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19일 일요일

새벽에 커피 한 잔


아내가 사왔던 보온병. 아주 잘 써먹고 있다.
친구와 함께 시장을 걷다가 눈에 띄길래 집어들었다고 말해줬었는데, 생김새를 보자면 아내의 눈에 들어오지 않을 수도 없고 사오지 않을 도리도 없었겠지. 따뜻한 커피를 담아두었다가 따라 마시기 위해 고양이의 귀를 붙잡고 살짝 돌리면, 시선이 명확하지 않은 눈을 하고는 "왜, 한 잔 드실라우?" 하는 것 같았다.

지금 새벽 다섯 시.
열 두 시간 후에는 이천의 어느 공연장에서 첫 곡을 시작하고 있을 예정.
심리적인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갓 내린 커피 한 컵을 마시고 가볍게 양치질을 하면 곧 잠든다. 괜히 음악을 틀어두고 뒤척이다보면 갑자기 할 일들이 더 생각나고 하루 종일 초각성 음료로 버티게 되어 좋지 않다.
낮의 연습시간에 밴드의 사운드가 좋게 들렸다.
내일 공연은 평소보다 품질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피곤함에 적셔진듯 잠들어 있는 아내의 방을 잠시 살펴보고... 해가 뜨기 전에는 나도 자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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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17일 금요일

형님 한 분.


2004년에 처음 직접 뵈었던 드러머 강윤기 형님.
대기실에서 찍었던 사진이 두 장이나 남아있었다.

당시엔 일회성 공연과 행사로 만나서 함께 연주할 수 있었는데, 합주 연습 몇 번과 무대 위에서의 연주 서너번을 겪은 후 나는 집에 남 몰래 혼자 아주 많이 힘들었었다.
내 타임키핑은 전부 앞으로 먼저 나가고 있었고, 느린 곡에서도 비트를 맞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 선명하게 들렸다. 이유는 한 가지, 드러머가 너무 정확했기 때문에. 다르게 설명하자면, 그 이전 까지는 윤기 형님과 같은 드럼 연주자를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모르고 지나갔던 것이었다.
그 뒤로 한동안 나는 메트로놈은 쓰지 않고 가능하면 미디파일로 드럼 리듬을 만들어 연습했다. 정확한 타임키핑은 드러머로서 당연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런 연주자는 사실 드물다. 그리고 지금은 꼭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어쨌든 당시에는 나에게 윤기 형님과의 연주가 아주 큰 자극이 되었었다.

두 분 모두 나를 붙잡아 앉혀두고 레슨을 해주셨다거나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음악적인 지시를 해주신 적은 없지만, 기타 연주자 김광석 형님과 함께 이 분을 나는 마음 속의 선생님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몇 년의 세월이 흘러서, 이렇게 되어있으리라고 그때에는 생각하지 못했다.
재미없게 말하자면 확률의 문제인 것이고 사실은 내 인간관계의 반경이 좁은 것일 뿐일지도 모르겠지만, 사람은 자신에게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는 인연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는 법인가. 나는 뭔가 인연이라는 것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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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2년여 만에 스페이스 공감의 공연과 녹화를 하고 왔는데, 첫 날 방송녹화를 했다. 변명부터 하자면 그날 나는 잠을 충분히 못 자두었던 탓에 컨디션이 별로였다. 공연 직전 대기실에서 윤기형님이 평소와 다르게 한 마디 던지셨는데...
"너 아까 리허설 때에 보니까 많이 늦더라. 소리가 잘 안들리는거냐, 뭐냐. 모니터 스피커 확인해봐라..."

모니터를 다시 확인해보았지만, 내심 가슴이 덜컥했다. 기계 탓일리가 있나. 그날 뭔가 손가락도 둔하고 정신이 맑지 않았던 것이었는데. 게다가 연습 부족. 몇 주 간 자전거 타느라 악기를 자주 만지지 않았다. 금세 티가 나기 마련 아니던가.
공연이 시작되고 나서도 계속 내 박자가 뒤로 밀리거나 틀리고 있지는 않는지 몹시 신경이 쓰였다. 연주 도중에 스탭 분에게 손짓을 하여 드럼 소리를 조금 더 올려달라고까지 했었는데... 결과를 말하자면 그 날 나는 모든 곡에서 실수하고 틀려버리고 말았다. 진땀이 나고 다음 곡이 걱정되고 정말 수 백 번은 연주했던 것 같은 노래들이 갑자기 기억이 나지 않기도 했다.

이튿날이었던 (녹화하지 않았던) 공연은 멀쩡했다.
전날의 상태는 반복되지 않았지만 뭐 이미 엎지른 물.
그런 일은 이제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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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가고 있다.


자전거 페달에 끈을 달았다.
그날 반나절 달려본 것을 마지막으로, 그후로는 계속 비가 왔다.


지금 내리는 비가 다 그치고 나면 이제 곧 바람이 불고 선선해질 것 같은데.
땀흘리고 햇볕에 그을리며 달려보던 올해의 여름에게도 인사를 해야할 때인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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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16일 목요일

고양이의 어린시절


집에서 제일 작은 고양이 (...라고 해도 다 큰지 오래된 고양이이지만) 이지가 이동장 안에 들어가 있었다.
상자가 눈에 보이면 우선 들어가보는 녀석들이니까.

이 이동장은 벌써 만 여덟살이 넘은 고양이 순이의 것이다. 이 사진 때문에 생각이 나서 어린시절 순이가 이 안에 들어가 있는 장면을 뒤져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아마 이 블로그의 8~9년 전 글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함께 집안에서 부딪히며 살고, 함께 나이를 먹고 있다가 가끔 서로가 몇 살이 되었나 생각해보면 놀란다. 집안의 큰 언니 고양이는 아내 계산에 따르면 열 여섯 살, 그 기준으로 따지면 순이는 열 살.


어린 시절 순이 고양이의 귀엽게 나온 사진을 찾지 못한 대신에 음흉하고 사악해보이는 어린이 순이의 사진을 찾아 볼 수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고양이들의 어린시절에 볼 수 있는 다양한 표정에는 그 고양이의 성격이 잘 담겨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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