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17일 금요일

금요일 밤

 

양구에서 두 시간 분량 공연을 했다.

집에서 두 시간, 내가 기억하는 길은 어디에도 없고 긴 터널과 잘 닦인 도로를 달려 공연장소에 도착했다. 삼십년 전에 군복을 입고 가보았던 이후 처음이니까 변하고 바뀐 것은 당연할 일이었다.

관객들이 즐거워하는 것을 보고 있으니 연주가 끝날 때까지 피로한 줄 몰랐다. 체육관의 잔향도 적당한 추위와 알맞은 열기도 무대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조금 가벼운 악기를 가져간 이유는 오늘은 도중에 의자에 앉지 말아보자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선 채로 연주를 잘 마쳤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시 허리에 통증이 느껴졌다. 전보다 심하진 않으니 괜찮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쉽지 않다.

시력이 더 나빠졌는지 이젠 밤중에 운전하는 것이 어렵다. 안경을 새로 살 때가 되었다. 불빛이 없는 길을 지날 땐 갑자기 작은 동물이라도 튀어나오면 잘 피하기 위해 속력을 줄이며 달렸다. 오랜만에 아이팟에 3.5mm 잭을 꽂고 자동차 오디오에 연결하여 음악을 들으며 운전했다. 앰프와 모니터 스피커 앞에서 큰 음량을 들으며 조금 전에 공연을 마쳤는데 귀를 쉬게 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위험하지 않다면 아예 이어폰을 귀에 꽂았을지도 모른다.

좋은 음질로 좋은 음악을 듣는 것이 십대 시절 이후 계속 열중하는 몇 안되는 취미인 것이 나는 좋다. 오래된 아이팟은 운전하며 조작하기 곤란했다. Shuffle로 음악을 틀어놓고 곡이 시작될 때마다 반가와했다. 내 의도였다면 고르지 않았을 음악들이 튀어나오는 것이 재미있었다. 집에 돌아왔을 때 지하주차장에 빈 자리가 아주 많았다. 금요일 밤이란 이렇구나, 했다.


2023년 2월 11일 토요일

청주에서 공연

 

토요일이었지만 도로 정체가 심하지 않아서 예상보다 일찍 공연장에 도착했다.

간단하게 사운드 체크를 하고 연주할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리허설을 하면서 비어있는 객석을 자주 보지는 않는데, 오늘 그 장소에서는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두리번거리며 공연장 내부를 보려고 했다.

앞서 진주에서 공연했던 장소와 비교되는 것이 많은 곳이었다. 건설사가 소유한 지역 민영방송사에서 겨우 십년 전에 지은 건물인데 두 주 전에 가보았던 삼십오년이 된 극장보다, 후졌다. 무슨 철학 같은 것은 보이지 않는 설계, 그리고 아무도 세심하게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은 운영 태도가 보였다. 뭘 안다고 함부로 말하느냐고 화를 낼지 모르지만, 그렇게 느꼈던 부분들이 너무 많았다. 돌아와서 관련방송사에 대한 것들을 찾아 읽어보니 그 건물로부터 받았던 인상이 과연 그럴만 하다고 여기게 되었다. 뭐, 훌륭한 장소가 아니면 연주하기 싫다거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여기 저기 돌아다니다 보면 보게 되고 느끼게 되는 것들이 있다는 것 정도로 해두자.

공연은 잘 마쳤다. 관객들이 아주 좋아해줘서 예정에 없었던 곡을 더 연주하기도 했다. 장소야 어쨌든 사람들이 좋아하면 그만이긴 하지만, 그 사람들의 기호가 까다로와지면 더 좋다고 생각한다. 음악의 수준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은 청중들이고 자본과 권력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건 사람들 밖에 없는 거니까.

돌아올 땐 Fourplay의 삼십년 전 앨범 두 장을 죽 들으면서 운전했다. 요즘은 가지고 있던 음원들을 애플뮤직 보관함에서 지우고 시디에서 새로 무손실 음원들로 리핑하거나 다운로드 하여 다시 듣고 있는 중이다.

2023년 2월 3일 금요일

커피

 

지하철을 타고 혜화동에 가서 몇 년 만에 친구와 만났다.

집에서 매일 아침에 커피를 내려 마시고 있지만 외출하여 커피집에 앉아 잔에 담긴 커피를 맛보는 건 오랜만에 해보는 일이었다. 마침 새로 다운로드 하여 지하철에서 듣고 있던 음악은 1994년에 나온 데이빗 베누아와 러스 프리맨의 앨범이었다. 구십년대 후반 어느 겨울날에 나는 지금 앉아있는 커피집 길건너에 있던 레코드점에서 GRP 컴필레이션 시디를 한 장 샀었는데, 그 안에 있던 한 곡이 바로 The Benoit / Freeman Project 앨범 수록곡 중 하나였다. 그 당시엔 이 앨범을 구하지 못하여 궁금해했었다.

삼십여년이 지난 뒤 겨울 오후에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받으며 앉아서 그때 사지 못했던 음반을 이제서야 들어보고 있었다. 커피는 식기 전에 마셨다. 그리고 일몰 시간이 되기 전에 집에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2023년 1월 30일 월요일

진주에서 공연

 

1월 29일에 진주 경남문화예술회관에서 공연을 했다.

리허설을 시작하기 전에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지난 몇 주 동안 나는 다시 이펙터들을 새로 배열하고 페달보드 위에 연결하여 한참을 연습했다. 전에는 해보지 않았던 순서로 꾸며 보았다. 이것들을 통과한 악기 소리가 항상 좋을 수 있도록 오래 준비를 했던 것이다.

그런데 악기를 조율하고 소리를 내보는 순간 제대로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컴프레서 페달의 소리가 영 이상했다. 재빨리 노브를 조정하면 금세 해결할 수 있는 일이기는 했지만, 그렇게 하려면 납득할 이유가 필요했다. 내가 집에서 시간을 들여 맞춰두었던 것이 틀렸었던 것인지, 케이블 어딘가에 이상이 생긴 것인지, 극장에 놓인 앰프와 모니터 스피커 때문인지를 판단할 수 있어야 새로 조정하는 값을 신뢰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은 내가 나를 신뢰할 수 있느냐의 문제였을 수도 있겠다.

결국은 컴프레서의 아웃/인 노브를 대충 다시 만져서 소리는 잘 나오게 해두고 시작할 수 있었다. 나머지 페달들도 연습했던 그대로 좋은 소리를 내줬다. 어찌어찌 공연은 마쳤지만 왜 그런 문제가 생겼는지는 알아내지 못했다. 좀 더 공부해서 내가 원하는 소리를 항상 얻을 수 있도록 하고 싶어졌다.

공연을 삼십분 앞두고 나는 무대에서 내려가 객석 사이의 통로를 따라 맨 위에 있는 콘트롤룸에 찾아갔다. 엔지니어를 찾아 리허설을 할 때에 내가 듣고 있던 음향 상황을 설명하고 두세 가지를 다시 주문했다. 그가 빠르게 알아듣고 내가 원하는대로 해주었던 덕분에 편안한 상태에서 두 시간 공연을 마칠 수 있었다. 이런 일도 예전엔 귀찮아서 하지 않았었다. 지금은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상관 없으니, 가능한 최적의 상태에서 가장 좋은 소리를 내며 연주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