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2일 월요일

자전거 일주일 째


자전거를 구입한지 이레.
지난 주에 작정하고 자전거를 샀던 이후로 오늘까지, 지방에 공연하러갔던 날 외에는 매일 자전거를 탔다. 아이처럼 신나하며 달렸다.
그 짧은 며칠 동안 집 근처 강변 자전거길에는 백여 미터 구간에 새로 아스팔트가 뿌려졌다. 자전거 도로에 문제가 있었는지 아니면 뭔가 파손되었었는지, 마침 한참 공사중일 때에 나는 그 곁을 지나가고 있었다.
내가 처음 이 동네에 이사왔을 때엔 작은 하천에도 물이 많아서 언제나 물 흐르는 소리, 새소리, 개구리 소리를 들으며 여름을 보냈다. 여름날 아침이면 아파트 베란다 앞을 유유히 날고 있는 큰 새들을 구경하며 아름다움에 탄식한 적도 많았었다.
이제는 내 집 앞에서도, 강을 따라 한번에 이어버린 자전거 도로의 일부라는 집 근처 자전거길 주변에서도, 풀벌레 우는 소리도 들리지 않고 새들도 다 쫓겨났다.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강과 강가의 땅에 아름답게 경계를 그어 놓은 자전거길 양 옆으로는 가뭄으로 말라버린 실개천과, 터전을 잃고 노숙자처럼 배회하는 새들이 몇 마리 보였다.
낮에 집을 나설 때에는 팔당의 자전거길을 달리며 집 가까운 곳에 이런 길이 있었다니 좋군...이라고 생각했는데, 배가 고파 들렀던 식당에서 만났던 할머니, 그곳이 고향이라고 하시던 국수집 할머니는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삼십여년 유기농 농사를 짓던 분들은 쫓겨나고 그 농지는 '친환경적'이고 누군가들의 건강에는 좋다는 자전거길에 관통당해 죽어버렸다.

그 길을 따라 다시 돌아올 때엔 마음이 좋지 않았다. 길 옆에 일부러 심어둔 꽃들이 예쁘게 말라가고 있었다. 휴일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길 위에 피난민들처럼 꼬리를 물고 느리게 움직이고 있었다.
큰 비가 내리면 하루 아침에 뻘로 변할지도 모르는 자전거길을 위해서는 계속 가뭄이 이어져야 좋을 것 같았다. 그 많은 자전거 바퀴와 사람들의 운동화들은 강을 따라 만들어진 길을 걷고 달리고는 있지만 그 곳에 가본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들은 강가에 우거져있었을 수풀을 보아야할 이유도, 지역의 주민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구경할 이유도 없으니까, 뭐 괜찮을거다. 물과 먹을 것을 보충할 편의점이나 강가에 즐비해지면 좋아할 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그 길이 지루해져버렸다.

심어진지 얼마되지 않은 가느다란 가로수 곁으로, 깎이고 베어진 산이 보이는 고운 이 동네.

떠나버린 새들과 점점 숫자가 줄고 있는 동양하루살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자전거를 구입한지 겨우 일곱 날 만에 내가 뭔가 잘못을 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사람들이 잘 쓰고 잘 가꾸고 행정을 잘 하면, 이 인위적인 길도 풍경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더 많은 사람들이 즐거워하고 건강해질 수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날이 된다고 해도 이미 훼손되어지고 희생되어진 것은 다시 살아나 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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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27일 수요일

자전거


2주 전, 동료인 상훈씨가 툭 던지듯 이야기했던 자전거에 솔깃하여 검색하고 뒤져보았다. 그리고 잠깐의 시간이 났던 일요일에 덜컥 구입하고 차에 실어왔다.
몹시 피곤했던 그날, 마지막 클럽 연주를 마쳤더니 새벽 한 시였는데 집에 돌아와 그 밤중에 끌고 나갔었다. 그동안 다른 사람들이 자전거 이야기를 그렇게 많이 해줬는데도 꿈쩍 안하던 내가, 가장 자주 얼굴 보는 친구의 말 한 마디는 뭐가 그렇게 설득력 있고 타당하게 들렸던지. 하여간 나는 줏대없고 귀는 얇다.


