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 1일 목요일

대답을 못했다.

해가 지났다.

행복이 어쩌구 하면서 음반을 만들고 인터뷰를 하며 말을 했었다..
공연중에는 마이크에 대고 객쩍은 이야기를 하기도 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야 좋았다고, 후회했었다.
마지막 날의 공연이 끝나고 나서 어떤 이들이 방송사의 카메라를 들이밀며 '지금 행복한가'라고 질문을 해왔다.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할'의 모습처럼, 내 코 앞에 시커먼 눈깔을 희번득거리며 대답을 종용하는 카메라 렌즈를 들여다 보는데, 마치 술이 깨듯, 외면하고 있던 것들이 떠올랐다.

그래서 나는 차마 행복하다느니 어쩌느니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꿈, 희망, 행복, 아름다움, 희열의 단어들을 늘어놓을 수 있으려면 지독하게 무던해지던가 철저하게 이기적이 되던가 해야 하는 것인줄 알았었다.

그런 것일지도, 혹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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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25일 목요일

노래.


지난 한 주 동안은 녹음과 공연들 덕분에 어지럽게 밀려있던 레슨들을 보충하느라 바빴다.
몇 시간 전에 잠을 자다가 내 잠꼬대 소리에 내가 깨어버리고 말았다. 일주일 내내 약장수처럼 레슨을 하다가 보니, 꿈속에서도 누군가를 가르치고 있었다. '옥타브를 동시에 눌러봐'라고 내가 소리내어 말하고는, 깜짝 놀라서 잠을 깨어버리고 말았다. 어휴.

언제나 불면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 대부분이었다. 요즘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어서 비교적 잘 자는 편이 되었다. 여전히 밀린 잠을 몰아서 자버리는 날도 있기는 하지만 예전의 것과 비교하면 행복한 수면생활을 하고 있다. 다만, 자꾸 잠결에 노래가 들려서 깊이 잠들지 못한다. 악기소리와 겨우 싸워 이겨서 잠에 빠지고 나면 꿈결인지 뭔지 모르겠으나 자주 노래가 들린다. 무슨 노래들인지도 모르겠고... 노래를 부르다가 놀라서 깨어나거나, 음악 이야기의 통화내용을 큰 소리로 말해버리다가 벌떡 일어나 잠꼬대를 멈추는 일이 점점 잦다. 
함께 살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고역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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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24일 수요일

무대 위에 재떨이를.


지치고 배고프고 추웠던 새벽의 파티.
맥주와 소세지로 배를 채우고 몇 시간을 더 연주하고 있었을즈음 어느새 서너 대의 담배를 입에 물고 있었다. 나중에서야 노래하던 분들이 불편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슬쩍 지나갔던 화면이었지만 기분좋아했던 장면들을 기록해줘서 변감독님께 고마왔다. 방송에 담배 물고 연주하는 것이 보이면 안된다는 나라가 되었다니 그것이 웃겼다.

처음 시작할 때 부터 연주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무대 위 앰프에 놓여있는 재떨이에 담배를 놓아두고 피우며 연주했었다. 한참 후에 서교동에 갓 새로 생겼던 클럽에 갔을 때에,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담배를 물고 버드와이저 깡통을 한 손에 든채로 무대에 올랐었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나에 대한 관객의 손가락질이었다는 것을 튜닝을 다 마치고 돌아서보았을 때에서야 알았었다. 오히려 문화적 충격을 받은 것은 나였었는데, 씰룩거리며 나를 비난하던 사람들의 얼굴은 더 황당하다는 표정이었다.

지금은 그 모든게 우습고 웃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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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15일 월요일

다 커버린 고양이.


지금도 내 곁의 책꽂이 위에서 나를 물끄러미 보다가, 졸다가, 장난하다가...를 반복하고 있는 어린 고양이.
이 집안에서야 어린 고양이일뿐, 징그럽게도 다 커버렸다.
몸집만 커져버린채로 아직도 장난꾸러기 어린 고양이.
몽고반점처럼 어릴적에만 이마 위에 남아있게 된다는 검은 줄은 이제 다 없어졌다.
저 쬐그만 녀석이, 집안의 다른 두 어른 고양이들 사이에서 양쪽의 비위를 맞추기도 하고 함께 놀아주기도 한다.
그뿐 아니라 집안의 두 인간들 사이를 오가면서도 열심히 맡은바 소임을 다하고 있으니, 알고보면 가장 바쁜 고양이일지도 모르겠다. 엄청난 식욕과 식사량의 이유는 역시 그렇게 일을 많이 하고 있어서일지도 모르겠다. 더 많이 먹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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