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13일 월요일

미사리


낮에는 햇빛이 쨍쨍하여 일을 마치는대로 자전거를 타야지, 라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웬걸 집에 돌아오던 시간에 동네엔 비가 퍼붓고 습도는 백 퍼센트.
눅눅해져있는 자전거와 악기들을 번갈아 보면서, 그냥 손질하고 닦는 짓이라도 할까 망설이다가 그만 잠시 잠들었다.
밤 열 한시에 송 형님 전화. 하늘에 별이 보인다는 말씀을 듣고 눈 비비며 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입고 나왔다. 한참 달리고 있는데, 마침 그 시간이 전기절약을 위해 가로등을 꺼두는 시간이었는지... 몇 개의 구역으로 나누어 일제히 불빛이 꺼지고 있었다. 마치 이 시간에 왜 기어나오느냐는 훈계를 듣는 기분이었다.
평소 들러서 차 한 잔 마시던 가게는 오늘따라 일찍 문을 닫기로 했어서 그곳에서도 앉자마자 불이 모두 꺼졌다. 주인의 배려로 따뜻한 커피를 마실 수는 있었다.

뭐 먹어둔 것이 없어서 배가 고팠다. 강변의 차도쪽으로 나아가 음식점을 찾아보기로 했다. 마침 불켜둔 냉면집을 발견, 신나하며 들어가보았더니 냉면은 낮 시간에만 먹을 수 있다고. 아, 그런게 어디있어. 심야에 각종 국수류를 먹을 권리를 보장하라...라고 말할 처지는 아니었어서 그냥 국밥 한 그릇. 고기류는 잘 먹지 않는 탓에 빈 국밥 그릇에는 인심좋게 듬뿍 넣어주신 고기점들이 그득하게 남았다.


밥을 먹고 있었던 식당은 미사리의 라이브 클럽 부근이었다. 창문 너머로 보이던 클럽은 십오년 전 나도 일했던 그 곳. 금요일 밤에 이 길의 대부분 업소들은 모두 불이 꺼져있고, 을씨년스럽게 새어나오는 그 동네에서 노래 잘하는 가수의 음성이 들렸다.
한참 성업중이었던 당시의 미사리 시절, 나는 이 길에서 세 군데의 클럽을 초저녁에 '돌고', 일산까지 악바리처럼 달려 두 군데에서 더 일한 다음 지금 국밥을 먹고 있을 이 시간 즈음에는 화정의 한 무대에서 마지막 연주를 마친 다음 늘 졸음 운전을 하며 집에 왔었다.
딱, 그 기억만 남아있다.
좋은 사람들, 함께 일을 하다가 교통사고로 먼저 세상을 떠나버리신 분의 얼굴 정도는 기억하고 있지만, 숱한 욕망과 과잉된 자존감의 아귀다툼들은 다 잊고 말았다.

텅 빈 미사리의 넓은 길을 달려 팔당대교를 향해 가고 있을 즈음에, 다니던 라이브 클럽에서는 익숙하지만 듣고 싶지 않은 노래의 반주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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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8일 수요일

올 여름의 사치


십 년이 넘게, 나는 휴가를 가져보거나 놀기 위해 어디론가 떠난다거나, 운동을 한다며 집 밖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을 사치로 여기고 지냈다.
그 결과 휴가라는 이름을 붙인 시간을 마련한 적은 없지만 결국은 피곤해서 쉬어야했고, 만성 스트레스로 괴팍한 성격을 점점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인간이 될 수 있었다. 당연히 운동으로 땀을 흘린 것 보다는 몸살과 위경련으로 식은땀을 흘린 횟수가 더 많았다.

올 여름의 사치는 어느 공연장 대기실에서 상훈씨의 기습 제안으로 시작되었다. 자전거 이야기에 늘 시큰둥한 반응이었던 내가 그날 아주 솔깃하게 상훈씨의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의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이상훈이라는 인물이 아무래도 남을 설득하거나 자신의 주장을 말하는 기술이 고도로 발달되어있을 것이라는 의심을 하고 있다.

그 날 부터 시작되어서, 자전거에 대하여 검색하고 읽고 공부하게 되었다.

그리고 3주 만에, 아내의 손목을 잡고 끌다시피하며 함께 자전거 가게에 가서 아내 것 까지 두 대를 덜컥 사왔고, 그날 밤 일을 마친 직후 부터 야간 라이딩을 시작했다. 지난 한 달 반 동안, 비가 종일 내렸던 며칠을 제외하고 매일 자전거를 타고 밖으로 쏘다녔다.
밤중에는 보통 이런 모습을 하고 출몰하여, 불꺼진 남양주 도로를 벗어나 한강의 다리 갯수를 세어보며 돌아다녔다.

