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6월 11일 일요일

시그널 부스터.


최근에는  ZOOM의 멀티 이펙터와, 이 사진에 보이는 Xotic의 시그널 부스터를 늘 사용하고 있다.
이번의 세 차례의 공연에서는 다른 것은 쓰지 않고 이 시그널 부스터만 사용했다. 특별히 이펙터가 필요한 소리를 요구하는 곡이 없었기도 했지만, 큰 용량의 PA시스템, 큰 규모의 공연장에서는 조금이라도 베이스 톤이 깎이는 것이 싫어서 가능한 앰프와 베이스 사이에 아무 것도 연결해두지 않기로 하고 있다.

이번 공연에서는 이놈을 아주 잘 써먹었는데, 뉘앙스의 차이라는 것 때문에 손가락으로 세게 피킹하지 않아야하면서도 단단하고 풍부한 음색이 필요했던 곡의 중간중간에 적절히 사용했다. 효과가 좋았다. 평소에는 멀티이펙터의 뒤에 두고 베이스의 신호를 보강해보려는 의도로 쓰기도 하고, 어떤 경우엔 일그러지지 않으면서 게인만 올려주는 용도로도 쓰고 있다. 꽤 마음에 들어하고 있는 중이다.


부산에서 공연을 했다.


부산에 다녀왔다.
그러나 새벽의 서울 - 버스 - 공연장 - 공연 - 버스 - 다시 다음날 새벽의 서울... 의 일정이어서, 부산문화회관을 갔다 온것인지 광화문의 세종문화회관을 다녀온것인지 모르겠다.
달고와 유나가 소주에 오돌빼이 먹던 항구의 포장마차 구경도 못했다. (TV연속극의 주인공 이름들이었다...)

공연보러 왔던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하다니, 뭐 기분 좋은 일이긴 했지만, 박수를 받으며 인사를 하던 순간, 이 정도로는 아직 안된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찬물 끼얹고 싶은 심보가 아니라, 이제 그 정도의 연주와 음악으로는 절대 성에 차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모든 일정이 일단 끝났고, 이번에도 많이 배웠다. 그리고 해내야 할 일들이 많이 생겼다.
부산공연에서의 사진은 구해지기 어렵겠지. 비디오 촬영도 했던 것 같던데.

전날 밤을 꼬박 새운 탓에 공연직전까지 거의 졸았다. 나를 포함한 몇 명의 멤버들이 전부 수면부족상태였다. 공연이 끝나고 다시 밤길을 달려 서울에 도착했을때 이미 새벽 네 시가 넘었는데, 정말 미칠 노릇인 것이... 활동 시간이 돌아와서인지 눈이 반짝거리고 목소리는 활기차게 변하고 컨디션이 최상으로 돌아와버렸다.
그 결과 지금 이 시간까지 잠들지 못하고 몸의 열을 식히는 중이라는...

그리고 졸리운데도 쉽게 잠을 자고 싶지 않은 또 하나의 이유는 요즘 반복되는 공포스러운 꿈 때문이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았는데 점점 많이 무섭다.


.

2006년 6월 9일 금요일

피아노.

오늘도 운전을 많이 했다.
오전 일찍 집을 나설 때엔 데이브 그루신, 빌 에반스, 키스 자렛, 브라이언 멜빈을 들었다.
밤 늦게 집에 돌아오는 동안에는 크리스 보티와 아르투로 산도발, 마일즈 데이비스를 들었다.
낮에 들렀던 헌책방이 내가 다니던 국민학교(초등학교 아니었다고.) 옆이었는데, 그 동네 특유의 풀냄새와 한적함 때문이었는지 언덕위에 차를 세워두고 한참을 피아노 음악에 취해있었다.

내 기억속에 가장 오래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피아노와 관련된 이미지는, 희고 예쁘장한 손에 묻은 핏방울이었다. 새로 펼친 악보에 그만 손가락을 베어서, 그 여자의 손에서 핏방울 하나가 건반 위에 뚝 하고 떨어졌었다. 나는 일곱살도 되지 않았던 꼬마였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 에로틱하게 느껴졌었다. 그후로 한참을 흰 종이, 흰 손가락, 흰 건반과 붉은 핏방울의 이미지에 홀려있었던 기억이, 오늘 났었다.
여차여차하여 그 해 여름 이후 피아노 앞에 앉아본 적은 없게 되었었지.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세상에 피아노만한 악기가 또 있을까.


.

비 오고 꽃 떨어졌다.


오늘은 어릴적의 기억들이 자주 떠올랐다.
어린애 때부터 나는 비만 오면 흥분했었다.
여름이 되면 추워하지 않으면서 비를 맞고 다닐 수 있어서 좋아했었지. 지금은 그런 짓 못한다.

비가 내리지 않았다면 약속없는 아침 시간에 외출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괜히 기분이 좋아서, 오전에 일찍 집을 나서는데 길가에 꽃잎이 수두룩하니 떨어져있었다. 얼룩 고양이 한 놈이 발에 물묻히기 싫어서 꽃잎을 밟으며 어디론가 가고 있길래, 서둘러 차를 세우고 카메라를 꺼냈다.
당연히, 내 둔한 동작으로 카메라의 스위치를 켰을 때엔 고양이는 이미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고양이라는 놈들은 하는 일 없이 분주하고 느리면서 재빠르다.

그래서 주인공 없는 배경 사진이 되고 말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