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1일 수요일

합주.

 


거의 이태 만에 밴드 멤버들이 모여 합주를 했다. 약속이 정해진 후 나는 긴 목록의 셋리스트를 들여다보며 매일 다시 연습을 해보았다. 그동안 수백번 연주했던 곡들이었을텐데 전부 새롭게 느껴졌다. 휴업상태와 같았던 밴드활동을 다시 시작한다는 것만으로도 지금으로서는 고마왔다. 마지막 공연과 합주가 아주 먼 옛날 일처럼 여겨졌다. 오랜만에 하는 합주를 나는 잘 하고 싶었다.

연주를 하지 못하며 지냈던 동안 내 연주에 나빠진 것이 있었다. 작년부터 허리통증으로 한참을 고생했고, 최근에는 왼손 검지손가락에 염증이 생겨서 한동안 악기를 잡아보지 못하기도 했다. 합주를 위해 혼자 연습하며 내가 박자와 비트감을 잃고 있는 것을 느끼고 일부러 모든 곡을 녹음하여 들어보았다. 두어 번 그 일을 반복하며 어느 부분에서 내가 부정확하게 손가락을 쓰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오래 걸리지 않아 문제가 되었던 부분들을 바로잡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왼쪽 검지손가락의 통증은 엄지손가락의 위치를 적절히 바꿔주는 것으로 해결하기 시작했다.

합주약속은 밤시간이었는데, 나는 일찍 가서 미리 연습을 더 하고 싶었다. 약속 한 시간 전에 내가 그 장소에 도착했을 때 낯익은 자동차 세 대가 내 앞에 이미 주차되어있는 것을 보았다. 다른 멤버들도 모두 나와 비슷한 마음이었구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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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8월 30일 월요일

알랑 카론, 듀엣 앨범


 캐나다의 베이시스트 알랑 카론은 좋은 연주자이고 선생님이며 작곡가이다. 그것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유튜브에서 구경할 수 있는 그의 연주 영상 대부분은 여섯줄 베이스로 16비트 슬랩 테크닉을 쉴 새 없이 보여주거나 악기 편성이 가득차서 세고 질량감이 높은 라이브들이었다. 이전에 그의 앨범 몇 장을 들어보았던 나의 인상은 그 정도에 머물고 있었다.

2007년에 나왔던 베이스와 피아노 듀엣으로만 구성한 이 앨범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이 연주자의 참모습을 구경한 것 같았다. 열 두 곡 중 두 곡에서는 멀티 연주자 Jean St-Jacques의 비브라폰과 둘이 연주했고, 나머지 열 곡은 네 명의 피아니스트와 번갈아 연주한 앨범이었다. 베이스와 건반악기의 듀엣이라니, 바람직하다. 알랑 카론은 플렛리스 베이스로 연주하고 있는데, 건반과 베이스 두 악기만의 사운드로 한 시간 십오분 동안 마음껏 스윙한다. 모든 베이스 라인이 아름답고 솔로의 구성은 풍부하다. 이렇게 좋은 연주자였다니, 감탄하며 감상할 수 있었다.

열 곡은 알랑 카론 자신의 오리지널, 나머지 두 곡은 찰리 파커의 스탠다드와 이반 린스의 곡이다. 셀린 디온의 앨범에 참여했던 멀티 연주자 - 키보드, 비브라폰, 베이스, 기타 신디사이저를 다루는 Jean St-Jacques 가 버드의 Confirmation를 함께 연주했다. 자신과 비슷한 또래인 캐나디언 피아니스트 François Bourassa, Lorraine Desmarais, 베네수엘라 피아니스트 Otmaro Ruíz 와 연주한 곡들도 훌륭했다. 내가 뽑고 싶은 가장 좋은 넘버 두 곡은 캐나다의 전설같은 피아니스트 Oliver Jones와 함께 연주한 Strings of Spring과 Scrapper이다. 클래시컬이나 재즈 쪽의 거장 피아니스트들은 고희를 넘긴 나이가 되면 그 사람 자체가 피아노로 변해버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정교하지만 서두름이 없고 날이 서있는데도 따뜻하다. 피아니스트들의 맞은편에서 음반 전체의 사운드를 결정해주고 있는 알랑 카론의 음악적 능력은 대단하다. 그는 어째서 이 앨범 이후 다시 이런 시도를 해주지 않는 것인지.

따스하고 조용한 분위기 때문에 자려고 누웠을 때에 이 앨범을 머리맡에 틀어두었다가 몇번 낭패를 보았다. 음악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잠이 깨어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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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8월 29일 일요일

여름을 다 보냈다.

 


아주 더웠던 여름을 다 지나보냈다.

내 기억 속의 제일 더웠던 여름은 아니었지만, 올 여름은 무덥고 뜨거웠다.

여름이 시작할 무렵 아내의 부친이 다치셨고, 우리는 다시 응급실, 병원 입원, 수술로 이어지는 일들을 겪었다. 그렇게 두어달을 다 보내고 장인을 요양원에 모시게 되었다. 환자의 곁에서 긴 병원생활을 했던 아내는 계속 먼 거리를 다니며 부친을 돌봤다. 아내는 그렇게 계절 하나를 다 보냈다.

