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20일 월요일

스티브 스왈로우

 


기타리스트 존 스코필드의 2020년 앨범 Swallow Tales를 한 해가 지난 이 즈음에야 듣고있었다.

기타리스트의 기타 트리오 편성 음반이지만 이 앨범의 주인공은 베이시스트 스티브 스왈로우이다.  아홉개의 오리지널 곡은 모두 스티브 스왈로우 작곡이다. 믿음직한 드러머 빌 스튜어트의 완벽한 리듬연주 앞에서 선생과 학생으로 만나 수십년 동안 우정을 가꿔온 두 명인의 연주를 듣다보면 50여분이 언제 흘러갔는지 모른다. 세 사람의 연주는 튀어오르지도 너무 가라앉지도 않으면서 모든 곡에서 깊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듣다보면 저절로 탄식이 나오는 순간이 많은 앨범이다.

세 사람은 같은 또래의 동료들은 아니다. 스티브 스왈로우는 '40년생, 존 스코필드는 '51년생, 빌 스튜어트는 '66년생이다. 스티브 스왈로우는 존 스코필드의 1980년 앨범 Bar Talk 이후 스코필드의 앨범 여서 일곱 장에서 베이스 연주를 했다. 빌 스튜어트는 스물 네살 때에 존 스코필드의 Meant To Be 앨범에 참여한 이후 스코필드의 앨범 열 다섯 장에서 함께 연주해왔다. 이 앨범은 스왈로우 선생님과 각별한 친분이 있는 존 스코필드가 오랜 세월 자기들끼리만 연주해보았던 스티브 스왈로우의 곡을 녹음하자고 제안하여 만들어졌다고 한다. 앨범 전체가 차분하고 정갈한 기분이 드는데 그것은 혹시 ECM에서 만들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선곡과 연주가 담백하여 ECM에서 내기로 한 것일지도.

베이시스트 스티브 스왈로우에게는 어떤 신비로움 같은 것이 있다. 그가 아주 젊은 시절에 이미 '잘 나가는' 콘트라베이스 연주자였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나는 그가 '70년대 중반 이후 악기를 바꿔 연주해온 것을 들으며 나이를 먹었다. 긴 세월 내내 그는 어떤 범주에 집어넣기 힘든 고유한 일렉트릭 베이스 연주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가 가진 일렉트릭 베이스기타에 관한 관점이나 생각에 동의하지 못한다. 굳이 새로 고안하여 이상한 모양의 악기를 완성하고 직접 연주하고 있는 것에도 나는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않았다. 그의 연주를 따라해보거나 솔로를 듣고 베껴 연주해볼 생각도 해보지 않았다. 그런데 언제 어느 음반에서나 그의 연주는 특별하다.  그의 연주를 듣고 있으면 매순간 스왈로우 세계의 어떤 풍경이 새롭게 펼쳐진다. 완벽하고 아름다운 triad 사용법이라던가, 그가 기타피크를 쥐고 탄현하는 길고 짧고 세고 여린 모든 음들이 들려주는 깊이라던가 하는 것은 다른 누구에게서도 들어볼 수 없는 소리이다. 나는 아마 그의 연주를 따라해볼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그런 일을 시도해볼 엄두를 내본 적이 없었던 것이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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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 22일 월요일

고마왔어요, 할머니.

 


내 외할머니. 스물 네살에 내 엄마를 낳았다. 내 엄마는 스물 네살에 나를 낳았다. 할머니는 마흔 여덟살에 외손주를 보았다. 그는 첫 손자인 나를 많이 귀여워했다.

나는 내 엄마의 부모,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를 좋아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 못지 않게 나를 예뻐했다. 나에게 다정했던 외할아버지는 너무 일찍 돌아가셨다. 
할아버지가 돌연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그는 갑자기 아내를 데리고 단둘이 남산에 놀러가자고 했단다. 계획도 없이 할머니의 손을 잡고 남산에 올라간 외할아버지는 그곳에서 아내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외할머니는 그 기억을 언제나 행복하게 이야기했다. 그 사진은 외할머니 집에 항상 놓여있었다. 고운 옷을 입고 있는 흑백 사진 속의 중년 부부는 활짝 웃고 있었다. 나는 외할아버지가 로맨틱한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할머니는 여생 동안 내내 일찍 자신을 떠나버린 남편을 그리워했다.

나는 육년 전 할머니의 생일에 이 사진을 찍었다. 갑자기 할머니는 낙상을 하여 정형외과에 입원했었고 그 뒤로 건강이 점점 나빠졌다. 나중에는 요양병원에 계셔야 했다. 할머니는 지난 금요일 새벽에 급히 연락을 받고 달려간 큰 딸과 두 아들을 만난 후 돌아가셨다. 임종을 지킨 내 엄마에 따르면 할머니가 마지막 숨을 거두실 때에 감겨진 두 눈에서 양볼을 타고 눈물 한 줄기가 길게 흘렀다고 했다.
가족 모두가 모여 사흘 동안 장례를 치렀다. 나는 할머니의 유골함을 가슴에 안고 할아버지가 묻힌 묘지로 갔다. 할아버지의 묘에 할머니의 유골이 합장되는 것을 지켜보았다. 장례를 모두 마치고 돌아와 피곤을 이기지 못하고 잠이 들었다. 꿈을 꿨는데, 작은 새 한 마리가 지저귀며 한참을 날고 있었다. 아마 내가 피아노 독주 음악을 틀어둔채로 자고 있었기 때문인가 하였다. 

