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11일 일요일

스튜디오에서


나는 늘 불평하고 있어서 그곳에 종사하는 분들이 싫어할 것 같다.
그러나 방송이라는 것은 이런 것으로 나는 생각하고 있다.
치밀한 준비 대신에 효율성 극대화, 작가정신 대신에 제품양산 정신으로 일하는 분들이 사이좋게 출퇴근하는 곳. 그러나 결국 효율성도 없고 적절한 제품을 생산하는데에도 벅차하는 곳. 그리고 절대로 제대로 일하지는 않는 회사.
그런 그들의 자긍심은 어디에서 나오는걸까. 바지춤에 매단 사원출입증인걸까, 구내식당 식권인걸까.

뭐 그건 그거고... 어떤 종류라고 해도 스튜디오라는 공간은 기분좋은 곳이다. 그렇게 천장이 높은 곳에서 정기적으로 음악을 연주하는 프로그램이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게 생겨날 가능성은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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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10일 토요일

부산에서.


이 도시에서 열리는 국제영화제에 한 번도 가보지 못했었다.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인지 지난번 제천의 영화제에서도 좋은 영화들이 가득했는데 한 편도 보지 못하고 돌아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이긴 했다. 전날 공연을 마치고 새벽부터 일어나 기차에 몸을 실었다. 부산에 도착하여 리허설을 마치고 몇 시간 후에 공연을 했다. 연주를 마치자마자 다시 기차를 타고 정신없이 집으로 돌아왔더니 새벽 두 시였다.

바람이 불고 기온이 떨어져서 낮부터 추웠었다. 가슴 파인 옷을 입고 공들여 화장을 하고 입장하는 여배우들을 기다리던 사진 기자들은 그들의 가슴을 촬영하느라 큰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바닷가에 정박한 요트의 돛대들이 맥주 한 병씩 들고 몸을 흔드는 사람들처럼 서로 엇갈리며 허공에 출렁이고 있었다. 무너지거나 주저앉거나, 어쩌면 공중으로 튕겨져 올라갈지도 모르는 부실한 이동식 무대 위에 세 개의 앰프와 캐비넷과 드럼셋트와 건반악기가 올려져있었다. 그 위에 우리들 네 명이 악기를 들고 올라갔더니 무대가 기울어져버렸다. 우리들은 바닷가의 요트들 처럼 출렁거렸다. 항구도시 부산을 잘 표현한 라이브 무대 시설이었다.
준비했던 곡들이 너무 잔잔하여 아름답고 규모가 큰 영화제에 잘 맞지 않는 것 같았다. 공연 전에 좀 더 흥겹고 센 곡으로 바꾸면 어떨까 의논했었다. 그랬었다면 정말 사고가 날 뻔 했다. 비틀거리던 무대가 무너지고 우리는 추락했을 것이었다.
뒤이어 뛰어나오는 여자아이들의 무대는 앞쪽이어서 안전하기도 했고, 아마도 그들의 체중이 많이 나가지 않았기 때문에 안심하고 뛰며 춤을 출 수 있었을 것이었다. 체중감량은 생존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레모니를 지루해하는 시청자들을 위해 누가 말을 하고 있거나 누가 노래를 하고 있거나간에 화면에는 배우들의 얼굴을 띄워놓고 있었다. 이런 저런 인사들이 얼굴도장을 찍고 할 일을 하러 떠날 수 있도록 불꽃놀이를 핑계로 조명도 꺼주는 배려심. 하루 종일 고생했을 자원봉사자들은 청소를 하느라 애먹었을 것 같았다. 내년에는 휴지통이라도 좀 사다 놓아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시간을 내어 영화제 구경 좀 하러 다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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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 공감 녹화

밴드의 멤버들은 각자, 이 밴드의 활동을 통해 자신의 인생에서 독특한 경험을 하고 있다.
두 번 다시 '밴드'는 하지 않겠다고 했던 나는 어느새 하루중 대부분을 이 밴드의 일에 관한 생각에 골몰하고 있고... 나와 똑같은 말을 했던 다른 한 사람도 나처럼 밴드의 일정을 위해 자신의 사생활을 내어놓았다.
음악적인 일과 음악 이전의 삶에 대한 일들은 아무리 오래 배워도 끝이 없다.

원테이크니 뭐니를 가지고 질문을 받기도 하지만, 그것이 무슨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동시에 합주하며 녹음하는 것이란 새로운 것도 아니고 획기적인 방법도 아니다. 나중에는 각자 부스에 들어가 앉아서 더빙을 수백번하며 녹음해야 더 좋은 곡이 생길지도 모르는 것인데... 어쨌든 방식과 수법의 문제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어떤 음악은 지금 우리들의 작업처럼 스냅사진을 찍듯이 녹음하는 것이 좋은 것이고, 또 다른 경우엔 외과수술 하듯이 정교하고 완벽하게 꾸며져야 좋은 음악도 있는 거다. 스냅사진을 찍거나 외과수술을 하거나간에, 어쨌든 완벽한 것은 없다. 너무 완벽해서 불완전하고 불편한 음악도 많다. 비워두는 것이 더 아름다울 때도 있는 것이고.

사람을 사랑하듯, 음악을 들으며 좋다고 말할 때엔 뭐라고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순수한 태도일 경우가 많다. 좋은 사운드가 무엇인지를 데시벨과 음압의 수치로 가르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왜 그를 사랑하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하려고 시작할 때에 이미 사랑과 별개의 것을 끌어와 이유로 삼게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설령 이유가 있더라도 그것을 핑계삼지 말자. 아무리 얼룩이 묻고 주름이 늘었어도 음악 앞에서의 태도만큼은 단정해지면 좋겠다. 연애도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좋은 음악을 들으며 춤을 추는 느낌으로 사랑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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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8일 목요일

공감 공연


상암동의 공연때에 도로에 차가 막혀서 그만 리허설 시간에 맞춰 공연장에 도착하지 못했었다.
이제 절대로 그런 일은 없게 하겠다며 작정하고 약속시간 세 시간 전에 집을 나섰더니, 약속시간 두 시간 전에 도착해버렸다. 이런 날에는 도로도 막히지 않는다.
커피 두 잔 마시고, 담배 피우고 바람냄새도 맡고, 건물옆 볕이 드는 길목에서 햇볕쬐던 고양이도 쳐다보았다.

이틀간 이어질 이번 공연은 음반의 곡들을 순서대로 연주하는 내용이 되어버렸다.
녹화되어 방송되어질 때에 몇 곡은 걸러지거나 하겠지만.
음반 녹음 이후에 이것 저것 궁리를 해보았던 이펙터 세팅으로 연주하기로 했다.
POG와 두 개의 옥타브 이펙터를 섞어서 빈번하게 조합을 바꾸며 연주했다. 어떤 소리로 기록이 될지 궁금하다.
퍼즈는 베이스용 빅머프를 썼다.
악기는 Moollon과 Fender Jazz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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