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 10일 목요일

잉크

 


만년필이 여러 개가 되었지만 쓰는 사람은 나 혼자이니까 잉크 소모가 많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일년 반 동안 62.5ml 펠리칸 잉크와 57ml 파커 잉크, 그리고 30ml 디플로마트 잉크를 다 비웠다. 아직 쓸 잉크는 많이 남아있지만 이렇게 빠르게 빈 잉크병들이 생길 줄은 몰랐다.


지난 달부터 펜에 잉크를 새로 담을 때마다 기록을 하기 시작했다. 7월에만 열 한 번 잉크를 충전했고 이 달 들어서는 이미 일곱 번이나 만년필에 잉크를 새로 채웠다. 뭘 이렇게 많이 쓰고 있는지 모르겠다. 여전히 글씨는 비뚤고 글은 조잡한데. 남아있는 잉크로 내년까지 충분히 쓰겠지만 다음 해에 잉크가 몇 병 정도 남을지는 계산하기 어렵게 됐다.


펜으로 매일 글을 쓰는 것에 열중하는 사이에 내 홈페이지에 사진과 글을 올리는 양은 줄었다. 키보드를 두드려 글을 쓰는 것에 흥미를 잃은 것은 아닌데, 남이 읽어도 좋은 내용으로 글을 다듬는 것에 공들이지 않게 되어버린 것 같다. 몇 해 전만 해도 펜을 쥐고 매일 뭔가를 쓰고 있는 생활을 하게 될 줄 몰랐다.
다 쓰고 난 빈 잉크병들은 버리지 못하고 책상 위에 놓아뒀다. 비어버린 잉크병을 특별히 쓸 데가 없을텐데 그냥 먼지가 앉도록 놔두고 있다.



2023년 8월 4일 금요일

식구 돌보기


고양이 이지는 회복하는 데 속도가 붙지는 않고 있지만 잘 낫고 있다. 병원 진료를 다녀와 힘들었는지 시원한 바닥에 몸을 대고 아내의 팔을 베고 누워있었다. 매일 귀를 찔러 몇 번씩 혈당을 재고 하루에 두번은 인슐린 주사를 맞고 있으면서도 짜증이나 불평을 하지 않으니 미안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햇볕이 가득 들어오는 낮에 아내는 고양이 이지를 품에 안고 발톱을 깎아주고 있었다. 나는 책상 앞에 있다가 또깍 또깍 발톱 깎아주는 소리를 듣느라 잠시 음악을 끄고 문 너머로 바라보았다.



2023년 7월 29일 토요일

촬영


낮에 어떤 촬영을 위해 너댓곡을 라이브로 연주했다. 만두를 꺼내기 위해 냄비 뚜껑을 막 열었을 때와 같은 온도와 습도가 용산 근처에 자욱했다. 촬영장소엔 에어컨 덕분에 시원했지만 연주하는 동안 땀이 흐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 쇼의 설정에 따라 작은 음량으로 연주해야 했다. 그것 때문에 우리가 불편해 할까봐 제작팀 쪽에선 마음을 써주셨다. 음색과 톤 때문에 감쇄기를 써야 했던 민열이의 입장과는 달라서, 나는 작은 앰프와 소박한 드럼세트에서 나오는 사운드가 편안하게 느껴졌다. 예상했던 시간보다 촬영을 일찍 마쳤다.

 

2023년 7월 21일 금요일

모임


 삼십년 전 친구들과 낮에 만났다. 먼 곳에 사는 인호형이 제일 일찍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나는 5월에 미국에서 살다가 돌아온 인호형과 미리 만났었다. 다른 친구들은 그를 실제로 삼십년만에 만나는 자리였다. 서로 반가와하고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밤과 낮이 바뀐 나는 낮 시간에 낯선 장소에서 사람들과 함께 앉아 있으니 점점 더 몽롱해졌다. 에어컨 가까이에 앉아서 반쯤은 졸고 있는 상태로 대화를 하다가 창밖을 보거나 빈 벽을 올려다 보거나 했다. 시간은 한쪽으로 진행한다던데, 살다보면 시간은 구불구불 지나가는 것 같을 때가 있다. 수 없이 많은 휘어있는 시간 중 하루를 보낸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