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8월 24일 일요일

아이챗.

지난 주엔 내가 모처럼 잠들었을 때에 전화질을 해서 깨우더니, 오늘은 젖은 솜처럼 지쳐 소파에 파묻혀 자고 싶을 순간에 마침 잘도 알고 불러대었다.
강을 건너 한참 달려야 하는 곳에 살고 있는 옛 친구와 화면을 보며 이야기 하기. 가끔씩이라면 반갑다. 배경으로 보이는 그의 일터는 아무 것도 변하는 것이 없어보인다. 그의 공간에서 얼마나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지금의 내가 모르는 것 처럼, 나의 일상에 대하여 그가 알 수 있는 것도 이제는 참 많이 없다.
혼자 틀어박혀 좋은 음반을 듣는 것으로는 해결이 안되는 일이 있을 때에, 대뜸 불러내어 몇 마디 나눌 수 있다는 것으로도 위안이 되는 나이가 되기는 싫다. 아직은 싫다.

옛 동무, 다음엔 뭔가 즐거운 일을 가지고 불러내주면 좋겠다. 그렇게 하면 잠들기 직전에 깨웠다고 나무라지는 않을 수 있다.



.

2008년 8월 23일 토요일

습기 가득한 나무


살고 있는 곳은 가까이에 한강이 흐르는데다가 집 옆에는 강으로 이어지는 큰 냇물이 있다. 여름에 이곳은 습기가 가득하다.

아침, 밤으로 바람이 시원하여 창문을 활짝 열어두고 여름을 지냈다. 에어콘을 자주 켜지 않은 탓에 집안 가득 음습할 때가 많았다. 그 덕분에 방 안에 세워둔 악기들도 습기만 흠뻑 먹었다. 최근에는 밴드 연습날을 제외하고는 보름 가까이 플렛리스로 개조한 프레시젼만 들고 다녔었는데 아무리해도 묘하게 틀어진 네크의 상태를 좋게 하기 어려웠다. 습도를 조절하는 것만으로 해결하면 좋을 일이지만 내일 저녁에는 작은 연주가 있다. 고민하다가 처음으로 트러스로드를 돌려 바로잡았다. 분리하여 조금 돌리고 다시 조립하기를 세 번 반복했다. 좋은 상태가 되어줬다.

아이팟


무려 5년여 동안 사용하고 있는 구형 아이팟. 
아내의 것도 내 것과 같은 모델이었다. 연애하는 사람들은 별의별 실없는 것을 가지고도 키득거리고 반가와한다. 그 정도 까지는 아니었지만 아내와 나도 처음 만났을 때에 어,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네... 와 같은 말을 주고 받았었다. 
나는 수 년 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저것을 지닌채 돌아다녔다. 낯선 곳에서 이어폰을 쥔 채 음악을 고르고 있었거나,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와 책상 위에 저것을 놓으며 큰 숨을 쉬었다거나 하는 행적이 묻어있다. 그래서 두 개의 아이팟은 두 사람이 만나기 전의 생활에 대한 냄새가 배어있다고 생각했다. 때도 묻고 흠집도 많이 났다.

아내는 가볍고 얇은 아이팟 터치만 들고 다니고 있어서 스피커 옆에는 항상 저렇게 두 개가 놓여지게 되었다. 마치 쟤들도 어쩌다가 결국 만나서 같이 살게 된 것 처럼.


.

고양이의 情


사람들은 함께 사는 개와 야옹이들에게서 작은 위로를 받을 때가 있다. 그 반대의 경우는 과연 있는지 모르겠다. 개와 고양이들은 함께 사는 사람들로부터 성가신 경우를 당할 때가 더 많을지도 모른다.

샴 고양이 순이는 새벽 내내 곁에서 떠나지 않으며 졸거나 한다. 언제나 그렇게 해왔다. 푹신하고 편한 곳에 가서 잠을 자도 좋을텐데 자주 가까이에 붙어서 몸을 말고 잠들거나 우두커니 자리를 지키거나 하고 있다.

이 고양이와 내가 이쪽에서 밤을 새우고 있는 동안 저쪽 어느 방에서는 아내와 십여년 넘게 함께 살아온 언니 고양이가 아내의 곁에 바짝 달라붙어 잠을 잔다. 하루에도 몇 번씩 자고 일어나는 주제에 잠을 깰 때마다 얼굴을 부비고 인사를 한다. 내 생각에 인간의 인사성이라는 것은 고양이와 비교하자면 허례에 지나지 않는다.

언제나 반복되는, 부정확한 시간에 막내 고양이를 선두로 하여 위험한 속도를 내며 집안을 달리는 때만 빼면 평온하기 이를데 없는 새벽이다. 악기들 사이를 통과하는 시합만 덜 해준다면 좋겠다. 가슴이 철렁할 때가 많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