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3일.
새벽에 깨어났다. 옷가지를 챙기고 악기가방에는 에어캡을 잔뜩 채워넣는 정도의 일만 남았어서 준비는 너무 일찍 끝났다. 샤워를 하고 아내가 방금 익혀준 고구마를 먹고 커피는 두 번을 내려 함께 마셨다.
고양이 순이는 내가 가방을 싸고 옷을 정리하는 것을 보고 있다가 그만 내가 멀리 떠난다는 것을 알게 되어버렸다. 벽을 보고 앉은채로 서운함을 드러냈던 내 고양이.
로스 앤젤레스 공항에 도착했던 것은 13일 오전. 나 혼자 입국심사에서 문제가 생겨 경찰에게 앞장 세워져 격리된 채로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세 사람의 직원에게 순서대로 똑같은 인터뷰를 하고 난 후 풀려났고 아직도 이유는 모른다. 아마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첫날엔 엘에이의 밀레니엄 빌트모어 호텔에서 짧은 공연. 홍보를 위한 것인지 단순히 초대받은 행사를 위해 봉사를 했던 것인지는 잘 모르고, 비몽사몽 간에 몇 곡을 연주했다.
그것을 마치고 났더니 밤 열 시 오십 분. 엘에이에서 샌디에고 방향으로 두 시간을 달리면 갑자기 등장하는 카지노 리조트 호텔, Pechanga에 도착했다.
피곤에 절여져서 배추처럼 늘어진 모습으로 샤워를 하고 만 이틀만에 옷을 갈아입고 편하게 잤다.
잠을 깨어 호텔 안과 밖을 돌아다녀 보니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11월 15일, 공식적인 첫 공연은 저녁 여덟 시.
일부러 좋은 케이블을 챙겨오길 잘했다고 여기며 안도했다. 이번 투어에 사용한 것은 이것이 전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