아흔 아홉살 우리 할머니, 편안히 쉬셔요. 많이 고마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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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 10일 수요일

지나가버린 가을.


 그동안 멈춰야했던 것을 앙갚음이라도 하듯 바쁘게 시월을 보내고 나서, 다시 학교의 일과 집안의 허드렛일들에 시간을 쓰다보니 그만 가을이 지나가버렸다. 피곤한 몸으로 돌아와 손과 얼굴을 씻으려는데 고양이 깜이가 내 곁에 뛰어올라와 쳐다보고 있었다.


아내가 만들어주고 사다준 장난감이며 쿠션들은 본체만체하고 고양이들은 저렇게 빈 종이상자를 오가며 놀고 있다. 날씨가 추워지니까 슬슬 사람 곁에 붙어서 잠을 자려고 한다. 올 가을은 단풍이 물들었는지 낙엽이 떨어졌는지 알아차리기도 전에 없어져버린 것 같다.

올 겨우살이도 고단할 것이고 큰 선거가 다가올수록 공해에 가까운 것들도 자주 보게 되겠지. 오래도록 그랬던 것처럼, 외출 후 집에 돌아오면 반겨주는 고양이들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식구가 있다는 것이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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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26일 화요일

부산에 다녀왔다.


 길고 긴 열 네 시간이었다. 나는 두 시간 전에 집에서 출발하여 서울역으로 향했다. 일찍 도착하여 햄버거를 사먹으며 시간을 보내겠다고 아내에게 말했었다. 내비게이션 앱이 평소와 다르게 한강을 건너 돌아가는 길을 안내했을 때에, 나는 그것을 무시했다. 가끔 아이폰 앱은 불필요한 경로를 안내할 때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곧 나는 내 판단이 틀린 것을 알았다.

끔찍한 도로정체를 겪었다. 내비게이션 앱은 서울역에 도착할 예정시간을 점점 늘리고 있었고 꽉 막힌 도로는 뚫리지 않았다. 한 시간 십여분 동안 길 위에 갇혀 있었다. 손에 땀이 나고 입이 말랐다. 겨우 정체구간을 벗어난 뒤에는 정신없이 차를 달렸다. 몇 년 만에 과속도 했고 차선을 위반하기도 했다. 그러나 제 시간에 역에 도착하여 기차를 타기에는 무리였다.

아내에게 전화하여 도움을 청했다. 아내가 빠르게 판단하여 다음 기차를 예약해줬다. 매니저님에게 급히 전화하여 사정을 설명했다. 아내가 기차표를 예약해주기 전까지 나는, 그대로 차를 돌려 고속도로를 달려 부산까지 갈 마음을 먹고 있었다. 

아내가 급하게 예약해준 기차는 몇 군데 들르지 않는 급행이었다. 나는 앞서 출발했던 일행과 큰 차이 없이 도착할 수 있었다. 리허설을 마치고 저녁 여섯 시가 다 되어 하루의 첫끼를 먹었다. 굶고 있다가 먹었기 때문에 맛있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부산의 돼지국밥은 이제 높은 수준으로 평준화가 되어있는 것이리라고 생각했다. 맛있는 국밥으로 허기를 채웠다.



부산의 따뜻한 기온과 굶다가 먹은 뜨거운 국밥의 온기 때문에 졸음이 쏟아졌다. 대기실에서 가만히 앉아 있으면 그대로 드러누워 잠들어버릴 것 같았다. 악기를 걸쳐메고 괜히 선채로 서성거리다가 의상을 갈아입은 염민열과 사진을 한 장 남겼다.

일정을 마치고 부산역에서 다시 기차에 올라탔다. 좌석에 앉으니 몸이 의자 아래로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나는 에어팟을 귀에 꽂고 Fourplay와 Chuck Loeb의 음악을 들었다. Mendelssohn의 바이올린 협주곡 앨범도 들었다. 다시 서울역에 도착하니 한 시 반. 낮과 달리 텅 비어있는 강변북로를 달리며 큰 음량으로 멘델스존의 음악을 다시 들었다. 음악이 끝날 무렵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루가 참 길었다.

집에 돌아와 찬물로 여러번 세수를 하고, 내일 학교에서 수업할 자료를 완성했다. 지난 주에 만들어두긴 했었으나 내용이 부실했기 때문에 조금 더 시간을 들여 준비해야 했다. 모든 것을 마치고 알람을 서너 개 설정한 다음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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