강을 건너다니며 잠시 쉬기도 했고,


집에 돌아올 때 즈음이면 해가 떠오르는데, 서울에서 동쪽으로 달리며 보이는 일출 장면에 눈을 빼앗겨 녹조 가득한 강물에 몸을 담글뻔 하기도 했다.

올 여름의 사치는 그대로 끝나지 않았다.

몇 주 만에 몸의 컨디션이 항상 좋아진 상태가 되었다. 보상을 바라고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체중도 조금 줄고 뱃살도 제법 없어졌다. 뭐 이런 재미있는 것이 다 있었냐며 계속 좋아하고 있는 가운데, 악기 연습 시간은 당연히 줄어들었다. 어서 겨울이 와주지 않으면 나는 다시 베이스 초보자가 될 지도 모른다.

악기 연습을 게을리했던 대신에, 무대 위에서 연주를 할 때에 더없이 몸이 가벼워졌다. 피로해서 픽 쓰러져 잠드는 일은 점점 없어졌고, 조금 격하게 자전거를 타고 돌아온 후 깊이 단잠을 자는 일이 많아졌다.

핑계를 더 길게 쓸 수도 있으나 군색하고 궁색해지므로... 아무튼 위와 같은 타당한 핑계로 한 달 반 만에 덜커덕, 이번엔 로드 자전거를 사버렸다.


이렇게 되어버려서...
아침 일찍 일어나 이십여 킬로미터 산책을 하기도 하고,


체감 기온 40도라는 요즘의 날씨에, 대낮에 어지러워하며 돌아다니기도 하는 생활을 하고 있게 되었다.
이것이 올 여름의 이변이고 나의 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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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 27일 금요일

여름 공연 준비


내가 혹서기 라이브 훈련이라고 말했던 여름 공연 릴레이가 시작됐다.
지난 수 년 간 여름의 가장 더운 기간 마다 공연의 연속이었다.
이제 아프리카 공연도 가능할 것 같다.
내일 공연은 한 시간 분량이고 선곡된 열 대여섯 곡들의 범주가 다양하다.
매니저 미정씨가 백업용 악기를 가져갈 예정이냐고 물어보아서 몇 번 고민을 하다가, 얘만 데리고 가기로. 그런데 이 악기가 세세한 점검이 필요했다. 새벽에 이것 저것 불빛에 비춰보며 닦고 조이고 잘 닦아뒀다.

지난 여름 어떤 곡에서 피크로 연주하던 중에 굵은 줄이 너트에서 빠져나가버리는 일이 생겼어서 헤드에 고무줄을 묶어두고 있다. 계속 (나름) 관리해왔으니까 문제는 없을테지만 신경은 쓰인다. 겨울에 다쳤던 검지 손가락은 조금만 무리하면 자꾸 손톱이 들려지고 있어서 피크를 많이 쓰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이펙터는 한 개도 쓰지 않을 예정이다. 올해 들어 이펙터 페달보드를 들고 나간 적이 거의 없다.

오늘 일을 마치고 새 줄로 갈아놓는 것으로 준비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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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 5일 목요일

여름을 보내고 있는 고양이


여름을 보내고 있는 고양이...와 여자.
고양이도 여자 고양이.
다 컸는데도 쬐그만 이 고양이는 나보다 집안의 여자를 확실히 더 좋아한다.

고양이 이지는 동물병원의 쇠창살에 갇힌채로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앞발을 뻗어 내 손가락을 꽉 잡았던 녀석이었다. 보호하고 있던 동네 동물병원의 담당자는, 어렸던 요 녀석을 열악한 철사 바닥에 화장실 모래도 없이 가둬두고는, 어디 입양되어지지 않으면 곧 '처리'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에게 잘 들리도록 말하고 있었다.
몰랐으면 모를까, 집에 돌아와서도 손가락을 꼭 붙잡고 눈을 마주치던 얘가 계속 생각나서 아내에게 아무래도 데려오고 싶다고 했던 사람은 바로.... 나였는데!

요뇬이 내 곁에는 잘 오지도 않고 집안의 여자를 친엄마로 굳게 믿고 산다.
그래서 나는 뭔가 무척 억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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