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27일 금요일

일본에서 연주

 

호텔 안내문에 건물전기장치 문제로 새벽 세시 경에 잠깐 정전될 수 있다고 적혀있었다. 에어컨을 켜둔채로 잠들었다가 툭 소리와 함께 전기가 나갔을 때 잠을 깨어버렸다. 그 뒤로 오전까지 뒤척이기만 했을 뿐 잠을 잘 수 없었다. 나는 다음날 아침에 제 때에 비행기를 타고 김포공항으로 돌아가 안양 공연장에 도착해야 하는 일에 온 신경이 쓰여서 여전히 긴장과 각성상태였다.

결국 정오가 지났을 즈음 호텔을 빠져나와 동네를 돌아다니기로 했다. 산책을 한다거나 하는 한가로운 목적은 아니었다. 아내가 나카노역 앞에 있는 대형상점에 가서 고양이들에게 줄 간식을 사오라고 했었다. 그런데 내 상태가 지금 어딜 다녀올 정도로 멀쩡하지 않았다. 호텔 부근에도 상점이 있을테니 고양이 간식 정도는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한참을 걸으며 기웃거렸다.

코엔지역 북쪽을 한 시간이나 돌다가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왔을 때, 거기에 있는 수퍼마켓에서 고양이 간식들을 발견했다. 어째서 가장 가까운 곳부터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는지. 그랬다면 체력을 조금이라도 아꼈을 것이다. 그러나 그대신에 낯선 거리를 한 바퀴 돌아볼 시간을 가지진 못했겠지, 라며 마음 속으로 내 행동을 두둔했다.
고양이들을 위한 간식을 사면서 수퍼마켓에서 팔고 있는 샐러드 등을 사서 호텔방에서 먹고, 곧장 오늘 연주할 장소로 갔다. 약속시간 십오분 전에 도착했다. 잠시 후 한 사람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에게 악기를 빌려주기로 한 아카이 씨에게 답례를 하고, 베이스를 받아 내가 가져온 스트랩을 걸었다. 오래된 일제 펜더 재즈베이스였다. 주인에게 양해를 구하여 브릿지 높이를 조정하고 튜닝을 마쳤다. 
집에서 유튜브로 이 장소에서 했던 공연 영상을 몇 편 보았을 때 베이스 사운드가 좋다고 생각했다.  직접 와서 보니 역시 500와트 암펙 앰프의 소리가 무척 좋았다.
16:00 두 시간 가까이 연주 준비를 하고, 리허설을 했다.
당장이라도 어디 누울 곳이 있으면 쓰러져 자버리고 싶을 정도로 피곤했다. 공연 시간까지는 멀었는데 자꾸 눈이 감기고 정신이 몽롱했다. 병주와 함께 근처 커피집에서 찬 커피를 주문하여 먹었는데, 그 커피 덕분에 정신을 차렸다.
19:40 앞 순서 팀의 연주를 보면서 잠깐 정신을 놓았다가 눈앞에 있던 시멘트 기둥에 쿵 하고 머리를 박고 말았다. 아직 우리의 연주 순서가 되려면 멀었는데 정신이 맑지 못하여 어쩌지, 걱정하다가, 약간 몽롱한 상태로 집중해보면 어떻게든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동안 그랬던 적이 이미 여러번 있었지 않았나, 하면서.
22:40 연주를 다 마쳤다. 빌어 쓴 악기를 잘 닦아 가방에 넣어주고 옷과 가방을 챙겨 클럽 밖으로 나와서 사람들과 인사를 한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호텔에 돌아와 무엇을 어떤 순서로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새벽 다섯시부터 오분 간격으로 알람을 열 두 개 맞춰두고 잠들었다. 열 두번째 알람을 듣고 일어나면 이미 낭패일테지만 반드시 제 때에 공항에 도착해야 한다는 생각만 하면서 침대에 누워버렸다.






친구들과 만남

 

나보다 앞서 와있던 병주가 구글맵 주소를 보내주며 오라고 했다. 대충 세수를 하고 아이폰을 들여다보며 그 장소로 찾아갔다.

