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5월 5일 목요일

악기

 




나는 웬만하면 학생들의 악기에 관심을 두지 말고, 거슬리는 것이 보여도 상관하지 말자고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전에는 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가져오는 악기의 상태가 나쁘거나 하면, 굳이 내가 직접 조정해주거나 손봐줘야 직성이 풀리곤 했었다. 십 년 이십년 어린 학생들의 세대가 바뀌면서 베이스줄 조차 스스로 교환하지 못하는 학생까지 목격하게 된 이후 나는 학생들의 악기는 그들 스스로 알아서 해야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원하지도 않았는데 남이 나서서 뭔가를 바로잡아주면 그들은 스스로 배울 기회를 만들지 못할 것 같기도 하고, 사람에 따라 연주하는 것 외에 악기의 유지 관리같은 것에는 신경을 쓰고 싶지 않은 경우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번 주에는 내가 오래 쓰고있는 펜더 재즈를 가지고 다녔다. 지난 달 방송촬영 때에 이 악기를 들고 갔었는데, 하루 전에 네크를 조정했는데도 휨 정도가 완벽하게 돌아오지 않았어서 연주할 때에 애를 먹었다. 그 전 여섯 달 동안 이 악기를 케이스에서 꺼내지 않았던 탓에 상태가 나빠졌던 것은 아니었나 싶어 악기를 다시 분리하여 트러스로드를 조이고, 브릿지의 녹을 닦아내고, 새들을 움직여 피치도 조정해뒀다. 넥과 바디를 조립하면서 조인트를 고정하는 나사 중 한 개가 헛돌고 있는 것을 알았다. 워낙 많이 분리 조립을 반복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음 주 밴드의 공연에서 이 악기를 쓰려고 한다. 손에 다시 익숙하게 하고 싶어서 일주일 내내 이 악기로 연습하고 있다.

수업시간에 학생 중 한 명의 악기에 톤 노브가 없어진 것이 눈에 보였다. 학생에게 노브를 분실하였느냐고 물어보니 그는 가방에서 주섬주섬 그 부품을 꺼내며, '며칠 안에 악기점에 가져가서 맡기려고 한다'라고 했다. 맙소사.

나는 내 가방에서 도구를 꺼내고 학생에게 악기를 건네어 받아, 프레시젼 베이스의 톤 노브의 나사를 조여 다시 부착해줬다. 악기를 구입하고 한 번도 '셋업'을 하지 않았다고 하길래 줄 높이를 조정해주고, 열 두번째 플렛에서 하모닉스를 내어보며 새들을 앞 뒤로 움직여 만져줬다. 베이스를 다시 받아든 학생이 연주해보더니 좋아하며 웃었다. 나는 그 학생이 언젠가는 스스로 정보를 찾아보고 공부하여 대수술이 필요한 것이 아닌 이상 자기의 악기를 스스로 관리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펜더 재즈는 금세 내 손에 익숙해졌다. 악기의 상태도 좋고, 연주하기에 아무 무리가 없다. 연습하면서 오랜만에 패시브 톤이 정겹게 느껴지고 그동안 이 악기와 함께 다녔던 수많은 장소들이 드문드문 떠오르기도 했다. 다가오는 공연은 좋은 소리로 연주할 수 있을 것 같다.



2022년 4월 30일 토요일

재즈

 


(4월 29일 금요일 밤)

내일 연주할 곡들을 계속 연습하다가 유튜브에서 유명한 연주자들의 라이브를 구경하고 있었다. 이번에 연주할 곡들은 내가 외우고 있는 곡들이 대부분이어서 조금 더 음악적인 것에 집중을 하고 싶었다. 오랜만에 재즈 연주 영상들을 찾아 보고 있으니 잊고 지냈던 스윙 리듬의 기분이 돌아오고 있다.

Arturo Sandoval 의 십년 전 연주 영상을 보면서 아주 옛날 대학로에 매주 구경하러 가서 라이브를 보며 혼자 공부했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당시에 나는 막막했던 미래에 대한 걱정, 무엇부터 먼저 시작해야 좋은지 알 수 없는 때였다. 아무라도 악기를 다루는 사람을 보면 다가가 인사를 하고 대뜸 질문을 해대었다. 내 성격에, 좀처럼 할 수 없는 일이었는데.

