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17일 화요일

밴드의 새 음반 녹음 이야기.

2012년 3월 23일 금요일.

두 시간 정도 잤을까, 나도 모르게 알람이 울리기 전에 선잠을 깨고 벌떡 일어나 앉았다.
어두운 방안에서 고양이들은 몸을 동그랗게 말고 사이좋게 모여 잠들어 있었다. 창문에는 빗방울이 닿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여섯 시 반에 집을 나와서 녹음현장에 도착했다. 아침 일곱시 사십 분이었다. 히터를 틀어둔 채 자동차 지붕의 빗소리를 들으며 스르륵 다시 잠이 들었다.

오전 아홉 시에 모든 스탭들과 악기들이 준비를 갖췄다. 손에 들고 있던 커피가 아직 식지 않았다. 나는 내 자리에 앉아서 녹음할 노래들의 제목을 적어둔 종이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냥 보고만 있었다. 읽거나 생각을 하거나 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커피를 다 마시고 물 한 병을 열어 마저 다 마셨다.
개인 악기들과 앰프 등은 하루 전 22일 목요일 낮에 미리 가져다 뒀다.
나는 내가 해야할 일을 순서없이 여기 저기 적어놓았다. 아직 잠을 덜 깬 상태로 앰프 앞에 앉아 그것을 정리하여 종이에 옮겨 적고 있었다. 목요일에 일을 마치고 늦게 집에 돌아와 혼자 녹음할 곡들을 죽 쳐봤었다. 그 시간에 차라리 잠을 푹 자둘 것을 그랬다.
지금까지 낫지 않고 걸핏하면 다시 상처가 나고 있는 오른손의 손톱끝이 그날은 유난히 심하게 아팠어서, 신경이 날카로와져있었다. 조명을 어둡게 해놓았는데도 자주 눈이 부셔서 계속 모자를 쓰고 있었다.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저기’, ‘금지곡’, ‘꿈이야 생각하며 잊어줘’, ‘팩스 잘 받았습니다’, ‘멀어져간 여자’는 펜더 재즈로 녹음했다.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의 앞 부분은 손가락으로, 뒷 부분은 피크로 연주했다. 아길라의 스톰프형 프리앰프에 드라이브를 조금 걸어둔 상태로 암펙 앰프의 게인은 조금 줄인 상태의 사운드로 했다.
‘독수리가 떴네’,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는 물론 Moollon 프레시젼 베이스로, ‘지구가 왜 돌까’, ‘옷 젖는건 괜찮아’, ‘길엔 사람도 많네’는 물론 Moollon 재즈 베이스를 사용했다.
‘팩스 잘 받았습니다’와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는 모두 피크를 사용했다. 나머지는 전부 피크로 연주할 수 없는 곡들이었어서 손끝의 통증에 신경쓰지 않으려고 힘을 주다 보니 나중에는 턱이 아팠다. 아마 이를 너무 오래 꽉 물고 있었나보다.

모든 곡들은 평균 두 번씩 연주, 녹음되었는데, 대부분 첫번째 것이 테이크 되었다.
평소에 무대에서 연주하던 곡들도 있었고, 이 녹음을 위해 일주일에 사흘씩 한 달 동안 합주연습을 했다.

멤버들의 실수도 거의 없었다. 한 곡씩 마칠 때 마다 의견이 다른 것도 없었다. 사실은 그다지 대화를 할 일이 없었다. 가끔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펴거나 5분의 시간을 얻어 담배를 한 대 피우고 돌아오거나 했을 뿐. 한 곡을 마친 후에는 리더님이 "자, 다음 곡~" 이라고 말하며 계속 녹음을 이어갔는데, 음반을 들어보면 어떤 곡과 곡 사이에 그렇게 말하는 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들어가서 가느다랗게 들린다. ‘자, 쌩큐~ 다음 곡!’

아홉시 반에 시작된 녹음은 열 세 곡을 쉼 없이 진행하여 오후 두 시에 모두 끝났다. 중간에 삼십 분의 점심시간을 제외하면 네 시간 동안 열 세 곡을 녹음한 셈이 되었다. 음반에는 열 두 곡이 수록되었다. 오후 부터 저녁 까지는 우리 리더 형님 혼자 보컬 녹음을 했고, 모든 것이 다 끝났을 때엔 아직 밤 열시가 다 되지 않았던 것 같다. 하루 안에 앨범 한 장의 녹음을 다 마쳐버리다니, 우리는 서로 마주보며 ‘정말 다 했네~’라며 비로소 긴장을 풀었다. 어두워진 하늘에서는 아직 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그날의 녹음이 순조롭게 되었던 것은 비가 종일 내려주어 뭔가 차분한 분위기였기 때문일거라고 생각했다.

집에 돌아와 따뜻한 물로 몸을 씻고, 커피를 진하게 내려 마신 후에 나는 반나절 동안 잠들었던 것 같다. 다음날 오후에 일어나서 어제 하루의 일을 생각하다가, 만약 내일 모레에 갑자기 부득이하게 다른 음반 한 장을 또 녹음해야한다고 해도 ‘네,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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