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9일 수요일

근무자.

나와 함께 밤을새워주는 고양이들은 사실, 순번이 정해져있다.
얘와 순이가 아마도 격일제로 근무를 하는 모양이고 나머지 녀석들은 언제나 드르렁 거리며 잠만 잔다.

새벽 찬 바람. 나는 다가온 고양이를 쓰다듬으려 했는데 고양이는 기꺼이 품에 들어와 사람을 덥혀줬다.


2013년 10월 7일 월요일

새벽 기차역.



새벽, 기차역에 도착하여 일행들과 인사하고 헤어져 주차장을 찾아 걸었다.
어두운 용산역사를 걸어가다가 내가 이 미로같은 길을 어떻게 알고 있는건가 했더니.

그랬구나, 잊고 지냈던 기억.
십 년 전에 나는 완전히 무너졌던 적이 있었는데, 그다지 욕구도 희망도 없이 여름의 몇 달 동안을 아침 저녁으로 이곳을 지나며 음악과 상관없는 일을 하고 있었다.

습하고 더웠던 그 해 여름에 인파 속에서 갯벌에 빠진듯 무거운 발을 옮기며 리차드 보나를 듣고 있었다.

흠, 거기가 여기였군, 하며 잠깐 서서 담배 한 개비. 허공에 뿌려지는 연기가 상쾌하게 흩어졌다.



2013년 10월 6일 일요일

자라섬.


한 시간 이십 분 전에 기차역에 도착.
타이머를 맞춰두고 음악을 틀어둔채 눈을 감고 있다가 놀라서 일어났다.
내가 다시 잠들었는 줄 알고.

어제 가평에서는 인연이 있는 학생들이 모임이라도 가진듯 공연장에서 여러 사람을 만났다.
지금 학생인 사람, 졸업한 사람, 그리고 졸업 후 음악을 하면서 이제는 무대에서 만날 수 있는 어린 친구들을 만나니 반갑고 기분 좋았다.


쌀쌀한 새벽에 혼자 집으로 돌아올 때엔, 어쩐지 나는 늘 같은 자리에서 고여있는 물이 되어버린 것 같아서, 한기를 느꼈다.


2013년 10월 5일 토요일

합천에서.


합천에서 이상하게 여겼던 것.

구겐하임 미술관의 내부를 옮겨오려고 한 것 같은 느낌이었던 과천현대미술관은 김태수의 작품.
과천현대미술관 내부의 Ramp Core를 그대로 베껴온 합천 대장경천년관의 내부는 함인선의 작품.
함인선은 김태수 문하에서 8년간 일하고 2000년에 독립.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래도 되는 건가? 그쪽 업계(?)에서는…?

그리고 산을 깎아 마련한 공간에 들어선 그 건물들과 배열이 정말 괜찮다고 생각하는건가. 동선은 어디에서 시작하여 어떻게 의도되고 있는지. 의도라는 것이 있었는지도 모르겠고.
뭐 그냥 그런가 보다 해야 하나.

그곳을 걸으며 기분이 나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