그리고 여름이 다 지나갈 무렵 내 아버지가 다시 병원에서 진료, 검사를 받았다. 그리고 주치의의 판단에 따라 또 한 번 입원하여 수술을 받으시게 되었다. 아내가 자신의 아버지를 돌보는 일이 지나가자 이번에는 내가 내 부친의 곁에서 병원에 며칠 있게 되었다. 올 여름 아내와 나는 병원에서 환자보호자의 역할을 하기 위해 코로나19 검사를 번갈아 받았다. 예약되어있던 날짜가 있었지만 우리는 일부러 서둘러 잔여백신을 찾아 1차 접종을 했다. 그 사이 밴드의 리더님과 매니저님은 감염병에 확진되어 보름 가까이 입원 치료를 받기도 했다.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학교에서는 새 학기가 시작했다. 나는 주말에 아버지와 함께 코로나19 검사를 한 번 더 받은 뒤 다음주 월요일부터 부친을 모시고 병원에서 사흘을 보낼 예정이다.

사람 두 명이 가족들의 일로 자주 집을 비우는 동안 고양이 가족들이 더운 여름을 잘 견디고 보내줘서 고마왔다. 이 블로그를 만든 후에 글을 가장 조금 남긴 한 해가 될 것 같다. 전화기에 자주 적어두는 메모는 온통 할 일, 해야할 것, 하지 못한 것들로 범벅이 된 짧은 기록들 뿐이었다.

열어둔 창문으로 찬 바람이 들어오고 있다. 이제 짧고 아쉬울 가을이 좋은 계절로 지나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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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 30일 수요일

떠나고 변하는 것들.

 



고양이 꼼이가 우리 곁을 떠난지 일년이 되는 날이었다. 작년 오늘, 비는 정말 추저분하게 내리고 있었다. 재가 되어버린 꼼이를 작은 단지에 담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는개와 같은 비가 흩뿌려지고 있었다.

함께 살고있는 세 마리의 고양이들이 더 애틋하여 날마다 어루만지고 껴안으며 생활하기 때문에 더 그런 것이겠지만, 매일 나는 이제 죽어서 곁에 없는 내 고양이 순이와 꼼이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은 적이 없다. 날마다 고양이들이 놀던 곳, 숨어있던 곳, 장난치던 구석, 잠자고 있던 자리를 청소하면서 이제는 만져볼 수 없는 손끝의 느낌을 기억하고 그리워한다. 그런데 그것은 감정의 남은 부분일 뿐, 사실은 그 감촉도 느낌도 점점 가물가물해지고 있다. 사람을 바라보던 예쁜 눈망울이나 활력이 넘쳤던 장난꾸러기 고양이들의 모습은 이제 다시 볼 수 없다.

사람들은 자주 '고양이 액체설'과 같은 Meme으로 고양이들의 재미있는 모습을 공유하며 재미있어하고 귀여워 한다. 나는 한 번도 그런 것에 반응해보지 않았다. 고양이가 숨을 멈추면 제일 먼저 몸이 축 늘어지면서 정말로 뼈가 없는 액체처럼 흘러내린다. 반듯하게 조심히 눕혀놓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차갑게 굳어져버린다. 미리 힘주어 눈을 감겨주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 것을 경험하면 고양이 액체설 따위의 문장만 보아도 바삐 화면에서 눈을 돌리게 된다.

모든 생명의 생과 사는 어처구니 없고 허망하다. 생사의 찰나를 경험했던 사람들은 삶의 가치라던가 죽음의 의미 같은 것들이 모두 무의미하게 여겨진다고 했다. 전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런 심정을 간접적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다가 내가 병원신세를 졌던 반년 전에, 심하게 아파보았던 이후에도 나는 세상을 보는 시각이 조금 더 달라진 것 같다.

자전거 타기를 좋아했던 나는 2016년 그 여름부터 거의 자전거에 손을 대지 않았다. 고양이 순이가 암 판정을 받은 후에, 내가 자전거 타기에 미쳐서 몇 년을 보내며 고양이의 건강을 돌보지 않았기 때문에 순이의 병을 미리 발견하지 못했고, 결국 고양이가 죽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후 더 이상 자전거 위에 앉아 땀을 내며 바람을 쐬는 것이 즐겁지 않아졌다.
꼼이가 갑자기 아프기 불과 몇 주 전에는 영상을 찍어뒀었다. 유난히 민첩하고 운동신경이 좋았던 그 고양이가 높이 도약하고 어려운 동작으로 뛰어내리는 장면들이 담겼다. 그랬던 고양이 꼼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아팠고, 병을 이기지 못하여 세상을 떠났다. 순이가 죽은 뒤에 집안의 고양이들을 자주 병원에 데려가 검진하고 미리 건강을 확인하며 지냈는데도 꼼이가 병들고 죽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나는 이제 집안의 고양이들이 우습고 재미있는 행동을 하여도 구태여 영상을 찍어 남기거나 하고싶지 않아졌다. 그냥 그 순간 웃어주고 다가오면 끌어안아 쓰다듬어주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모자라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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