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2월 3일 화요일

라디오 스튜디오에서.


방송을 마친 직후에 악기를 정리하며 한 장 찍어두었다.
오래전에는 라디오 스튜디오에도 방송사 소유의 베이스 앰프가 있었다. 그것만 기억을 하고 갔던 것인데 앰프는 없었다. 대신 좋은 D.I. 박스가 있었다.
고민하다가 페달보드를 가져갔던 것이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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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월 2일 월요일

내 고양이 순이.


너무 건조한 겨울철이어서 방안의 악기들이 전부 나쁜 상태가 되어버렸다.
가습기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였다. 한밤중에 욕실의 욕조에 더운물을 받아 습하게 만든 후 악기들을 집어넣고 문을 아침까지 문을 닫아두었다. 그리고 당분간 모든 세탁물은 방안에 두는 것으로.
악기의 네크들은 얄밉게도 정상으로 돌아와줬고...
깨끗한 것 좋아하고 세제냄새 좋아하는 고양이도 얄미운 얼굴을 하고 젖은 빨래 위에 올라가 앉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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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하며 살기.


행복이 삶의 목표가 될 수 없다는 것에 수긍할 수 있으면 행복하기 시작한 것일 수도 있다.
만족, 충족이라는 것을 행복으로 여긴다면 천박한 목표를 위하여 아무리 긁어 모으고 채워가도 행복할 수 없을텐데...
친구들과 친구들과 친구들이 함께 연주하는 것을 지켜보며 단꿈을 꾸듯 행복해했고, 늦은 시간 집에 돌아와서는 고양이들의 모습을 보고 행복해했다.

행복하며 살아가지 않으면 타인들을 행복하게 할 수도 없고, 남들을 행복하지 못하게 해버리기도 한다. 그런 것인줄은 알겠는데 행복해하며 살기란 역시 어렵고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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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29일 목요일

듣보시대.

듣보들의 시대를 맞아서 쥐들과 그에 준한 설치류, 종족의 명예를 더럽히는 개들, 그외 각 분야의 다양한 듣보들이 설치거나 모습을 드러낸다.

철학자, 사상가를 자임하며 온갖 훈계를 늘어놓던 학자 한 분은 지금의 정권이 인수위원회를 꾸려서 오렌지 어쩌구를 선보일 때 부터 보이지 않더니 뭐 아무 말이 없다. 말하지 않을 자유가 있으니까 뭐라고 할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고래 고래 소리를 지르던 몇 년 동안을 기억해보면, 항상 세상이 만만할 때만 모습을 드러내는 학자듣보인 것 같다. 이런 말을 들으면 억울해하겠다... 하긴, 그런 학자들이 어디 그 분 하나 뿐일까.

환경에 대한 의식이 없다면서 정권을 꾸짖고 욕을 해대던 어떤 분들은 원래부터 정치나 경제의 환경에는 관심이 없었는지 일언반구 말이 없다. 도룡뇽을 구하느라 바빠서 지렁이를 죽이고 말았던 원죄의 탓인가. 산에 터널을 뚫는 것을 막기 위해 죽음을 각오했던 분들은 온 나라의 강바닥을 ‘개발’해주겠다는 말에 고마와하기라도 하는 것일까. 자신의 목숨 앞에서 반 년 동안 타협하고 설득했던 정부를 지나보낸 후, 물대포와 콘테이너로 간단하게 몇 명쯤 죽여버리고 마는 정권을 목격하는 기분이란 더럽다.

구불 구불 흘러가도 강물은 한 곳으로 모인다고 했다.
그렇지만 이렇게 돼먹지 않은 나라가 되어버린 후 흐르는 모습을 바라보면, 이 사회는 아무래도 엉뚱한 곳으로 구불거리기만 하다가 바짝 말라 바닥이 드러나게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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