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3월 1일 일요일

시작하는 사람들.


클럽 공연을 마치고 전화기에 문자메세지가 와있는 것을 보았다. 
한 학생이 모대학교의 최종발표에서 합격했다는 소식이었다. 두 세달에 걸친 실용음악과 입시기간동안 스트레스에 치였을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축하 메세지를 보내주고 내 악기를 챙기며 시끄러운 소음이 가득한 클럽 안을 둘러보았다. 땀을 흘리며 연주하고 있는 친구들과 그들을 지켜보며 흔들거리는 사람들이 보였다.
기이하고 고약한 공교육의 틀 안에서, 누구의 보호도 받지 못하며 분투했던 어린 학생들이 불쌍하게 여겨졌다. 지금 무대 위에서 저렇게 좋은 연주를 하고 있는 내 친구들은 나처럼 아무도 음악을 전공하지 않았다. 실용음악과를 수강하지 않아야 음악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은 아니지만, 그런 힘든 입시를 치르며 입학을 하여야 좋은 연주자가 되는 것만도 아니다.
올해에도 어쩌다보니 내가 맡았던 학생들이 모두 진학을 하게 되었다. 그들에게는 축하하는 마음을 보냈다. 부디 그들이 음악 앞에서 겸손했던 이 시절을 잊지 않으며 더 많은 경험을 해나아가기를 바랐다.
자신의 꿈을 발견하고 십대의 시절을 열심히 보냈던 것만으로도 이미 훌륭하다고도 생각했다.


다음 주 부터 시작되는 학교의 개강. 수업을 통해 하고 싶은 것들의 생각은 많은데, 과연 얼마나 현실화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악기를 쥐고 연습하면서도 십대엔 진학을 걱정하고 진학과 동시에 취업을 걱정하는 학생들에게 나는 나이든 사람으로서, 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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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월 20일 금요일

라디오 방송.


라디오 스튜디오는 어느 곳이나 편안하다.
좋아하는 것들만 들어있는 방이어서 그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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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월 18일 수요일

이상한 나라.


존경한다는 것은 대상에 대한 객관적이고 냉정한 비판이 가능할 때에야 비로소 참이 된다.
흔히 자신의 아버지를 존경한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아버지란 사랑하는 것이 맞다. 지나친 결벽이라고 해도 할 수 없지만, 자식의 입장에서도 존경할 수 밖에 없는 존재란 귀하고 드물다. 너도 나도 자신의 아버지를 '아버님'으로 부르는 세태는 우스꽝스럽다.

여기는 아직도 명령의 도덕만 판을 치는 나라여서, 도무지 동의로서의 도덕이 자리를 펼 구석이 없다.
이런 곳에서는 존경이라는 개념은 맹목적인 추앙과 다를 바 없다.

종교라는 것을 대하는 사람들의 맹목적인 태도, 이유와 근거를 캐묻는 것을 불경이라고 몰아세우는 신민의 근성은 도무지 진화하지 못하는 것인가. 어느 사제의 죽음을 놓고 벌어지는 일을 보니 여기는 과연 이상한 나라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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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월 17일 화요일

라이브 카페.


드러머 민우씨의 부탁으로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의 라이브카페에 연주를 하러 다녀왔다.
맛있는 저녁을 얻어먹고, 안내를 받아 문을 열고 들어간 곳의 분위기가 좋았다.
24시간 동안 잠을 못자서 몹시 피곤했었는데 기분이 편안해져서 많이 괴롭지 않았다.
몇 번이나, '집 근처에 이런 곳이 있다면 정말 좋겠다'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처음 만나는 그곳의 연주하는 분들과도 인사를 나누고... 친절하게 악보를 준비해준 덕분에 잘 알지 못했던 곡도 연주할 수 있었다. 옛 기억들이툭툭 떠오르는 바람에 무대 위에서 무엇인지 아련한 공기를 마시는 것 같았다.

직업연주자라고 하면 나는 우선 그런 라이브카페의 음악인들이 먼저 생각난다. 나도 역시 그런 출신이고 지금은 엉뚱한 일로 보내고 있지만 결국 돌아가야할 자리라고 여기고 있는.

지금의 나보다 어린 나이에 먼저 세상을 떠나버린 바람에, 언제나 젊은 모습으로 기억되어질 연주하던 형, 친구들의 얼굴이 떠오르기도 했고... 그들과 함께 하던 라이브 클럽들의 자욱한 담배 연기, 낯선 표정의 수많은 관객들의 표정들이 함께 기억났다. 하룻밤에 서너 군데를 돌아다니느라 위험천만한 운전을 했던 때도 있었고, 텅빈 테이블 때문에 기운이 빠져있을때에 고약한 말을 함부로 하던 업주들도 있었다. 그러나 언제나 그립고, 그런 곳에 가면 소꿉친구들이라도 모여있을 것 같은 환상이 있다. 사실은 어디에 가도 아무도 없지만.

그러나 열악한 것만 순환되어지고 있는 이 나라의 현실에서 라이브 카페라는 것은 술마시고 호텔 캘리포니아를 청하는 장소가 되어버렸다. 우리의 유흥이란 그런 것 뿐인건가.

저질의 악순환이 더 이상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 나라에서 도대체 사람들은 무엇으로 살면 좋다고 생각할 것인지. 추측컨대, 텔레비젼을 껴안고 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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