도했던 가수로 알려져있기도 하다. 사마라 조이와는 거의 한 세기 정도 나이차이가 나는 셈이다. 파스콸리 본인도 음반으로 접했을 역사 속의 재즈 거장들과 함께 노래했던 이 보컬리스트가 이 앨범에서 불러준 곡은 'Mood Indigo' 이다. 이제까지 들어보았던 Mood Indigo 중 최고라고 하기에는 두렵지만, 정말 아름다왔다. 민망하지만 조금 과장하여 표현하자면 그가 끝 부분에 가성으로 처리한 높은 Bb 음이 귀에 들어와 콕 박혔다. 노래 두 곡과 열 곡의 기타 연주. 내 취향으로는 최근에 나온 스탠다드 재즈 앨범 중 최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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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에 블로그에 썼던 글에서는 기타리스트의 이름을 파스쿠알레라고 표기했었는데, 아무래도 그 이름을 어떻게 읽는지 궁금하여 검색해보았더니 '파스콸리(아)' 정도가 가장 흡사한 표기 같았다.

2021년 9월 22일 수요일

밤새 함께 있는 고양이


 옛날 내 고양이 순이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막내 고양이 깜이는 자주 내 곁에서 밤을 함께 새운다. 졸리우면 아내의 곁에 가서 눕거나 하면 될텐데 굳이 나의 옆에 다가와 불편한 곳에 자리를 잡고 졸음을 견디고 있다. 가끔씩 손을 내밀어 얼굴을 만져주면 그르릉 거리며 좋아한다.

떠나버린 순이, 꼼이와 다른 점은 있다. 고양이 깜이는 내 옆에서 졸음을 참고 참다가, 시간이 너무 지났다고 생각하면 그 때부터 칭얼거리며 나를 방해하기 시작한다. 이제 그만 하고 잠을 자러 가자는 신호이다. 내가 컴퓨터를 재우고 책상을 정리하기 시작하면 바닥으로 내려와 침실로 가는 길에 앞장서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덕분에 오늘도 날이 밝기 전에 잠들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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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9월 1일 수요일

합주.

 


거의 이태 만에 밴드 멤버들이 모여 합주를 했다. 약속이 정해진 후 나는 긴 목록의 셋리스트를 들여다보며 매일 다시 연습을 해보았다. 그동안 수백번 연주했던 곡들이었을텐데 전부 새롭게 느껴졌다. 휴업상태와 같았던 밴드활동을 다시 시작한다는 것만으로도 지금으로서는 고마왔다. 마지막 공연과 합주가 아주 먼 옛날 일처럼 여겨졌다. 오랜만에 하는 합주를 나는 잘 하고 싶었다.

연주를 하지 못하며 지냈던 동안 내 연주에 나빠진 것이 있었다. 작년부터 허리통증으로 한참을 고생했고, 최근에는 왼손 검지손가락에 염증이 생겨서 한동안 악기를 잡아보지 못하기도 했다. 합주를 위해 혼자 연습하며 내가 박자와 비트감을 잃고 있는 것을 느끼고 일부러 모든 곡을 녹음하여 들어보았다. 두어 번 그 일을 반복하며 어느 부분에서 내가 부정확하게 손가락을 쓰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오래 걸리지 않아 문제가 되었던 부분들을 바로잡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왼쪽 검지손가락의 통증은 엄지손가락의 위치를 적절히 바꿔주는 것으로 해결하기 시작했다.

합주약속은 밤시간이었는데, 나는 일찍 가서 미리 연습을 더 하고 싶었다. 약속 한 시간 전에 내가 그 장소에 도착했을 때 낯익은 자동차 세 대가 내 앞에 이미 주차되어있는 것을 보았다. 다른 멤버들도 모두 나와 비슷한 마음이었구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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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8월 30일 월요일

알랑 카론, 듀엣 앨범


 캐나다의 베이시스트 알랑 카론은 좋은 연주자이고 선생님이며 작곡가이다. 그것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유튜브에서 구경할 수 있는 그의 연주 영상 대부분은 여섯줄 베이스로 16비트 슬랩 테크닉을 쉴 새 없이 보여주거나 악기 편성이 가득차서 세고 질량감이 높은 라이브들이었다. 이전에 그의 앨범 몇 장을 들어보았던 나의 인상은 그 정도에 머물고 있었다.

2007년에 나왔던 베이스와 피아노 듀엣으로만 구성한 이 앨범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이 연주자의 참모습을 구경한 것 같았다. 열 두 곡 중 두 곡에서는 멀티 연주자 Jean St-Jacques의 비브라폰과 둘이 연주했고, 나머지 열 곡은 네 명의 피아니스트와 번갈아 연주한 앨범이었다. 베이스와 건반악기의 듀엣이라니, 바람직하다. 알랑 카론은 플렛리스 베이스로 연주하고 있는데, 건반과 베이스 두 악기만의 사운드로 한 시간 십오분 동안 마음껏 스윙한다. 모든 베이스 라인이 아름답고 솔로의 구성은 풍부하다. 이렇게 좋은 연주자였다니, 감탄하며 감상할 수 있었다.

열 곡은 알랑 카론 자신의 오리지널, 나머지 두 곡은 찰리 파커의 스탠다드와 이반 린스의 곡이다. 셀린 디온의 앨범에 참여했던 멀티 연주자 - 키보드, 비브라폰, 베이스, 기타 신디사이저를 다루는 Jean St-Jacques 가 버드의 Confirmation를 함께 연주했다. 자신과 비슷한 또래인 캐나디언 피아니스트 François Bourassa, Lorraine Desmarais, 베네수엘라 피아니스트 Otmaro Ruíz 와 연주한 곡들도 훌륭했다. 내가 뽑고 싶은 가장 좋은 넘버 두 곡은 캐나다의 전설같은 피아니스트 Oliver Jones와 함께 연주한 Strings of Spring과 Scrapper이다. 클래시컬이나 재즈 쪽의 거장 피아니스트들은 고희를 넘긴 나이가 되면 그 사람 자체가 피아노로 변해버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정교하지만 서두름이 없고 날이 서있는데도 따뜻하다. 피아니스트들의 맞은편에서 음반 전체의 사운드를 결정해주고 있는 알랑 카론의 음악적 능력은 대단하다. 그는 어째서 이 앨범 이후 다시 이런 시도를 해주지 않는 것인지.

따스하고 조용한 분위기 때문에 자려고 누웠을 때에 이 앨범을 머리맡에 틀어두었다가 몇번 낭패를 보았다. 음악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잠이 깨어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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