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21일 토요일

당진 공연.


당진에서의 공연을 마쳤다.
낮에 서해대교를 건너다가 9년 전 태안 바닷가에서 공연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태안에는 어떤 연고가 있어 가끔 다녔다. 당진도 그랬다. 공연을 하러 갔던 적은 아직 없었다.

화요일부터 오늘까지 계속 감기 몸살을 앓았다. 두 시간 운전을 하는 것도 힘이 들었다. 공연을 마칠 때까지만 버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리허설을 마칠 즈음부터 몸살 기운이 사라졌다.


십 년 전 12월에는 밴드의 두번째 음반을 낸 후 연말 공연을 했었다. 열 번의 해가 빠르게 지나가버렸다. 극장에서 요청한 포스터에 서명을 하고 어쩐지 기록을 해두고 싶어서 사진을 찍었다.



스물 두 곡을 연주한 공연도 지난 십 년 세월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공연을 마치고 악기를 정리하다가 무대 바닥에 붙여둔 셋리스트를 한 번 더 보았다. 십 년 동안 어떤 곡은 모양이 달라졌고 어떤 곡은 조가 바뀌었다. 어떤 곡은 내가 녹음하고 연주한 지 십 년이 넘었고 어떤 곡은 내가 마음에 담아 들어온 지 삼십년이 넘었다.

이제 다음 주에 남은 공연을 하면 힘든 일만 많았던 한 해를 얼른 보내줄 수 있다.
오늘은 우선 오래 자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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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 16일 월요일

행복해하는 고양이.


고양이 이지가 자주 기분 좋아하며 논다. 뛰어다니기도 하고 무엇인가에 즐거워져서 혼자 장난에 몰두하기도 한다.

어디까지 더 나빠질 수 있을까 싶었던 올 한 해 동안, 고양이 이지가 더 이상 아프지 않고 잘 먹고 잘 노는 것은 몇 안되는 행복한 일이었다. 우리는 이지를 볼 때 마다 껴안고 입 맞춰주며 고마와했다.

동물병원에 갔다가 주먹만한 어린이 고양이가 철장에 갇혀 있는 것을 보고 다가갔었다. 어린 고양이가 눈을 크게 뜨고 가늘게 울며 두 앞발로 내 손가락을 꼭 쥐었었다. 집에 돌아온 후 계속 손가락 끝에 남은 고양이의 온기가 마음에 남아서, 아내와 함께 동물병원에 다시 찾아가 입양을 했었다. 고양이 이지가 우리와 함께 살게 된 것이 그때로부터 벌써 십 년. 세월은 살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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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26일 화요일

음악


아침에 병원에 다녀와서 세 시가 다 되어 첫 끼를 먹었다.
일찍 일어났더니 잠이 모자라 두어 시간 낮잠을 잤다.

저녁에 학교 학생들의 정기공연, 졸업공연이 있었다. 서교동까지 가는 길에 자동차가 빼곡했다. 오랜만에 찾아간 동네엔 울긋불긋 낯선 간판들이 가득했다.
학생들의 연주를 주의 깊게 보았다. 나는 지난 주 작은 공연을 제대로 잘 하지 못했던 것이 아직 마음에 남아있다. 자신들이 공들여 준비한 음악들을 한 곡 씩 연주하는 학생들의 표정에는 강한 자의식이 보였다. 대부분은 과잉된 기분으로 보였지만, 그 사이에 시선을 멈출만한 미래의 연주자들도 있었다.



공연장에서 십여분 걸어서 오늘 약속되어 있던 녹음실에 도착했다. 스무 살 많으신 음악선배 형님은 벌써 도착하셔서 녹음을 진행하고 있었다. 나는 친구들과 함께 얼마 전 그 분의 노래 두 곡을 녹음했다. 오늘 녹음을 끝으로 이제 후반 작업만 남았고 아마도 새해 초에 음원이 나올 것 같다.

깊은 밤 동네에 돌아오니 입김이 보였다.
이제 겨울은 시작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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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23일 토요일

멍하게 하루를.


사진 속의 검은 고양이 깜이의 모습은 며칠 전 아침에 찍은 것이다.
베란다에 햇볕이 드는 시간에 나왔다가, 그늘이 지면 다시 방에 들어간다.
대부분 햇볕을 쬐며 드러누워 자고 있지만 가끔은 저렇게 강을 바라보며 멍하니 있을 때가 있다.

토요일이었던 오늘, 하루 종일 나도 책상 앞에서 뭔가 멍한 채로 있었다. 계속 악기를 들고 정해둔 루틴대로 연습을 하기는 했는데 특별한 생각은 없었다.
어제 저녁에 친구들과 공연을 했다. 그 공연을 잘 하고 싶었기 때문에 나는 혼자 연습을 많이 했었다. 아이디어도 많았다. 그런데, 어제 나는 연주를 잘 하지 못했다. 한 번 제대로 되지 않은 다음에는 모든 것이 꼬여가기 시작했다. 거의 곡 마다 틀렸고 나 때문에 음악이 끝나지 못하고 더 이어지기도 했다.

새벽까지 내가 망쳐버린 공연 생각에 열중하다가 자고 일어난 뒤로는 그만 정신이 멍해졌다.
무엇이 가장 문제였고 어떤 것에서 내가 잘못 판단했던 것인지 알고 싶었다. 어제 오전에 괜히 네크의 트러스로드와 브릿지를 조정했기 때문이었을까, 줄의 게이지를 바꿨던 것이 나빴던 것일까, 앰프를 잘 못 조작했던 탓이었을까 등등... 어딘가 기운이 빠져서 종일 축 늘어져 있었다.

다시 깊은 밤. 고양이 깜이는 한참 동안 놀아달라고 조르다가, 이제는 잠을 자러 가자고 투정을 부리고 있다. 저 고양이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나를 따라다니는 것인가. 다른 고양이들은 아내의 방에 모여 각자 자리를 잡고 쿨쿨 자고 있다.
나는 고양이의 성화를 받아주는 체 하며 이제 일부러라도 편안하게 자고 일어나 일요일 만큼은 덜 멍청하게 보내려고 한다. 망쳐버린 공연은 할 수 없는 일이다. 가까운 시일 안에 내 스스로 그 기억을 만회할 기회가 생기길 바란다.

음악을 랜덤으로 틀어보았더니 한참 동안 템포가 빠른 피아노 곡이 재생되고 있다. 모두 꺼두고, 오늘은 좀 깊이 잠들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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