그곳은 HOWL the Field 라는 이름의 술집이었다. 병주와 경묵형, 그리고 오래 전부터 알고있었지만 처음 만나는 두 분과 다음날 같은 곳에서 연주할 일본인 두 분이 있었다. 나는 카레라이스를 주문하여 허겁지겁 먹었다.
자정이 다 되어 그 가게에서 나올 때에 가게주인이 콜트레인의 Giant Steps 를 틀어줬다. 오디오의 음질도 좋았고 마침 그런 사운드를 듣고 싶었기 때문에 반가왔다.
편의점에 들러 물과 빵 한 개를 사서 숙소에 돌아왔다. 아내와 한 번 더 통화했는데 우리 동네엔 우박을 동반한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다고 했다.
아까 술집에서 들었던 존 콜트레인 음악이 생각나서 Tommy Flanagan 의 Giant Steps를 들으며 드러누웠다. 살짝 잠이 들었다가 세 시 쯤 깨어버렸다.


2023년 10월 26일 목요일

일본으로

 

이 블로그에 자주 써오고 있었다시피, 나는 멍청하다. 기본적으로 셈을 못하고, 빠르게 상황에 대처하지도 못한다. 겸양이나 수사가 아니라, 정말 그러하고, 아주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그랬다.

자신이 둔하고 멍청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이 나의 몇 안되는 장점이다. 늘 배우는 데 느리고, 남보다 더 애쓰지 않으면 남이 하는만큼 하지 못한다. 그래서 이번 일본행과 안양, 광주 공연으로 이어지는 사나흘 동안의 여행을 위해 미리 많이 공부했다.

구글 지도를 열어놓고 일본어를 전혀 알지 못하는 나 혼자 어떻게 목적지까지 잘 찾아 갈 것인지, 움직일 경로를 찾았다. 경로와 교통편을 정한 다음엔 구글 맵을 몇 주 동안 반복하여 보면서 길을 외웠다. 스트릿 뷰 기능이 매우 유용했다. 혼자 외국에 가는 것도 처음이고, 빠듯한 시간 안에 반드시 돌아와야 하는 일정을 해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사진으로 지형지물을 외우고, 지도를 보며 길을 머리 속에 담아둔 다음 지난 10개월 사이에 웹에 올려진 정보를 취합하여 나에게 필요한 것들을 전부 메모했다.

6:20 새벽에 한 번 깨었다가 다시 잠이 들었다. 고양이 깜이가 곁에 다가와 내 베게에 기대어 같이 잠들었다. 어둠 속에서 깜이가 나를 보는 표정이 어쩐지 걱정하는 얼굴 같았다. 저 인간이 제대로 잘 할 수 있을까, 라고 하는 것이었을까.

13:10 김포공항 국제선 주차빌딩에 주차를 했다. 나흘 전부터 예약할 수 있는 자리는 없었다. 집에서 출발할 때 지하주차장은 '만석'이라고 내비게이션 앱이 알려준 덕분에 망설이지 않고 주차빌딩으로 갔는데, 마침 자리를 떠나는 차량이 있었다. 일층에 여유롭게 주차하고 공항으로 들어가 출국수속을 했다. 오늘의 첫끼는 탑승구 근처 커피집에서 당근샌드위치와 찬 커피로 먹었다.
미리 신청해둔 로밍 서비스를 확인하고, 일본에 도착하여 해야하는 일과 움직일 동선을 다시 체크했다. 그런데 이미 너무 여러번 복습을 해버려서 다시 확인할 것들이 별로 없었다.
16:20 비행기 이륙. 17:35 교토와 나고야 사이를 지나가고 있었다. 기내식으로 나온 밥, 돼지고기, 빵, 과일조각과 오렌지 쥬스를 먹었고, 닭고기는 남겼다. 17:40 겨우 5분 사이에 해가 지고 창밖이 어두워졌다. 동남쪽으로 날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19:00 일본에 도착했다. 입국수속과 세관수속은 미리 등록해둔 QR코드로 통과했다. 입국수속 창구에서 나오자마자 오른쪽 화장실 앞에 Aeon Bank ATM이 있다고 했다. 과연 거기에 기계가 있었다. 트래블월렛 카드를 넣고 미리 담아두었던 엔화를 인출했다.
19:23 하네다공항 3터미널 일층, 리무진 버스 타는 곳에 도착했다. 우선 승차권부터 사는 것이 순서였을텐데, 눈앞에 흡연실이 제일 먼저 보였다. 나는 아이코스를 사용하는데, 일본어를 쓰는 노인과 영어를 쓰는 백인 청년이 번갈아 가며 문을 열고 나에게 라이터가 있는지 물었다. 일본인 노인에게는 영어로 대답하고 두번째 다가온 백인 청년에게는 나도 모르게 '스미마셍'이라고 해버렸다. 과연 멍청하지 않은가 하였다.

