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에, 친구와 약속을 할 때에 자주 음반가게에서 만나기로 하곤 했었다. 명동의 어느 곳, 서대문의 거기, 대학로의 그곳이라는 식으로 약속을 하고 그 장소에 도착을 하게 되면, 어느 쪽이든 서두를 것 없는 처지였으므로 자리에 뭉개고 앉아 음반을 골랐었다. 돈이 없었으니 가게를 나올 때에 손에 집어든 것은 언제나 한 두 장 뿐이었다고 해도. 음악들이 빼곡하게 꽂혀있는 진열대 앞에서, 걸음을 재촉해야하는 여행객의 심정은 금방이라도 울것만 같았다. 이제 내 나라에서는 없어져버린 것이니까.
하루의 대부분은 쫒기는 시간이거나 기다리는 시간이 전부이다. 그리고 내 걸음걸이는 세상의 속도와 항상 다르다. 어쩌면 하루의 대부분은 멍하니 그대로 있는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자동차로 가득 차있는 도로 위에서 시간에 쫒길 때에나 낯선 도시의 커피집에 앉아 공연시간을 기다릴 때에나간에, 그저 멍하니 있기. 꿈꾸고 읽고 쓰고 냄새 맡으며 살아야할텐데 그저 먹고 마시고 피워대고 쫒겨다니며 지내는 것 같다. 그리고 가는 비에 옷이 젖는듯, 늙어버린다.