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17일 금요일

형님 한 분.


2004년에 처음 직접 뵈었던 드러머 강윤기 형님.
대기실에서 찍었던 사진이 두 장이나 남아있었다.

당시엔 일회성 공연과 행사로 만나서 함께 연주할 수 있었는데, 합주 연습 몇 번과 무대 위에서의 연주 서너번을 겪은 후 나는 집에 남 몰래 혼자 아주 많이 힘들었었다.
내 타임키핑은 전부 앞으로 먼저 나가고 있었고, 느린 곡에서도 비트를 맞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 선명하게 들렸다. 이유는 한 가지, 드러머가 너무 정확했기 때문에. 다르게 설명하자면, 그 이전 까지는 윤기 형님과 같은 드럼 연주자를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모르고 지나갔던 것이었다.
그 뒤로 한동안 나는 메트로놈은 쓰지 않고 가능하면 미디파일로 드럼 리듬을 만들어 연습했다. 정확한 타임키핑은 드러머로서 당연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런 연주자는 사실 드물다. 그리고 지금은 꼭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어쨌든 당시에는 나에게 윤기 형님과의 연주가 아주 큰 자극이 되었었다.

두 분 모두 나를 붙잡아 앉혀두고 레슨을 해주셨다거나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음악적인 지시를 해주신 적은 없지만, 기타 연주자 김광석 형님과 함께 이 분을 나는 마음 속의 선생님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몇 년의 세월이 흘러서, 이렇게 되어있으리라고 그때에는 생각하지 못했다.
재미없게 말하자면 확률의 문제인 것이고 사실은 내 인간관계의 반경이 좁은 것일 뿐일지도 모르겠지만, 사람은 자신에게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는 인연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는 법인가. 나는 뭔가 인연이라는 것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


지난 주에 2년여 만에 스페이스 공감의 공연과 녹화를 하고 왔는데, 첫 날 방송녹화를 했다. 변명부터 하자면 그날 나는 잠을 충분히 못 자두었던 탓에 컨디션이 별로였다. 공연 직전 대기실에서 윤기형님이 평소와 다르게 한 마디 던지셨는데...
"너 아까 리허설 때에 보니까 많이 늦더라. 소리가 잘 안들리는거냐, 뭐냐. 모니터 스피커 확인해봐라..."

모니터를 다시 확인해보았지만, 내심 가슴이 덜컥했다. 기계 탓일리가 있나. 그날 뭔가 손가락도 둔하고 정신이 맑지 않았던 것이었는데. 게다가 연습 부족. 몇 주 간 자전거 타느라 악기를 자주 만지지 않았다. 금세 티가 나기 마련 아니던가.
공연이 시작되고 나서도 계속 내 박자가 뒤로 밀리거나 틀리고 있지는 않는지 몹시 신경이 쓰였다. 연주 도중에 스탭 분에게 손짓을 하여 드럼 소리를 조금 더 올려달라고까지 했었는데... 결과를 말하자면 그 날 나는 모든 곡에서 실수하고 틀려버리고 말았다. 진땀이 나고 다음 곡이 걱정되고 정말 수 백 번은 연주했던 것 같은 노래들이 갑자기 기억이 나지 않기도 했다.

이튿날이었던 (녹화하지 않았던) 공연은 멀쩡했다.
전날의 상태는 반복되지 않았지만 뭐 이미 엎지른 물.
그런 일은 이제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

여름이 가고 있다.


자전거 페달에 끈을 달았다.
그날 반나절 달려본 것을 마지막으로, 그후로는 계속 비가 왔다.


지금 내리는 비가 다 그치고 나면 이제 곧 바람이 불고 선선해질 것 같은데.
땀흘리고 햇볕에 그을리며 달려보던 올해의 여름에게도 인사를 해야할 때인건가.



.

2012년 8월 16일 목요일

고양이의 어린시절


집에서 제일 작은 고양이 (...라고 해도 다 큰지 오래된 고양이이지만) 이지가 이동장 안에 들어가 있었다.
상자가 눈에 보이면 우선 들어가보는 녀석들이니까.