나카노역까지 가는 승차권도 샀고, 자동판매기에서 물도 한 병 사서 마셨다. 아내가 집에서 챙겨준 엔화 동전들이 유용했다. 승차권은 정류장 앞에 있는 자동판매기에서 구입했다.
20:10 리무진 버스 출발.

몇 년 전 와보았던 신주쿠 거리를 지나고.
21:12 나카노역 남쪽 광장에 도착. 이곳에서 대각선으로 길을 건너면 나카노역이 나온다. 구글맵을 하도 보았더니 엊그제 와보았던 곳처럼 익숙했다.

21:18 나카노 역에서 승차권을 사고, 한 정거장 지나 내렸다. 

21:26 코엔지 역에 도착. 이 날 '중앙선'이 지연되고 혼잡했다고 하더니 늦은 시각인데도 사람이 많았다. 

21:40 예약해둔 호텔에 도착했다. 무인시스템으로 체크인. 집에서 출발한지 아홉시간 사십분 만에 숙소에 들어갔다. 이것으로 첫날 내가 해야했던 일은 끝. 아내에게 전화하여 잘 도착했다고 알려줬다. 



2023년 10월 25일 수요일

여행이거나 출장


 하루 앞으로 다가온 며칠 간의 여행이거나 출장. 집을 떠나 외국과 지방을 다니는 거니까 여행이긴 한데 아무런 여가 시간을 갖지 못할 업무의 연속이기 때문에 출장일 뿐이기도 하다.

일본엔 짐을 줄이기 위해 악기를 가지고 가지 않기로 했다. 악기 두 개와 페달보드는 자동차 트렁크에 실어두고 공항 주차장에 이틀 동안 놓아둘 예정이다. 지난 주에 프리앰프를 빼고 코러스 페달 한 개를 추가해뒀었다. 이번엔 코러스 페달을 한 개 빼어내고 몇 년 만에 마이크로 신스 페달을 넣었다. 주말 이틀 동안의 공연에서 새 노래를 연주할 예정이고, 그 곡에서 쓰일 베이스 소리가 필요했다. Electro-Harmonix 베이스 마이크로 신스 페달은 2009년에 로스앤젤레스에서 샀었다. 그 후 지금까지 페달 바닥에 있는 고무받침을 떼어내지 않고 써오고 있었다. 이번엔 고무를 떼어내고 벨크로 테잎을 붙여서 페달보드에 부착했다. 보드가 단정해지고 더 가벼워졌다.

두 개의 가방에 짐을 싸고 있다. 한 개는 일본에 다녀오기 위한 것이고 한 개는 안양과 광주 공연을 위해 꾸리는 것이다. 나는 토요일 아침에 일본에서 출발하여 낮에 김포공항에 제대로 도착하는 데에 온 신경을 쓰고 있다. 도착하자마자 안양 아트센터에 가서 리허설을 하고, 안양에서 공연을 마치자마자 광주로 간다. 일요일에 광주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을 끝내고 나면, 아마 고속도로 어느 휴게소에 멈춰서 코를 골며 자고 있게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