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 17일 금요일

학기를 마쳤다.

지난 주에 학기의 마지막 수업을 마쳤다.
졸업하는 학생들과 사진을 찍기도 했고 첫 학년을 마친 이들과 손뼉을 마주치며 인사하기도 했다.
대부분이 귀가하고 다시 고요하게 비어버린 복도와 레슨실 마다, 무슨 영혼들처럼 악기 소리의 흔적들이 떠다니는 것 같았다.
나는 그들에게 많은 말을 하느라 바빠서, 그들의 말을 들어야할 시간을 놓친 것이 아까왔다.
머지않아 공연장에서, 대기실에서, 무대 위에서 만날 수 있을 사람들이 그들 중에도 나오겠지.

케이블을 감고 악기를 가방에 챙기면서 퀘퀘한 지하실 냄새를 맡았다. 어딘가 썩고 있는 것 같은 우중충한 습기의 냄새가 풍기는 클럽들, 카페들의 기운. 나는 그런 곳들을 기웃거리고 다니며 나이 많은 어른들의 연주와 생활을 구경하느라 스무 살 무렵을 보내고 있었다.

하루를 보내고 뒤돌아보면서, 내가 배우며 나아갈 수 있도록 해주셨던 그 형님들에게 고마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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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12일 일요일

나는 멍청하다.

공연 날. 제 시간에 알람 소리 듣고 일어나서 고양이들 밥도 주고... 여유 부리며 더운 물로 샤워도 하고... 
그러나 타고난 멍청함을 발휘, 고속도로 진입로에서 반대 방향으로 쾌활하게 돌진. 그놈의 하이패스 톨게이트를 피한다는 것이 그만....
다급해졌을 때는 이미 춘천 방면으로 신나게 가고 있던 중이었다. 결국 열차 시간 놓치고 전속력으로 서울역 도착, 다음 열차 표를 사고 났더니 입에서 단내가 났다.

커피를 사들고 트위터를 열어 보았더니 열차 안에서 멤버들이 방금 남긴 글들이 보였다. 침울하게 사과의 답글들을 남기고 커피 한 모금을 입에 털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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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29일 월요일

나와 고양이

아내가 그려준 그림.
마누라 분이 열심히 집안 일을 하고 있을 동안에 나와 고양이 순이는 늘 저런 자세라고 했다.
뭔가 더 묘사하고 싶어도 보이는 모습은 맨날 요런 상황이었나 보다.
작가의 고충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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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20일 토요일

세월이 빠르다.

한 해가 다 지나갔다.
정말 빠르다.
악기점에 들른 김에 악기에 새 줄을 감아줬다.
작업을 해주고 있던 락건의 한 마디. "브릿지는 교체해야겠는데요."
녹이 슬어서 나사 머리들이 대부분 삭아 부러졌다.
플렛도 많이 주저 앉았다.
악기가 원래 그런거지 뭐. 사람도 늙는데 너라고 별 수 있니. 세월이 지나도 닳은 흔적이 없으면 그게 이상한 것이지.
....라고 말해보았자 그다지 위로는 되지 않는다. 수 년 동안 부지런하게도 다녔는데, 나는 뭔가 해놓은 일이 하나도 없다.
다음 달은 바빴던 한 해의 결정판이 될 것이다. 마지막 한 바퀴를 남겨둔 경주마처럼 콧김을 뿜으며 겨울의 도로 위에서 뜀박질 하게 되겠지.
내년에는 쉬는 날들을 만들 여유가 생기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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