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16일 금요일

재즈


갑자기 연락을 받고 급한 사정이 생긴 연주자 대신에 대리 연주를 하러 가게 되었다. 절묘하게 시간이 맞춰져서 약속시간을 지킬 수 있었다. 우연히도 몇 주 전 건너편 건물 2층에서 그 클럽을 쳐다보며 궁금하군, 한 번 가봐야겠네,라고 했던 장소가 그곳이었다. 연주하는 무대가 창가였는데 아득히 옛 이야기가 되어버린 오래전 이태원, 강변들의 클럽이 생각났다. 익숙한 곡들, 세월이 흘렀어도 그다지 발전이 없는 라이브 클럽의 모양새... 연주하면서 창밖의 풍경을 구경하다가 테이블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흔드는 발끝도 보다가... 이렇게 긴장감 없는 것은 곤란하다는 투정도 해보다가.
낯선 장소이지만 졸업한 학교라든가 살았던 동네에 다시 와본듯 친숙했다. 끝없이 스윙하며 밤 새워도 좋다고 생각했다.

벽에 싼값에 박제되어있는 유명한 연주자들의 이름을 하나씩 기억해보면서, 쉬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맨날 쉬는 날이 필요하다며 투덜거렸던 주제에. 아무렴, 쉴 수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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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15일 목요일

책과 음악


자주 잊으며 살지만, 책과 음악은 언제나 나를 도와줬다.
한 번 읽고 통찰할만한 두뇌가 되지 못하는 대신에 같은 책을 몇 번이나 다시 읽어도 지루해하지 않는 미련함을 지닌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기차를 타는 덕분에 운전을 하지 않으며 이동하는 시간은 꿀맛이다. 아득히 옛일처럼 여겨지는, 귀에 이어폰을 꽂고 책장 넘기기. 대구를 지날 무렵이던가... 랜덤으로 플레이해놓았던 아이팟에서 오넷 콜맨에 이어 팻 메스니의 80/81, 그리고 다시 Song X의 음악이 우연히 연결되었던 것이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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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11일 일요일

스튜디오에서


나는 늘 불평하고 있어서 그곳에 종사하는 분들이 싫어할 것 같다.
그러나 방송이라는 것은 이런 것으로 나는 생각하고 있다.
치밀한 준비 대신에 효율성 극대화, 작가정신 대신에 제품양산 정신으로 일하는 분들이 사이좋게 출퇴근하는 곳. 그러나 결국 효율성도 없고 적절한 제품을 생산하는데에도 벅차하는 곳. 그리고 절대로 제대로 일하지는 않는 회사.
그런 그들의 자긍심은 어디에서 나오는걸까. 바지춤에 매단 사원출입증인걸까, 구내식당 식권인걸까.

뭐 그건 그거고... 어떤 종류라고 해도 스튜디오라는 공간은 기분좋은 곳이다. 그렇게 천장이 높은 곳에서 정기적으로 음악을 연주하는 프로그램이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게 생겨날 가능성은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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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10일 토요일

부산에서.


이 도시에서 열리는 국제영화제에 한 번도 가보지 못했었다.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인지 지난번 제천의 영화제에서도 좋은 영화들이 가득했는데 한 편도 보지 못하고 돌아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이긴 했다. 전날 공연을 마치고 새벽부터 일어나 기차에 몸을 실었다. 부산에 도착하여 리허설을 마치고 몇 시간 후에 공연을 했다. 연주를 마치자마자 다시 기차를 타고 정신없이 집으로 돌아왔더니 새벽 두 시였다.

바람이 불고 기온이 떨어져서 낮부터 추웠었다. 가슴 파인 옷을 입고 공들여 화장을 하고 입장하는 여배우들을 기다리던 사진 기자들은 그들의 가슴을 촬영하느라 큰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바닷가에 정박한 요트의 돛대들이 맥주 한 병씩 들고 몸을 흔드는 사람들처럼 서로 엇갈리며 허공에 출렁이고 있었다. 무너지거나 주저앉거나, 어쩌면 공중으로 튕겨져 올라갈지도 모르는 부실한 이동식 무대 위에 세 개의 앰프와 캐비넷과 드럼셋트와 건반악기가 올려져있었다. 그 위에 우리들 네 명이 악기를 들고 올라갔더니 무대가 기울어져버렸다. 우리들은 바닷가의 요트들 처럼 출렁거렸다. 항구도시 부산을 잘 표현한 라이브 무대 시설이었다.
준비했던 곡들이 너무 잔잔하여 아름답고 규모가 큰 영화제에 잘 맞지 않는 것 같았다. 공연 전에 좀 더 흥겹고 센 곡으로 바꾸면 어떨까 의논했었다. 그랬었다면 정말 사고가 날 뻔 했다. 비틀거리던 무대가 무너지고 우리는 추락했을 것이었다.
뒤이어 뛰어나오는 여자아이들의 무대는 앞쪽이어서 안전하기도 했고, 아마도 그들의 체중이 많이 나가지 않았기 때문에 안심하고 뛰며 춤을 출 수 있었을 것이었다. 체중감량은 생존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레모니를 지루해하는 시청자들을 위해 누가 말을 하고 있거나 누가 노래를 하고 있거나간에 화면에는 배우들의 얼굴을 띄워놓고 있었다. 이런 저런 인사들이 얼굴도장을 찍고 할 일을 하러 떠날 수 있도록 불꽃놀이를 핑계로 조명도 꺼주는 배려심. 하루 종일 고생했을 자원봉사자들은 청소를 하느라 애먹었을 것 같았다. 내년에는 휴지통이라도 좀 사다 놓아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시간을 내어 영화제 구경 좀 하러 다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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