그 연주자 선배들은 뭔가를 묻고있던 어린애가 기특했는지 귀찮아하지 않고 나에게 뭐라도 알려주고자 설명하곤 했는데, 문제는 그들은 자기가 알고있는 것을 가르쳐 본 경험이 없어서 쉽게 설명하지 못했고 나는 너무 아는 것이 없어서 그분들의 친절한 설명을 알아듣지 못했다. 리얼북 한 권을 제본하여 들고 다니며 연주자들 앞자리에 책을 펴놓고 소절을 따라가며 보고있기도 했다. 요령도 없이 무식하게 혼자 배우고 있었던 시절의 기억이 갑자기 많이 떠올랐다.

(4월 30일 토요일 밤)

서교동 골목의 가게에서 연주를 했다. 어제 악보를 보며 연습해두길 잘했다. 오랜만에 비좁은 공간에서 베이스 헤드를 드럼의 라이드 심벌에 부딪히며 워킹을 할 수 있었다. 낯설은 장소, 부자연스런 무대였는데도 재미있었다. 오랜만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다른 것을 잠시 잊고 베이스만 칠 수 있어서 좋았다.

그 동네는 이제 판데믹이 끝나버린 것처럼 사람들이 많이 다녔다. 연주를 마치고 얼른 악기를 챙겨 부모님 집에 들러야했다. 돌아오는 길에는 Romain Pilon 의 몇 년 전 앨범을 들으며 운전했다.



2022년 4월 18일 월요일

글 모음

 


이번 생일에 아내가 만년필을 선물해줬다. 부담없고 가벼운데 품질도 좋다. 이 달에는 이 펜으로 많이 썼다.

펜으로 써둔 것이 늘어나고 있어서 공책의 글들을 텍스트 파일로 저장해 보려고 방법을 찾아보았다. 아이폰 카메라에 비춰진 손글씨를 인식하여 번역할 수 있으니 손쉬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역시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스캔하거나 촬영한 이미지 파일을 구글에서 열면 가능했다. 필기한 글씨를 인식하는 정확도도 훌륭했다. 너무 알아볼 수 없게 흘려 쓰지 않는다면 손글씨를 텍스트 파일로 바꾸어 저장하는데 문제가 없었다.

PDF 파일로도 바꿀 수 있는데, PDF 문서에서도 단어별로 검색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더 생각해보니 매일 써둔 글들은 이미 너무 많고 앞으로도 그것들을 일일이 촬영하거나 스캔하여 잘못 인식된 글자를 고쳐서 분류하고 저장하는 것은 좀 바보같은 짓 같았다. 시간을 많이 빼앗길 것이고 그러느니 처음부터 컴퓨터로 쓰는 것이 낫겠다. 그래서 처음으로 돌아와 공책은 공책대로, 블로그에 담아둘 것이나 생기면 컴퓨터로 쓰기로 했다. 뭐 대단한 기록이라고, 더 단순하게 살아도 부족하다.



2022년 4월 10일 일요일

피곤했다

 


아내가 깨워줘서 겨우 일어났다. 나는 알람이 울리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계획했던 시각에 밥을 먹고 제 때에 출발할 수 있었다. 날씨 좋은 토요일, 일요일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원효대교를 넘어 여의도 그 동네에 도착했다. 정확히 이십년 전에 나는 그 동네의 지하 술집에 매일 밤 연주를 하러 다녔었다.

지어진지 42년이 된 방송사 건물. 어딘가 어수선하고 불안해 보이는 기분이 들었다. 건물이 낡은 것과는 관계 없었다. 이 장소에 나는 여러 번 왔었다. 그것도 이제 이십년 전, 십오년 전의 일이 되었다.

약속 시간 삼십분 전에 모두 모였는데 아무 것도 하지 않은채로 대기실에 앉아서 네 시간을 보냈다. 작은 일도 망설이고 어떻게 하면 좋은지 몰라서 당황하는 사람들은 언제 어디에나 있었다. 문제는 그런 사람들이 방송사에는 항상 있다는 것이다. 오래 기다리는 것 쯤이야 방송사에서 일이 생기면 늘 겪는 일이다. 그것 정도는 참을 수 있었다.

원래는 Moollon 베이스를 사용하려고 수요일부터 그 악기를 꺼내어 연습하고 들고 다녔다. 새벽에 문득 어떤 생각이 나서 낮에 펜더 재즈로 바꿔 가지고 갔었다. 오늘 입은 셔츠의 색깔과 어울릴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당황했다. 악기의 상태가 나빠져 있었다. 네크가 많이 휘어 있어서 연주하는데 힘들었다. 그동안 귀찮아서 악기를 관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연주는 단번에 마쳤다. 나는 갑자기 취재를 위해 급히 달려가야 하는 기자처럼 집으로 도망치듯 돌아왔다.

내일은 악기들을 닦고, 손질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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