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6일 일요일

칠곡에서

처음엔 약속보다 한 시간 쯤 일찍 도착할 것 같았다. 두어 시간 달리다가 화장실에 가기 위해 휴게소에 들렀는데, 시트를 눕히고 잠깐 쉬어야겠다고 했던 것이 그만 삼십분이나 잠을 자 버렸다. 자동차 앞유리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에 깜짝 놀라 일어나서 다시 한 시간 십 분을 달렸다. 행사장소에 도착하여 안내하는 분에게 길을 묻기 위해 창을 열었더니 나쁜 냄새가 들어왔다. 낙동강 녹조 독소가 유역 주민들의 신체에서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지금 읽는다.

가는 비가 계속 내렸다. 리허설을 마치고 악기는 가방에 넣었다. 무대 위에 놓아두어야 했던 페달 위에는 비닐 우의를 덮어 놓았다. 무대에 오르기 위해 귀에 인이어를 꽂고 계단 앞에 섰을 때, 갑자기 약속되어있던 시간을 바꿨다며 맨 끝 순서에 연주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이런 게 어디있느냐, 라고 누군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런 것'이 없으면 좋겠지만, 이럴 수도 있지 뭐. 오래 다녀보니 대충 알겠다, 싶었다. 35분 연주를 마치고 집으로 출발하면서 사흘 동안 아무 문제 없이 잘 했다는 생각에 안도했다.

새 자동차를 운행한지 백일 쯤 지났다. 클러스터를 보니 그동안 9천 킬로미터 넘게 주행했다. 오늘 하루만 오백킬로미터 넘게 운전했으니까 석 달 만에 그 정도 달렸던 것이 뭐 이상한 건 아니다. 
아이폰에 다운로드 해뒀던 앨범을 듣고 그 후엔 소니워크맨에서 랜덤으로 음악을 틀어두며 집에 돌아왔다. 자정이 넘어서 도착했는데 이번에도 주차할 자리가 남아 있었다. 운이 좋았다.


 

2024년 10월 5일 토요일

올림픽공원에서


아침엔 보스 멀티페달 음색을 다시 수정하느라 시간을 보냈다. 공연을 할 때마다 몇 번 더 고치고 나면 더는 신경 쓰지 않고 쓰게 될 것 같다. 그 다음엔 새 커스텀 인이어모니터를 확인하느라 한참 동안 음악을 들었다. 목요일에 받아와서 어제 처음 써보았는데 한쪽에서 고음이 나오지 않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헤드폰, 이어폰들을 번갈아가며 음악을 듣다가 잠시 생각 없이 시간을 흘려보냈다. 테스트를 하려는 것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눈을 감고 음악을 듣고 있었다. 이럴 시간이 없지, 하고 인이어 업체 사장님과 통화하여 리피팅을 위해 다음 주에 다시 방문하기로 약속했다.

무대 위에서 입김이 보였다. 그렇게 덥더니 가을은 오자마자 떠나려는 듯 했다. 너무 짧고 너무 빠르다. 한 시간 십분 동안의 공연도 금세 지나갔다. 내일은 칠곡에 간다.




 

2024년 10월 4일 금요일

구미에서 공연

 

연휴 때문에 길이 막힐지도 모른다는 염려로 오전에 집에서 출발하여 쉬지 않고 달렸다. 덕분에 여유있게 도착하여 조금 쉴 수 있었다. 엘지이노텍 기숙사로 쓰이고 있는 오래된 아파트를 벽 삼아 간이무대가 설치되어 있었고 거대한 기중기가 양쪽에 한 대씩 길게 목을 빼고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이 기이하고 괴이하여 무슨 행위예술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공중에 띄워진 채로 연주하고 있었던 '불고기디스코'의 음악과 연주는 좋았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그들의 음악을 들으며 운전했다.

사십여분 공연을 하고 다시 집까지 쉬지 않고 달렸다. 집에 돌아왔을 때 주차할 자리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연휴 덕분에 주차장엔 빈 공간이 많이 있었다. 오늘 하루 왕복 사백 육십킬로미터. 다음 날엔 올림픽 공원 페스티벌에서 연주하고 그 다음 날엔 다시 구미 근처인 칠곡에서 공연한다. 


2024년 10월 1일 화요일

고양이와 병원에

 

고양이 이지의 정기 진료가 있는 날이었다. 석 달 만에 동물병원에 가는 것이어서 이지는 새 차를 처음 타보았다.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자동차 안에서 놀고 있는 고양이가 귀엽게 보였다. 이지는 구내염을 앓다가 치아병변이 생겨 이빨을 뽑아야 했었다. 그 때 치료를 위해 스테로이드를 써야 했고, 수 년이 지난 후 당뇨를 겪었다. 일년 하고 넉 달, 아내는 외출 한 번 자유롭게 하지 못하며 이지를 돌보았다.

 이제 이지는 당뇨병을 이겨냈다. 당화단백 검사 결과도 좋았다. 여전히 스스로 먹지 못하여 곱게 갈은 깡통사료를 떠먹여줘야 하고 수액주사를 놓아주기도 해야 하지만 나이 든 고양이가 더 아프지는 않게 됐다.

선선한 바람이 불고 밤에는 추워졌다. 가을이 너무 짧다. 아내가 이지의 발톱을 깎아주는 동안 깜이는 곁에서 나지막히 그르릉 소리를 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