이 이동장은 벌써 만 여덟살이 넘은 고양이 순이의 것이다. 이 사진 때문에 생각이 나서 어린시절 순이가 이 안에 들어가 있는 장면을 뒤져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아마 이 블로그의 8~9년 전 글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함께 집안에서 부딪히며 살고, 함께 나이를 먹고 있다가 가끔 서로가 몇 살이 되었나 생각해보면 놀란다. 집안의 큰 언니 고양이는 아내 계산에 따르면 열 여섯 살, 그 기준으로 따지면 순이는 열 살.


어린 시절 순이 고양이의 귀엽게 나온 사진을 찾지 못한 대신에 음흉하고 사악해보이는 어린이 순이의 사진을 찾아 볼 수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고양이들의 어린시절에 볼 수 있는 다양한 표정에는 그 고양이의 성격이 잘 담겨있었다.



.

2012년 8월 13일 월요일

미사리


낮에는 햇빛이 쨍쨍하여 일을 마치는대로 자전거를 타야지, 라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웬걸 집에 돌아오던 시간에 동네엔 비가 퍼붓고 습도는 백 퍼센트.
눅눅해져있는 자전거와 악기들을 번갈아 보면서, 그냥 손질하고 닦는 짓이라도 할까 망설이다가 그만 잠시 잠들었다.
밤 열 한시에 송 형님 전화. 하늘에 별이 보인다는 말씀을 듣고 눈 비비며 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입고 나왔다. 한참 달리고 있는데, 마침 그 시간이 전기절약을 위해 가로등을 꺼두는 시간이었는지... 몇 개의 구역으로 나누어 일제히 불빛이 꺼지고 있었다. 마치 이 시간에 왜 기어나오느냐는 훈계를 듣는 기분이었다.
평소 들러서 차 한 잔 마시던 가게는 오늘따라 일찍 문을 닫기로 했어서 그곳에서도 앉자마자 불이 모두 꺼졌다. 주인의 배려로 따뜻한 커피를 마실 수는 있었다.

뭐 먹어둔 것이 없어서 배가 고팠다. 강변의 차도쪽으로 나아가 음식점을 찾아보기로 했다. 마침 불켜둔 냉면집을 발견, 신나하며 들어가보았더니 냉면은 낮 시간에만 먹을 수 있다고. 아, 그런게 어디있어. 심야에 각종 국수류를 먹을 권리를 보장하라...라고 말할 처지는 아니었어서 그냥 국밥 한 그릇. 고기류는 잘 먹지 않는 탓에 빈 국밥 그릇에는 인심좋게 듬뿍 넣어주신 고기점들이 그득하게 남았다.


밥을 먹고 있었던 식당은 미사리의 라이브 클럽 부근이었다. 창문 너머로 보이던 클럽은 십오년 전 나도 일했던 그 곳. 금요일 밤에 이 길의 대부분 업소들은 모두 불이 꺼져있고, 을씨년스럽게 새어나오는 그 동네에서 노래 잘하는 가수의 음성이 들렸다.
한참 성업중이었던 당시의 미사리 시절, 나는 이 길에서 세 군데의 클럽을 초저녁에 '돌고', 일산까지 악바리처럼 달려 두 군데에서 더 일한 다음 지금 국밥을 먹고 있을 이 시간 즈음에는 화정의 한 무대에서 마지막 연주를 마친 다음 늘 졸음 운전을 하며 집에 왔었다.
딱, 그 기억만 남아있다.
좋은 사람들, 함께 일을 하다가 교통사고로 먼저 세상을 떠나버리신 분의 얼굴 정도는 기억하고 있지만, 숱한 욕망과 과잉된 자존감의 아귀다툼들은 다 잊고 말았다.

텅 빈 미사리의 넓은 길을 달려 팔당대교를 향해 가고 있을 즈음에, 다니던 라이브 클럽에서는 익숙하지만 듣고 싶지 않은 노래의 반주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