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3월 23일 수요일

공연 후에.


잠을 못잤다.
전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불빛이 스며들지 않는 반지하 방인데, 그렇게 어두운데도 잠을 잘 수 없었다.

아무리 좋지 않은 상태의 앰프였다고 해도 어제의 공연처럼 연주하기 어려웠던 적은 없었다. 내가 기술적으로 너무 몰라서 그랬던 것이었을까. 기분이 몹시 가라앉았다.
매일 매일 사람들 앞에서 연주해왔다. 하지만 생활을 위해서 '소리를 냈던' 것이 대부분이었다. 공연의 질이 떨어지면 심한 자책감이 든다. 베이스만 훌륭하다면 후진 밴드란 없는 것이다.

수 년 전에 어떤 가수의 라이브 음반에 그날 아주 형편없었던 내 연주가 영구히 박제되어 판매되어버린 적이 있었다. 불에 달군 낙인이 몸에 찍힌 기분이었다. 어제 공연을 마치고 나서, 나는 비슷한 기분으로 마음이 괴로왔다.

한참만에,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이 일을 그만두는 것이 좋을까 고민도 하였다.

그러다 보니 어제 오후에 먹었던 김치볶음밥 이후 아무 것도 먹은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우스웠다. 머리속에 가득했던 고민이나 잡념도 배가 고픈게 느껴지면 잠시 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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