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26일 수요일

새 음반.

어쨌든 버젼 0.5의 베타 음반이 나왔다. 이것이 좋은 일들의 좋은 시작이 되면 좋겠다.
굳이 정관사를 붙여 최상급의 단어를 만들어 붙인 'The Happiest'라는 이름 속에는, 오래된 한 뮤지션의 반어법적인 역설이 있다고 나는 짐작해본다. '가장 행복한' 사람의 내면에는 지긋지긋할 정도의 고독과 외로움이 녹아있다. 누구라고 해도 그런 것은 그저 겨우 짐작해보기나 할 뿐, 본인의 것으로 여길 수는 없는 것이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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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 25일 화요일

매스미디어.

지난 번 케이블 방송사의 음악 시상식 캡쳐화면을 주워오게 되었다.
다시 보니 그 날의 정신없었던 분위기가 기억난다. 폭탄테러 직후의 시장터 같았다.
다시 하고 싶지 않았다.

거대자본의 기업에서 물량으로 쏟아부은 것에 비하여, 그런 기획과 공연의 좋은점은 어디에 있을까. 그렇게 많은 사람의 시간과 노동력을 빌어와서 겨우 좋은 그림을 만드는데에 열중해버릴 뿐, 음악에는 관심이 없는 기획이라고 생각했다. 거창한 철학이나 비젼은 기대하기도 어렵거니와 음악적이지도 않은 음악 방송사의 쇼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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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 21일 금요일

바람부는 날의 음악.


사진은 최근 경매사이트에 올라와있던 카세트테이프의 표지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난 고양이가 창가에 앉아서 하염없이 하늘을 보고 있길래 무엇을 하는가 했더니, 바람에 이리 저리 날리고 있는 나뭇잎들이 보였다. 고층의 아파트 유리창에 와서 부딪히고는 다시 날려가버리는 나뭇잎들.

낙엽 落葉 이라고 해버리면 ‘떨어지는 잎사귀’일텐데, 이것은 쏘아올려지듯 속절없이 빙글 빙글 돌며 날려지고 있는 중이어서 나뭇잎이라고만 해야하는가, 따위의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

고양이와 나란히 앉아 미칠듯이 쏘아올려지고 있는 나뭇잎들을 구경하다가, Brian Melvin의 음반을 틀어두었었다. 그날 이후 두 주일 가까이 계속 그 음반을 듣게 되고 있다.
드러머 브라이언 멜빈의 음반이라고는 하지만 Jaco Pastorius, Jon Davis가 함께 연주한 트리오 앨범이어서 오히려 자코라는 연주자의 이름으로 더 알려져있는지도 모른다.

십여년 전 피아노를 치는 친구가 어느날 이 음반을 알려줬을 때에야 겨우 듣게 되었던 나는 여기에 담겨있는 자코의 연주를 듣고 놀랐었다. 기뻐했었다.
이 앨범은 자코가 녹음한 음반들중 제일 명료한 음질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좋은 소리가 담겨있는 음반이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스탠다드 재즈로 채워져있어서 언제나 아끼는 앨범이 되었다.
게다가 자코가 이 앨범에서 연주하고 있는 것은 플렛이 있는 베이스이다. 그의 디스코그래피를 모두 뒤져도 찾기 어려운 플렛티드 베이스의 음색인데, 처음에는 아무 신경도 쓰지 않고 듣고 있었다. 자연스럽고, 착하고, 행복하게 연주하고 있는 느낌이다. 현실로 말하자면 심하게 망가져있었던 심신이었을 무렵의 그였지만, 브라이언 멜빈의 설명처럼 이 음반을 녹음할 무렵 만큼은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마치 ‘드럼과 피아노를 위해서 연주하러 왔어’, 라고 말하고 있는 것 처럼 따뜻하고 충실하게 연주하고 있는 음반이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녹음했던 음반이었고 사망했던 이듬해에 발표되었었다.

그가 죽은지 20년도 더 지나버렸다. 그가 남겨준 음악을 들으며 바람이 몹시도 부는 아침에 나는 겨우 기운을 얻는다. 부쩍 추워진 요즘에, 이 음반은 온기를 느끼게 해주고 웃을 수 있게도 해줬다. 거위털 외투보다도 고마운 음악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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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레코드가게에서 지구레코드에서 나왔던 이 음반의 한국산 라이센스반을 보았었다. 그 레코드는 어찌 어찌 흘러서 그곳까지 가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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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 18일 화요일

클럽에서.


새벽, 주룩 주룩 비가 내려주고 있다.
아침이 되어도 눈이 부시지 않을 것 같아 좋기만 하다.
오늘 저녁엔 오랜만에 클럽에서 공연을 할 예정이다.
게다가 그 장소는 오랜만에 가보는 곳이다. 이제는 낡고 우중충해져있을 그곳의 입구에 다다르면 뭔가 반가운 것도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

공연할 곡들을 대충 연습해보다가 오래 전에 드나들었던 곳들이 생각났다. 비좁은 무대여서 서있을 자리가 없었던 클럽들이 그때엔 더러 있었다. 먼저 드러머가 손님들 사이를 뚫고 들어가 어렵게 심벌들 사이로 몸을 통과시켜 드럼 세트에 앉으면 그제서야 겨우 겨우 콤보 앰프 위에 걸터앉아 엉덩이에 진동을 잔뜩 느끼며 연주해야 했던 눅눅하고 좁아터진 옛날의 클럽들, 카페들을 자주 그리워했다. 앞에 마주보고 앉은 관객과 눈이 마주쳐지는 것이 자주 민망해서 몇 시간 동안 눈을 감고 연주하기도 했었는데... 지금도 어딘가에는 그런 곳들이 남아야 있겠지만, 아직도 그런 곳에서 그렇게 음악을 즐기려하는 청중들은 존재할 것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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