그리고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참 게으른 천성인 것을 새삼 자각. 우리 동네에 이런 길이 있는줄 지금까지 모르고 살았다. 오후엔 팔당대교를 넘어서 건너편 미사리까지.
무려 이십여년만에 자전거를 타는 주제에 처음 부터 무리를 했더니 가로본능으로 누워 있던 근육들이 짜증을 부리고 있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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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


악기용 가방과 그 가방에 부속으로 함께 들어있던 작은 등가방을 십 년 가까이 쓰고 있다.
거의 매일 들고 다녔고 비행기에 화물로도 수 십 번 부쳐졌었다.
하나 둘 고리가 끊어지고 지퍼의 이가 빠지고 낡아지고 있는데도 워낙 튼튼하여 멀쩡하게 버텨주고 있는데... 문제는 이것이 이제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는 단종 제품이다. 같은 것을 구입할 수 없다.
이것과 비슷한 가방이 있으면 좋겠다.

지난 주에 이어 오늘도 여수로 출발, 그곳에서 소록도로 이동하여 내일 낮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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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26일 화요일

공연장에서


지난 주 목요일에, 오랜 기간 여러번 수정되고 번복되었던 음악을 녹음했다.
내 일정에 쫓겨서 계속 시계를 들여다보며 단숨에 세 가지 버젼을 세 번 연주하는 것으로 녹음음을 마쳤다. 그 결과물이 궁금하다.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그 다음날엔 포천에서 공연을 했고, 그 다음날이었던 주말에는 여수에 공연하러 갔었다.
아름다운 바닷마을이 눈앞에 있는데도 리허설만 마치고 호텔방에 들어가 잠만 잤다.

공연을 마친 후에도 겨우 늦은 저녁을 먹고 또 호텔방에서 아침까지 잠만 잤다. 일찍 일어난 덕분에 새벽 공기 가득한 여수의 바다와 섬을 보았던 것이 다행이었다.

여수에서의 공연중에 일어났던 일.

공연이 시작되고 두어 곡이 지났을 때에, VIP로 보이는 (이 단어가 짜증나긴 하지만) 부부가 누군가의 안내를 받으며 맨 앞자리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들은 한 가운데의 앞자리로 가더니, 이미 의자에 앉아 손뼉을 치며 공연을 보고 있던 어린이 두 명을 툭툭 쳐서 일으켜 세우고는 그 자리에 편안하게 앉아버리는 것이었다. 쫓겨나 버린 어린이들은 한 켠으로 물러나 맨 바닥에 앉았는데 이번엔 카메라맨의 동작에 방해가 되었는지 그나마도 다시 쫓겨나 버렸다. 결국 네 번째 곡을 연주하고 있을 즈음 그 어린이들은 공연장 밖으로 터덜 터덜 걸어나가버렸다.

빼앗은 자리에 점잖게 앉아서 웃음 띤 얼굴로 무대를 보고 있는 양복입은 사람들과, 흙이 묻은 반바지를 털지도 못하고 공연장을 걸어나가는 어린이들의 뒤통수가 계속 눈에 들어와서 마음이 복잡했다.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거나, 세상 일이 다 그런 것 아니느냐고 할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아니다. 그러면 안되는 것이고 못쓰는 것이고 빌어먹을 일인 것이지.
좀, 촌티 나게 나이 먹지 않으면 좋겠다. 앞자리 차지하고 앉았지만 결국 아는 곡도 없고 음악이 좋은지도 영 모르겠고...  입은 왜 헤 벌리고 앉아있던걸까. 그 두 분 모두 정말 바보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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