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3일 금요일

커피

 

지하철을 타고 혜화동에 가서 몇 년 만에 친구와 만났다.

집에서 매일 아침에 커피를 내려 마시고 있지만 외출하여 커피집에 앉아 잔에 담긴 커피를 맛보는 건 오랜만에 해보는 일이었다. 마침 새로 다운로드 하여 지하철에서 듣고 있던 음악은 1994년에 나온 데이빗 베누아와 러스 프리맨의 앨범이었다. 구십년대 후반 어느 겨울날에 나는 지금 앉아있는 커피집 길건너에 있던 레코드점에서 GRP 컴필레이션 시디를 한 장 샀었는데, 그 안에 있던 한 곡이 바로 The Benoit / Freeman Project 앨범 수록곡 중 하나였다. 그 당시엔 이 앨범을 구하지 못하여 궁금해했었다.

삼십여년이 지난 뒤 겨울 오후에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받으며 앉아서 그때 사지 못했던 음반을 이제서야 들어보고 있었다. 커피는 식기 전에 마셨다. 그리고 일몰 시간이 되기 전에 집에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2023년 1월 30일 월요일

진주에서 공연

 

1월 29일에 진주 경남문화예술회관에서 공연을 했다.

리허설을 시작하기 전에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지난 몇 주 동안 나는 다시 이펙터들을 새로 배열하고 페달보드 위에 연결하여 한참을 연습했다. 전에는 해보지 않았던 순서로 꾸며 보았다. 이것들을 통과한 악기 소리가 항상 좋을 수 있도록 오래 준비를 했던 것이다.

그런데 악기를 조율하고 소리를 내보는 순간 제대로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컴프레서 페달의 소리가 영 이상했다. 재빨리 노브를 조정하면 금세 해결할 수 있는 일이기는 했지만, 그렇게 하려면 납득할 이유가 필요했다. 내가 집에서 시간을 들여 맞춰두었던 것이 틀렸었던 것인지, 케이블 어딘가에 이상이 생긴 것인지, 극장에 놓인 앰프와 모니터 스피커 때문인지를 판단할 수 있어야 새로 조정하는 값을 신뢰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은 내가 나를 신뢰할 수 있느냐의 문제였을 수도 있겠다.

결국은 컴프레서의 아웃/인 노브를 대충 다시 만져서 소리는 잘 나오게 해두고 시작할 수 있었다. 나머지 페달들도 연습했던 그대로 좋은 소리를 내줬다. 어찌어찌 공연은 마쳤지만 왜 그런 문제가 생겼는지는 알아내지 못했다. 좀 더 공부해서 내가 원하는 소리를 항상 얻을 수 있도록 하고 싶어졌다.

공연을 삼십분 앞두고 나는 무대에서 내려가 객석 사이의 통로를 따라 맨 위에 있는 콘트롤룸에 찾아갔다. 엔지니어를 찾아 리허설을 할 때에 내가 듣고 있던 음향 상황을 설명하고 두세 가지를 다시 주문했다. 그가 빠르게 알아듣고 내가 원하는대로 해주었던 덕분에 편안한 상태에서 두 시간 공연을 마칠 수 있었다. 이런 일도 예전엔 귀찮아서 하지 않았었다. 지금은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상관 없으니, 가능한 최적의 상태에서 가장 좋은 소리를 내며 연주하고 싶다.


경남문화예술회관

 

진주 경남문화예술회관은 규모가 큰 장소였다. 드러머 형님의 말에 따르면 그곳엔 과거에 체육관이 있었다고 했다. 지금의 극장이 1988년에 개관되었다고 하니 공사를 시작한 1984년 전에는 운동장 같은 것이 있던 자리였나 보다.

건물은 너무 과장되어 있고 위압감이 느껴졌다. 김중업의 설계라고 하는데, 그는 건국대학교 도서관, 홍익 대학교 본관, 프랑스 대사관을 설계했다. 내가 아는 건물들은 겨우 그 정도 뿐이지만 그의 이름은 많이 들어서 알고 있었다. 리허설을 마치고 나서 건물의 내부를 다녀보고 건물의 바깥을 한번 걸어보았다. 첫인상과 달리 건물은 복잡해 보이면서도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건축가가 하는 일이란 정말 근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2023년 1월 18일 수요일

엉터리 기억

 


기억은 불성실하다.
애플뮤직에서 Gary Burton의 앨범 중에 Pat Metheny가 참여했던 것을 찾고 있었다. 나는 개리 버튼의 앨범을 LP나 시디로 샀던 적이 없었다. 카세트 테이프로 한 두 개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생각이 났을 때 앨범들을 찾아두고 죽 이어서 듣고 싶었다. 그래서 찾은 것이 The New Quartet이라는 앨범이었다. 1973년에 발매되었다고 써있기 때문에, Bright Size Life가 1975년에 나왔으니까, 그것을 녹음하기 전에 Pat Metheny가 개리 버튼의 앨범에서 연주했던 것이겠지, 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그 앨범에서 기타를 연주한 사람은 Mick Goodrick이었다. 알고보니 개리 버튼이 Pat Metheny를 자기의 퀸텟에 고용했던 것은 1974년의 일이었다.
Pat Metheny는 자신의 그룹을 결성하여 1977년에 개리 버튼 팀에서 나갔다. 그 후에 다시 개리 버튼의 앨범에 세션으로 참여했었는데 그것이 1989년 앨범 Reunion이었다. 이것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카세트 테이프에 녹음을 하여 듣고 다녔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앨범을 친구를 통해 알게 되었었다. 그렇다면 분명 1990년에 처음 이 앨범을 들었던 것이라고 생각하여, 그 친구에게 내 기억이 맞는지 문자를 보내어 물어 보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자기는 그 앨범을 샀던 적이 없고, 거기에 있는 한 두 곡을 나중에 컴필레이션 앨범에서 들어봤을 뿐이라고 했다.
겨우 삼십여년 전 일인데, 맞는 기억이 하나도 없다. 도대체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 중에서 어떤 것이 사실이고 어떤 것이 내가 지어낸 것인지 모르겠다.
내가 카세트 테이프에 담아서 듣고 다녔던 앨범은 Passengers 였던 것 같다. (자신은 없지만)
기억은 불성실하다. 아니면, 그냥 내가 불성실한 것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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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k Goodrick 아저씨는 두 달 전에 파킨슨씨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